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12월 1일

현장르포 | ‘프라하의 봄’ 실현한 체코 … 변화의 현장을 가다

print

현장르포

프라하의 봄실현한 체코 변화의 현장을 가다

권민성 / 김포시청 주무관

필자는 경기도 김포시청이 주최하고, 평화문제연구소와 독일 한스자이델재단이 주관한 ‘2017 김포시 공직자 통일역량강화 국외연수’에 참여, 지난 11월 11~19일 독일과 체코를 다녀왔다. 이번 연수는 통일준비 사업의 일환으로 독일의 통일 전후 각 분야 정책들을 살펴보고, 체코의 정치제도와 시장경제체제 전환의 성과를 확인하는 것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중 필자는 체코에서 보고 느꼈던 점들을 전하고자 한다.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을 연결하고 있는 카를교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을 연결하고 있는 카를교

바츨라프 광장, 체코 자유·민주화의 상징

프라하는 중세 때 지어진 건축물들을 기반으로 아름답게 조성된 도시이다. 프라하시의 중심이 되는 국립박물관 바로 앞 바츨라프 기마상이 서있는 일대가 바츨라프 광장이고, 박물관에서 구시청사 광장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길이 신시가지다. 신시가지로 부르고 있지만 사실 4백년 역사를 가진 거리다.

바츨라프는 10세기경 침입한 외적을 보헤미아 기사들과 함께 물리쳐 국난을 극복했던 인물로 체코 국민들이 우리의 이순신 장군처럼 존경하는 인물이다. 또한 이곳은 체코 민주화의 상징인 ‘프라하의 봄’이 일어났던 현장으로 수많은 체코 젊은이들이 소련에 대항하여 자유를 외쳤고, 당시 분신한 2명의 청년과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나무가 바츨라프 동상 앞에 있다. 그 앞 무대에서는 각종 집회나 콘서트가 열려 ‘젊은이의 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구시가지는 중세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거리악사들의 연주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구시가지와 연결된 카를교는 너무나도 유명해 프라하를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가보는 명소다.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을 연결하고 있는 카를교는 기능 중심의 일반 다리와 달리 참으로 아름답고 예술적이다. 다리에는 거리 화가들로 분위기를 돋아주고 있었는데, 사실 이들은 순수 예술가라기보다 경제적 개념이 더 클 것으로 보였다.

카를교는 원래 12세기에 목재교가 같은 위치에 있었으나 블타바 강의 범람으로 붕괴되자 석재로 대체하였다. 지금의 다리는 카를4세 때 길이 516m, 16개 기둥으로 건설했다. 이후 바로크 시대 때 양 난간에 만들어진 30개의 조각상으로 인해 카를교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가 되었다.

프라하의 하이라이트는 프라하성과 그 안에 있는 비투스 대성당이다. 카를4세의 재위기간인 1334년 건설을 시작, 1929년에 완공했다고 하니 무려 600년을 체코 역사와 함께 걸어온 것이다. 특히 고딕양식의 결정체라고 평가하는 비투스 대성당은 건물이 웅장한데다 섬세한 문양과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성당 안의 스테인드글라스도 너무 아름다워 방문객의 발걸음을 한참이나 멈추게 하였다.

영욕의 역사 불굴의 저항으로 되찾은 자유와 민주 시대

독일,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들과 직간접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체코는 지정학상 우리나라보다도 더 불리한 위치에 있다. 중세부터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제국 등으로부터 수없이 침략을 당했고 국권을 상실하였다. 그때마다 체코 민족은 독립을 위한 저항운동을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을 이루었지만 이때도 소련의 간섭으로 진정한 주권국가라고 할 수 없었다. 이에 지식층이 중심이 되어 ‘프라하의 봄’이라고 부르는 자유화 운동도 일으켰으나 소련의 무력침공으로 좌절당하고 말았다. 이후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면서 1989년 ‘벨벳혁명’을 통해 마침내 자유와 민주의 시대를 맞은 것이다.

체코의 경제는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시대부터 ‘제국의 공장’이라 일컬을 정도로 공업이 발달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데다 공산정권의 중공업 우선정책으로 1950년대 말까지는 선진공업국 지위에 있었다. 주요 산업이 고품질의 금속과 기계공업이듯 프랑스의 에펠탑을 만든 철골 구조물도 체코에서 가져다 쓴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가 침체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30여 년을 지내다 경제체제 전환이라는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공산권 붕괴 후 동유럽 국가들 대부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체제전환에 성공한 나라는 체코,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몇몇 국가들이다. 출발 시점은 같은데 왜 이 나라들만 성공했을까? 전문가들은 추진방식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성공한 나라들은 적극적인 개혁정책을 펼치면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확립했고, EU 등과 경제통합을 이루는 등 열린 경제체제를 추구하였던 결과였다. 하지만 이들 국가 역시 개혁 초기에는 물가가 급등하고, 실업률이 상승하는 큰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가 있었기에 오늘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연수를 통해 알게 된 체코의 위대한 인물을 소개하고 싶다. 카를4세(1316~1378년)는 우리나라의 세종대왕(1397~1450년)과 거의 같은 시대의 왕이다. 세종대왕보다 조금 먼저 살았는데 두 인물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보헤미아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 카를4세는 체코가 역사적·문화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유럽문화의 중심과 제국의 정치적 구심점이 되게 만든 사람이었다. 그는 과학과 기술을 장려하고, 상공업을 육성해 민생을 보호하며, 학예를 장려해 동유럽 최초로 대학을 세웠다. 또한 프라하성, 카를교 등 각종 건축물들을 건립하는 등 이번에 프라하에서 접했던 많은 중세 문물들을 가능하게 한 정치지도자였다.

1348년 설립된 프라하대학으로 인해 체코는 당시 학술, 출판, 건축, 예술 등 문화의 중심지로 국위를 떨칠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 들어와서는 문학 작품 <변신>으로 유명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 대통령이면서 극작가였던 바츨라프 하벨, 체코 특유의 정서와 조국에 대한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했던 스메타나(‘나의 조국’)와 드보르자크(‘슬라브 무곡’) 등 우리에게 친근한 예술가들도 많이 있다.

카를교 입구에 위치한 카를4세 동상 앞에서 연수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카를교 입구에 위치한 카를4세 동상 앞에서 연수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체코, 한반도 통일에 많은 관심 이유는?

체코와 우리나라는 1990년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대통령 등 국가지도자들이 상호 방문하면서 경제·문화·학술 분야의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사증면제협정이 체결되어 있어 비자 없이 90일간을 자유롭게 체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체코는 역사적, 정치적 경험과 사회문화적 특성으로 한반도에 주는 메시지가 많다.

이번 연수는 체코 주재 한국대사관 측과의 간담회로 마무리되었다. 대사관의 한 인사는 “체코는 한반도 통일에 관심이 많고 심층적인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의아했는데 생각해 보니 체코는 한국전쟁 후 휴전체제를 감독하기 위해 구성됐던 중립국감시위원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전쟁 이래 한반도 평화유지에 지속적으로 기여해 온 나라였으니 우리 통일 문제에도 관심이 높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그의 다음 말은 우리의 단순성을 돌아보게 했다. 사회주의체제를 경험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체코와 북한 두 나라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체제지만 체코는 원래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로서 잠시 사회주의를 경험했다가 원래 체제로 복구되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의할만한 말이다. 모든 일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바른 방향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다. 한 두 가지 근거를 가지고 쉽게 단정하고 결론을 내리는 안이한 사고방식을 경계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 공직자들이 통일준비 역량을 쌓으려면 각자가 맡은 일이 바로 민족공동체의 미래로 연결된다는 사명의식이 더욱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 것도 체코 방문의 중요한 성과였다.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