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3월 2일

한컷 속 북한 | 금기의 끝, 최고지도자 얼굴

print

한컷 속 북한1

금기의 끝, 최고지도자 얼굴

변영욱 /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

지난 2월 10일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예선 남북 단일팀 대 스위스 경기에서 북측 응원단이 가면을 쓰고 있다. ⓒ연합

지난 2월 10일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예선 남북 단일팀 대 스위스 경기에서 북측 응원단이 가면을 쓰고 있다. ⓒ연합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북한 응원단이 젊은 남성의 가면을 들고 응원을 했다. 국내 인터넷 언론의 사진기자가 이 모습을 촬영해 “김일성 가면”이라는 표현을 써서 인터넷에 올렸고, 이를 둘러싼 논쟁이 붙었다. “북한이 김일성 우상화 선전을 했다”는 주장에 통일부는 “김일성 가면은 절대 아니다”라고 부인하며 김일성의 모습이라면 눈 부분을 칼로 오려내는 것이 가능했겠느냐고 설명했다. 다음날에는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팀 경기장에 김정은으로 분장한 배우가 나타나 “평화”를 외치자 북한 응원단이 놀라는 모습이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김일성과 김정은의 얼굴을 둘러싼 논쟁과 사건은 남북한 사이에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만큼 그들의 얼굴을 수용하는 태도에 있어 남과 북은 차이가 있다. 문화의 차이인지 정치체제의 차이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흉내 내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그 사람의 특징 중 어느 측면을 강조하거나 과장하는 것을 수반하며 그 과정에서 일정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인이나 권력자의 모습을 그림으로 재해석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고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해야 가능하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얼굴이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만평에 등장한 것은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후부터이고, 권위주의 시절에는 불가능했다. 대통령으로 따지면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다.

, 최고지도자 얼굴 표현은 엄격한 검열 통과해야

북한의 경우 최고지도자의 얼굴은 아주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그림으로 표현될 경우, 국가의 엄격한 검열을 통과해야 하며 표현 방법은 모델을 ‘근엄하거나 멋있게’ 보이도록 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사진기자인 필자는 사진으로 세상을 표현하는 일을 20년째 하고 있다. 2004년부터는 북한 사진을 연구하기 시작해 북한이 공식적으로 내놓는 사진을 통해 북한 최고지도자 사진의 변화와 특징을 유심히 살펴왔다. 그리고 북한 최고지도자 연구와 남북한 최고지도자 사진 비교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 사진에 대한 공식적인 표현은 ‘영상’, ‘영상사진’, ‘수령의 영상이 모셔진 사진’ 등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반 사람들은 이를 ‘1호 사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67년 김일성 유일사상체계 확립과 더불어 ‘1호 사진’의 형식과 내용은 일정한 틀을 갖게 되었고, 김정일의 경우 그 틀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 정부 역시 2008년 이후 ‘1호 사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1호 사진’을 대하는 북한 사람들의 태도는 매우 특이하다.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은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이 비를 맞으며 도로변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오열했다. ‘위대한 장군님의 얼굴이 구겨진 채 비를 맞고 있다’는 이유였다.

북한의 월간 화보 <조선> 2006년 6월호에는 “평양 미산소학교에 재학 중이던 아홉 살 소녀 유향림 양이 지난 2003년 1월 자신의 집에 불이 나자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속에 뛰어들어 초상화를 구하다가 희생됐다”는 미담을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해당 소학교에는 이 어린이의 동상이 세워졌으며 학교 이름은 ‘유향림소학교’로 바뀌었다.

1999년에는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조업 중 풍랑을 만나 숨지면서도 초상화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보호한 15명의 선원들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가 부여되기도 했다. 북한이 2004년 4월 7일 전국에 배포한 ‘전시세칙’에 따르면 전쟁이 일어날 경우 북한 주민이 1차적으로 해야 할 대피 요령으로 김정일과 그 부모의 초상화 그리고 동상을 보전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1호 사진관리 따라 영웅되거나 문책되거나

북한 사람들은 <노동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최고지도자의 사진 역시 훼손되거나 더럽혀지지 않도록 조심히 다뤄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남쪽에서 활동하던 중 1950년 월북해 ‘고구려벽화연구’, ‘조선화기법’, ‘조선화채색법’ 등의 책을 펴낸 화가 김용준은 자신의 집에서 본 <노동신문>에서 ‘수령님 초상화’를 따로 오려내지 않고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렸다는 이유로 문책을 당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은 탈북 후 쓴 책을 통해 환갑을 넘긴 미술이론가이자 화가가 자살한 것이 ‘김일성 초상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지난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악수 장면 사진이 인쇄된 신문 복사본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에 대해 북한은 우리 측 사진기자들에게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 같은 최고지도자의 얼굴에 대한 북한의 경직성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유별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물론 ‘1호 사진’의 관리에 관한 원칙이 항상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신문>에서 ‘1호 사진’만을 분리해서 폐지로 버리지는 않는다는 탈북자들의 증언도 있고, 남쪽 방문객들이 <노동신문>을 구겨서 비행기 좌석 앞 그물바구니에 넣어 방치하는 것에 대해 북한 승무원들이 큰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는 경험담들도 있다.

하지만 ‘1호 사진’의 사용과 관리에 대한 북한의 원칙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를 이해하는 것이 남북 교류의 작지만 중요한 부분인 것으로 필자는 믿고 있다. 이번 호는 연재의 시작이다. 앞으로 독자들과 북한 사진을 통해 북한의 숨겨진 내면의 모습을 이해하는 여정을 갖고자 한다.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