자세히보기 2017년 10월 1일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한때는 의무실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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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58

한때는 의무실도 있었지

북한 이 지난 2013년 12월 5일 평양 문수지구에 새로 건설된 옥류아동병원에서 어린이들과 학생들에 대한 종합적이고 친절한 의료봉사와 의학·과학연구사업을 활발히 벌려 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합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013년 12월 5일 평양 문수지구에 새로 건설된 옥류아동병원에서 어린이들과 학생들에 대한 종합적이고 친절한 의료봉사와 의학·과학연구사업을 활발히 벌려 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합

‘한국에 오니 뭐가 좋아요?’, ‘북한과 많이 달라요?’ 정착 과정에 이런 질문을 받아보지 않은 탈북민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질문을 수없이 받아보았다. 물론 이에 대한 답변은 제각각일 것이다. 북한에서의 직업이나 살던 지역, 개인의 관심사 등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북한에서 교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한국 교육 현장에 대한 부러움이 가장 컸다. 그 중 의무실에 대한 것도 있다. 초·중·고교에는 물론이고 대형 백화점이나 아울렛에도 다 있는 이 의무실이 참 인상적이었다. 내게 의무실은 단순히 소독약 냄새가 풍기는 그런 곳이 아니라 ‘인간 존중’이라는 철학적 무게를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물론 북한 학교들에 원래부터 의무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 요즘의 젊은 탈북민들에게 북한 학교들에 의무실이 있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50대 분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있었다고 기억할 것이다.

소독약 냄새 솔솔 나던 의무실의 추억

필자가 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 초에는 북한 학교들에 잠시나마 의무실이 있었다. 중학교에도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소학교(초등학교)에는 의무실이 있었다. 당시 필자가 다니던 소학교는 4층짜리 건물이었는데 2층 맨 끝에 의무실이 있었다. 의무실 근처에만 가도

소독약 냄새가 솔솔 풍기고 방에 들어서면 간단한 치료 도구나 약들이 있었고 한편에는 산뜻한 침대보를 씌운 침대 한 대가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늘 깨끗하고 정갈한 흰 위생복을 입고 계셨고 언제나 밝은 미소를 짓는 분이었다. 주사나 침을 놓을 때면 우리들이 울까봐 엄마처럼 다독여주셨다.

소학교 재학 시절에 갑자기 속이 메슥메슥하고 참기 힘들 정도로 아파 의무실에 갔던 기억이 있다. 수업 중 내가 식은땀을 흘리는 것을 본 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의무실로 가 배에 침을 놓았다. 당시엔 토할 정도로 속이 울렁거리면서도 의무실에 가면 침을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 겁이 나 선생님께 거의 질질 끌려가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중학교에 입학하니 의무실이 없었다. 지금은 중학교뿐 아니라 소학교에도 의무실이 없다. 북한 학교들에 언제 의무실이 없어졌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여하튼 1970년대 후반엔 의무실이 없었다.

아마도 의료 부문에서의 ‘호담당제’가 실시되며 없어진 듯하다. 의사가 4~5개씩 인민반(한국의 15층짜리 복도식 아파트 한 동이 북한의 두 개 인민반에 해당함)을 맡아 정해진 날에 돌아가며 의무 검진을 하는 제도다. 검진이라고 해봐야 집집마다 돌며 앓는 사람이 없는지 대충 확인하고 간단한 진찰이나 약을 처방해주거나 심할 경우 진료소나 병원에 가라고 권고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고난의 행군’을 기점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문제는 의무실이 없다 보니 학생이나 교사에게 상당히 직접적인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배탈이 나거나 감기로 열이 있으면서도 마지못해 등교한 아이들이 수업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을까? 집안에서는 응석을 부릴 꼬마들이 아파도 선생님 눈치를 보느라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거나 참다못해 울음을 터뜨릴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참으라고 하거나 조퇴시키는 수밖에

실제 학교 현장에서 의무실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종종 일어난다. 소학교 1학년 꼬마가 갑자기 배탈이 나 참다못해 선생님께 말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끝내 길가에서 일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어떤 중학교 1학년생은 너무 아파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가던 중 길가에서 맹장이 터져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학교에 의무실이 없으니 교사인 나도 학생의 상태를 보고 참으라고 말하거나 심한 경우 조퇴를 시키는 정도의 대처밖에는 할 수 없었다.

교사들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할 수 없이 출근하였지만 점점 상태가 안 좋아져 아이들에게 자습을 시키고 교탁에 얼굴을 묻고 있는 교사, 아이들을 교실에 방치한 채 교원실에 가 아픔을 달래는 교사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지금의 북한 사정을 봐서는 학교에 의무실이 있어도 과연 제대로 운영될지 의문이다. 국가에서 공급하는 의약품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학교에 의무실이 있다 한들 빈 껍데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아파서 의무실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장마당에서 약과 주사를 사오라고 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의무실처럼 필수 요소도 갖춰지지 못한 북한 학교 현장의 현실이 우려스러운 오늘이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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