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10월 1일 0

윗동네 리얼스토리 | 두만강에 선 여인, 눈물 흘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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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에 선 여인, 눈물 흘리며 웃었다

탈북한 보안원 K씨의 옆집에는 등이 살짝 휜 척추 장애인 여인이 살았다. 갓 태어났을 때 업고 있던 엄마가 포대기 끈이 풀려 아기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척추가 잘못되어 그렇게 됐다고 하는데 인물이 출중했다. ‘고난의 행군’에 접어들며 한 해 사이로 부모가 아사하자 홀로 남게 된 여인은 억척스레 돈을 벌었다. 돈이 없어 세상을 등진 부모의 한(恨) 때문인지, 여인은 돈 버는 일에서는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인구 40여 만 명이 사는 시내에서 열손가락 안에 든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비록 장애를 가진 몸이지만 번뜩이는 눈빛과 차분한 거래는 장사의 진수를 아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천성적 재능이었다.

그런데 이 여인의 삶에 큰 악재가 터졌다. 거래자들을 통해 솔솔 새어나간 비밀은 곧 세상이 다 아는 비밀이 되었고 여인은 결국 보안서에 체포됐다. 당국에서 하지 말라는 희유금속(금강석, 금, 니켈 등) 장사를 한 여인의 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법대로 하면 15년 이상의 형을 받아야 할 중범죄였다.

측은했던 마음은 점점 애틋한 감정으로

당시 여인의 심문을 맡은 K씨는 조서를 쓰며 몹시 괴로워했다고 한다. 척추 장애의 몸으로 감옥에서 15년 형을 받고 산다는 것은 사형을 선고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열악한 북한의 감옥에서 15년을 버틸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결국 K씨가 손을 써 여인은 무죄로 풀려났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뇌물이 고위급에 흘러들어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어느 누구도 돈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 여성 범죄자를 감옥에 넣기보다 그가 쥔 돈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식량 미공급으로 국가체계는 이미 엉망이 된지 오래였다. 보안원들도 본인만 식량을 공급받았고 가족은 자체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조건이었기에 가진 직권을 이용해 따로 돈을 챙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리하지 못하는 자가 바보 취급을 받는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K씨도 다를 바 없었다. 이후 K씨는 그 여인을 자주 찾았고 어느 날부터인가 연인으로 발전했다. 여인 역시 감옥행을 면제시켜준 K씨를 각별히 대했고 무엇이든 아끼지 않았다. K씨는 당시 두 아이의 아버지였고 연애로 결혼을 한 부인도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집사람으로만 살뿐 어디 가서 감자 한 알 구해 오지 못하는 여자였다. 그래도 본인 식량이나마 공급받는 보안원 남편이 있어 죽이라도 끓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다.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돈 많은 여자와의 연애는 결국 K씨로 하여금 이혼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그러나 K씨가 미처 예상 못한 것이 있었는데, 북한에서는 보안원이 이혼을 하면 군복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K씨는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여인과 재혼하자 때를 기다린 듯 법망이 조여 왔다. 이제는 보안원 신분이 아닌 그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만큼 상급에서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려 하지 않았다. 결국 K씨는 구속을 피해 재혼 넉 달 만에 두만강을 건너게 되었다.

K씨는 새로 맞은 아내도 함께 데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여인은 조용히 그 말을 일축했다. 자신은 여기서도 잘 살 수 있다며 아무 걱정 말고 어서 몸을 피하라고 일렀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도 K씨는 바람 부는 두만강에서 아내와 이별을 하던 때가 떠올라 눈물을 훔친다고 말했다. 가까운 거리지만 한 번 나오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떠나왔으니 말이다.

하나원(북한이탈주민이 남한 입국 시 일정기간 사회화 교육을 받는 기관)을 나온 몇 달 후 K씨는 두고 온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브로커를 찾았다. 그런데 브로커가 요구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한국에서 그 비용을 마련하자면 몇 년은 착실히 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당신은 진짜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건설 현장에 나간 K씨는 열심히 일했다. 돈을 모을 때까지 아이들이 제발 굶어죽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 와중에 브로커에게 두고 온 아내의 안부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탈북 후 박해를 받지 않았나 싶어서였다. 이후 어느 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중국에 나가 있는 브로커로부터 연락이 왔다. 두 아이와 엄마를 모두 무사히 국경을 넘겨 옌볜(延邊)에 데려왔다는 연락이었다. 곧 한국으로 입국하게 될 거라는 말도 했다. 너무나 뜻밖이라 미처 할 말을 잃었다.

K씨의 아이들과 본처를 탈북시킨 일은 바로 탈북 전 재혼한 여인이 한 일이었다. 브로커로부터 구체적 사연을 들은 K씨는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다시 만날 수 없는 땅에 가버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여인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던 것이다.

“쉽지 않은 여자던데요. 어지간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강을 건널 수도 있었는데 애들 친엄마인 본처가 가야 한다며 세 명의 비용까지 다 부담하더라고요. 당신은 진짜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브로커는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더 놀라운 건요. 그렇게 세 식구를 떠나보내면서 그 여자는 환히 웃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눈에서는 줄줄 눈물이 흘러 내렸고요” K씨는 울컥 목이 메어 할 말을 잃었다.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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