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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훈의 취재수첩 | 2018 평창, 평화의 씨앗 뿌렸다 201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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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훈의 취재수첩

2018 평창, 평화의 씨앗 뿌렸다

장용훈 /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지난 2월 25일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에서 평창올림픽을 마무리하는 불꽃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연합

지난 2월 25일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에서 평창올림픽을 마무리하는 불꽃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연합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평창 동계올림픽은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발사와 군사적 옵션을 포함한 미국의 강경한 대응 발언으로 각국의 선수들이 참가를 고민해야만 할 정도로 국제사회의 걱정이 컸고 위험한 대회였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은 북한의 참가로 평화올림픽을 향한 마지막 퍼즐을 맞추면서 국제사회에서 성공적인 대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평화올림픽 시작은 유엔 휴전 결의안 채택으로!

평화올림픽의 출발은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 주도로 이뤄진 유엔의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휴전 결의안의 채택이었다. 제72차 유엔 총회에서 ‘올림픽의 이상과 스포츠를 통한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 건설’이란 결의는 “제23회 동계올림픽대회 및 제12회 동계패럴림픽대회가 각각 2018년 2월 9~25일, 3월 9~18일까지 대한민국 평창에서 개최되는 것을 주목한다”면서 “회원국들이 평창에서 개최될 동계올림픽 개막 7일 전부터 동계패럴림픽 폐막 7일 후까지 유엔 헌장의 틀 내에서 올림픽 휴전을 개별적으로, 또한 집단적으로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9일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강경 일변도의 노선을 변화할 근거를 스스로 마련했다. 이어 지난 1월 1일에는 육성 신년사를 통해 “새해는 우리 인민이 공화국 창건 70돌을 대경사로 기념하게 되고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경기 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하여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 있는 해”라며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평창동계올림픽은 평화올림픽을 향한 마지막 발걸음을 시작했다.

이어 남북한은 속도를 냈다. 남북 양측은 1월 9일 고위급회담을 열고 3개 항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남북은 공동보도문에서 북측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고위급대표단과 민족올림픽위원회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을 파견하기로 하고, 남측은 이에 필요한 편의를 보장하기로 했다. 이어 1월 17일 열린 차관급 실무회담에서 남북 양측은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입장하며, 여자아이스하키 종목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북측은 이날 회의에서 30여 명의 태권도시범단을 파견하며, 평창과 서울에서 시범공연을 하기로 했다. 북측은 아울러 230여 명 규모의 응원단을 파견하며 남측 응원단과의 공동응원을 진행할 것을 합의했다. 남북 간의 합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협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승인되었고 평창동계올림픽은 평화올림픽으로 치러질 기반을 갖췄다.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우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이루기 위한 북한의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국내에 들어왔고 뒤이어 북한 선수단도 올림픽 선수촌에 입촌했다. 또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강릉과 서울에서 공연할 북한 예술단 본진이 2월 6일 강원도 동해 묵호항에 만경봉 92호를 타고 들어왔다. 이어 2월 7일에는 김일국 체육상을 비롯한 북한 민족올림픽위원회(NOC) 관계자 4명과 응원단 229명, 태권도시범단 26명, 기자단 21명 등 북측 방남단 280명이 한국을 방문해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 여장을 풀고 올림픽 일정에 들어갔다.

평화올림픽의 서막은 역시 2월 9일 열린 개회식에서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남측 원윤종, 북측 황충금 선수가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여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감동을 선사했다. 또 개회식의 하이라이트인 성황봉송에서는 여자 아이스하키 ‘팀 코리아(남북 단일팀)’의 박종아(남측), 정수현(북측) 선수가 성화봉을 이어 받아 마지막 성화점화자인 김연아(피겨스케이팅 전 국가대표)에게 건네는 장면은 더 드라마틱했다. 이에 대해 미국 <AP> 통신은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의 모든 조명을 받은 하나된 한반도”라고 보도했다.

남북 공동입장이 평화올림픽의 문을 열었다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경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단일팀 구성 초기 여러 논란이 있었고 올림픽 첫승 사냥에는 실패하였지만 단일팀은 몸을 던지는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대회 후반으로 갈수록 단합된 모습을 보여줬다. ‘4:1’로 패한 일본전에서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단일팀의 첫 골을 기록했다. 이날 골이 된 퍽은 국제아이스하키연맹 명예의 전당에 전시될 예정이다.

15년 전 2003 대구유니버시아드 경기대회 이후 남한을 다시 찾은 북한 응원단은 단일팀의 경기와 북한 선수들의 경기뿐 아니라 남한 선수들의 경기가 벌어지는 경기장을 찾아 한민족임을 보여줬다. 특히 북한 응원단이 평창올림픽 경기에서 펼친 응원은 다소 이질적인 느낌에도 남측 관중의 호응을 끌어내 응원 열기가 달아오르게 하는 역할을 했다. 북한 응원단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이겨라!”, “힘내라!” 등 구호를 외치면 남측 관중이 이를 따라 해 거대한 함성으로 번졌고 북한 응원단이 시작한 파도타기는 관중석 전체를 한 바퀴 돌곤 했다.

경기 중 휴식시간이 되면 관중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북한 응원단 쪽으로 쏠렸다. 이에 화답하듯 북한 응원단은 이색적인 춤과 노래로 경기와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북한 응원단이 야외공연에서 연주한 <반갑습니다>, <다시 만납시다>와 같은 북측 가요는 어느덧 남측 대중에도 익숙해져 관람객이 연주에 맞춰 가사를 읊조리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북한 응원단도 남측 대중의 반응에 상당히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월 10일 남북 단일팀 첫 경기 응원에서 소품으로 쓴 ‘미남 가면’이 논란이 되자 다음 경기부터는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북한 응원단은 응원뿐 아니라 경기 관람에도 열중했고 내외신 취재진의 질문도 피하기만 하기보다는 짤막하게 대답하기도 하는 등 과거 미녀 응원단에 비해 자연스러운 인상도 줬다.

올림픽 기간 서울과 강릉에서 이뤄진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도 평화올림픽을 부각하는 동시에 문화올림픽으로써 이번 올림픽을 풍성하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2월 8일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삼지현관현악단의 공연은 올림픽 개회식 전날 선보여 올림픽 전야제 성격의 공연으로 클래식부터 트로트까지 파격적 구성으로 눈길을 끌었다. 특히 공연에는 가수 이선희의 <J에게>,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등이 포함되어 남쪽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김정은, 동생 김여정 특사 통해 문 대통령 방북 요청해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풍성하게 한 북한의 참여는 고위급대표단의 파견으로 정점을 찍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을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함께 대표단으로 남쪽에 파견했다. 김 제1부부장은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함께 개회식을 함께 지켜봤고 단일팀 경기도 응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김 제1부부장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이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초청 의사를 2월 10일 구두로 전달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나가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여건’의 의미에 대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북·미대화가 필요한데, 남북관계로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전체 환경과 분위기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 정부는 이날 무산되기는 했지만 미국의 펜스 부통령과 김 제1부부장 간의 회동을 주선하기도 해 평창동계올림픽의 평화에 무게를 싣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북한의 선수와 응원단, 예술단, 고위급대표단이 응원과 공연, 공동입장과 경기를 통해 올림픽의 평화 정신을 키웠을 뿐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징검다리도 놓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2월 12일 김여정 제1부부장 등으로부터 방남 결과를 보고 받는 자리에서 “이번 올림픽 경기대회를 계기로 북과 남의 강렬한 열망과 공통된 의지가 안아온 화해와 대화의 좋은 분위기를 더욱 승화시켜 훌륭한 결과들을 계속 쌓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향후 남북관계 개선 발전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해당 부문에서 실무적 대책을 세울 것과 관련한 강령적인 지시를 했다.

그리고 북한은 폐막식에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인 김영철 당 부위원장을 파견했다. 김 부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을 연달아 만날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김영철 통전부장은 문 대통령에 대한 김 위원장의 방북 초청을 재차 환기하며 남북정상회담의 조기 성사를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여건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만큼 이에 대한 북한 나름의 조치를 내놓을 수도 있다.

또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간 탈북 여종업원 송환을 내세워 우리 측의 이산가족 상봉 요청에 응하지 않았던 북한이지만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진전된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달 열렸던 남북고위급회담의 정례화 문제는 물론 당시 합의되었던 군사당국회담 개최 및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협력 활성화와 관련해서도 보다 구체적 수준의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촘촘히 가동되고 있어 경제 분야의 교류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남북관계 복원의 물꼬가 된 데서 보듯 남북교류가 사회·문화나 체육 등의 분야에서 먼저 이뤄질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군사당국회담의 경우 이번 고위급대표단의 방남을 계기로 조만간 현실화한다면 북한 비핵화나 한·미연합군사훈련 등 대화의 동력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사안보다는 확성기 방송 중단 등 군사분계선에서 긴장 완화와 같은 의제가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건조성 위한 북·미 간 대화, 물꼬 틀까?

더 주목할 대목은 북한이 이번 대표단에 외무성에서 북·미관계를 담당해온 최강일 북아메리카국 부국장을 포함시켰다는 사실이다. 최 부국장은 과거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나 국제회의 참석 등을 통해 핵문제나 대미관계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대외에 알려왔다. 그는 과거 6자회담 및 6자회담 산하에 설치된 실무그룹에도 참여하면서 미국 정부와 직접 대화한 경력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9월 스위스 싱크탱크인 제네바안보정책센터(GCSP)와 스위스 외교부가 공동 주최했던 트랙 1.5(반관반민) 회의인 ‘체르마트 안보회의’에도 참석했다. 당시 최 부국장은 미국 측 참석자인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와 현장에서 비공식 접촉을 했다고 일본 <NHK> 방송이 보도하기도 했다. 최 부국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초기였던 지난해 1월 말에는 미국 <NBC> 방송 취재진과 평양에서 인터뷰도 했다.

그동안 북한은 핵문제는 북·미 사이의 문제라는 입장을 보여 왔는데, 남북 간에 이뤄지는 회담이나 협의에 참가하는 대표단에 북핵문제 등을 다루는 외무성 인사가 동행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에 ‘여건’ 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 등을 고려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우리 정부는 이번 고위급대표단의 방남 기간 핵문제나 북·미관계에 대한 북한의 변화된 입장을 끌어낸다는 방침이어서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또 북한 고위급대표단의 방남 기간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이 이끄는 미국 정부 대표단이 방한 중이어서 우리 정부의 중재로 북·미 사이의 접촉이 이뤄질지도 주목되고 있다. 특히 이번 미국 대표단에는 백악관에서 남북문제를 실무적으로 담당하는 앨리슨 후커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이 비공식 수행원으로 포함되어 있다. 후커 보좌관은 지난 2014년 11월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의 석방을 위해 방북해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 협상할 때 수행원으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창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를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의 씨앗이 뿌려졌다. 이제 이 씨앗의 싹을 틔워 뿌리 내리는 일이 남았다. 한반도에 평화를 공고히 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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