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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 속 북한 | 최고지도자를 찍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인가?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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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 속 북한3

최고지도자를 찍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인가?

변영욱 /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

2012년 10월 29일자 에 실린 사진. '1호 사진가'중 한 명으로 보이는 인물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촬영하기 위해 당시 김양건 노동당 비서와 박봉주 경공업부장 등 고위급 인사를 및리고 나오고 있다. (출처: 노동신문)

2012년 10월 29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 ‘1호 사진가’중 한 명으로 보이는 인물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촬영하기 위해 당시 김양건 노동당 비서와 박봉주 경공업부장 등 고위급 인사를 및리고 나오고 있다. (출처: 노동신문)

한국 대통령의 일정을 촬영하는 기자를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라고 부른다. 신문사 또는 방송사는 경험이 많은 기자들 중에서 이들을 자체적으로 선발해서 청와대로 파견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청와대에서 출입 기자를 사전에 ‘점검’하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를 찍는 사람들을 어떻게 부르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사진을 ‘1호 사진’이라는 별칭으로 부른다는 것을 감안하면 ‘1호 사진가’ 정도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문헌상으로는 ‘수행 촬영가’라는 표현이 있다.

최고지도자를 찍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다. 김정은 시대 초기에는 두 사람의 사진기자가 있었다. 약 170cm의 신장에 40대 후반 가량으로 보이는 남성(A)과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B)이었다. 이중 40대 후반의 남성(A)은 김정일 시대에도 최고지도자를 근접해서 촬영하는 기자였다.

그런데 지난 4월 한국예술단의 평양공연 관람을 위해 나타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옆에는 새로운 사진기자 한 명(C)이 보였다. 그는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김여정이 지난 2월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함께 수행했던 사진기자로, 해병대 군인처럼 옆머리를 짧게 자른 단단한 체형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다.

베일에 쌓인 북한 ‘1호 사진가’, 최근 세대교체 확인

통상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 행사를 근접 촬영하는 사진기자(방송 카메라기자 제외)가 2명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로써 북한 ‘1호 사진가’에도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을 담당하던 40대의 A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를 30대 초중반의 남성 B와 C가 맡은 것이다.

필자가 북한 사진기자를 설명하면서 40대 남성, 30대 남성 등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북한 신문에서 그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신문>에 실리는 김정은의 사진과 기사는 ‘본사정치보도반’이라는,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특별취재팀’ 정도로만 출처가 표시된다. 이는 철저한 보안을 위한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에서 최고지도자 사진 아래에 사진기자의 이름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동신문>은 1950년대에는 김일성을 찍은 사진 밑에 이대영, 한시환, 최인영, 김승균 등의 이름을 표기했다. 그러다가 1967년 10월부터는 개인 이름 대신 ‘<조선중앙통신사> 제공’ 또는 ‘본사정치보도반’ 이라는 팀 이름이 붙기 시작했고, 이러한 관행은 김정일 시대를 지나 현재 김정은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편 ‘본사정치보도반’이 쓰는 기사와 찍는 사진은 <노동신문>을 위해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에는 같은 사진과 기사가 제공된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정치보도반’은 김정은의 동정을 일률적이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존재하는 ‘전속팀’과도 같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전담하는 기자가 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만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를 촬영하는 이들은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뿐만 아니라 체력과 사상성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쳐 선발될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북한에서 김일성 전담 사진기자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 1967년쯤이었다는 것은 문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1967년은 북한에서 최고지도자 우상화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김정일이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시기인 동시에, 제4기 15차 전원회의를 기점으로 김일성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해 문학, 미술, 음악 등 거의 전 분야의 예술 활동이 굴절을 겪은 시점이었다. 이즈음부터 북한 신문에는 일반 정치인 차원을 넘어선 유일무이한 지도자로서 김일성 얼굴이 게재되기 시작했고, 문학계에서는 ‘위대한 수령’을 형상화하는 작품들이 생산되기도 했다.

김정일은 1968년 10월 8일, 최고교육기관인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생들에게 “사진을 배워 김일성 사진을 전담해 달라”고 지시한다. 그는 “당에서는 대학 기간에 학습과 생활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인 동무들을 우리 당 사상전선의 중요한 초소인 영화·예술 부문의 수행 촬영가, 영화 연출가, 영화 문학 작가로 배치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사진기술이라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사진기를 갖고 몇 달 동안 찍어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라며 사진기술 보다는 ‘사상성’을 중시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사진기술보다는 철저한 사상성이 더 중요해

그밖에 북한 사진기자들은 어디서 사진을 배우는 것일까? 현재 북한에서 사진을 배울 수 있는 최고 과정은 평양연극영화대학 사진학과로, 1970년대 초반에 4년제 과정이 정식 개설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기자가 되려면 대체로 이 학과를 나와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직 ‘1호 사진가’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양성되는지 아니면 평양예술대학의 사진학과 등에서 양성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필자가 2000년대 중반 평양에서 만난 한 북한 사진기자의 경우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 신문과 출신으로 “1년간 사진 과목을 수강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꼽아보자면, 당연하지만 최고지도자의 전속 사진기자들은 최고급 사양의 신형 카메라를 지급받으며 촬영을 위해 가장 좋은 자리를 우선 배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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