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6월 4일

화폐타고 세계여행 | 문화 ‘씨실’, 경제 ‘날실’ … 풍요의 폴리스,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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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타고 세계여행 15

문화 씨실’, 경제 날실

풍요의 폴리스, 싱가포르

시나씨 알파고(Şinasi Alpago) / <하베르코레> 대표  

동남아시아에 섬으로 이루어진 도시국가가 있다. 공용어가 4개이고, 종교는 6개 이상이다. 다인종이 모여 살고 있으며 특히 중국인, 말레이인, 인도인의 전통이 공존하는 다문화국가다. 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요지에 위치해 세계적 수준의 금융과 물류의 중심지를 자랑하고, 1960년대 이후 국가 주도 개발정책과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하기도 한 나라다. 성사와 취소를 두고 난항을 겪고는 있지만 ‘중립적 외교무대’라는 상징성으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의 개최지로 선정되기도 한 나라, 싱가포르. 이번 호에서는 다양함의 가치 속 화합을 이루며 문화적 풍요를 누리는 싱가포르 화폐 여행을 떠나보자.

이민족의 나라, 포용정책으로 26년 집권한 리콴유

2 싱가포르 달러

2 싱가포르 달러

싱가포르는 본래 브루나이처럼 말레이 민족이 살고 있던 영토에 속한 섬이었다. 1819년부터 1959년까지 약 140년 동안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았는데, 당시 영국은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과 인도에서 많은 사람들을 이 지역으로 끌고 왔다. 그렇게 인도계와 중국계 이민자들의 숫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당시 말레이 영토였던 지역에는 점차 인구 구성이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지역의 허브 역할을 했던 싱가포르에서는 중국계 인구가 다수를 구성했고, 말레이 인구는 소수가 됐다.

이후 말레이 술탄국(이슬람교국의 군주가 지배하는 나라)들은 1957년에 연방제로 통일을 한 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다. 1963년에는 다른 말레이 식민지들과 연방을 이루려고 했으나 이 계획의 복병이 있었다. 바로 싱가포르와 브루나이였다.

1964년 싱가포르에서 일어난 반무슬림 폭동 이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중앙 정부 사이에는 이미 골이 깊었던 민족 문제가 두드러지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했다.

당시 싱가포르를 이끌었던 초대 총리 리콴유는 중국계가 대다수인 지역에서 독립했지만, 그 땅의 정통성은 말레이 민족들의 영토라고 강조하였다. 게다가 북쪽에는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가, 남쪽에는 인도네시아가 있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외교노선을 취하는 것이 필요했다. 싱가포르의 총리 리콴유는 중국계 자국민의 민족주의적인 감정을 잘 다스리는 동시에 말레이 정체성을 가진 국민들을 포용해야 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리콴유는 국내 정치를 매우 예민하게 관리해 나갔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중국 느낌을 풍긴다. 그러나 국가기관들을 살펴보면 말레이적인 특징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싱가포르 화폐에는 리콴유의 포용 정책이 잘 드러나 있다.

1999년부터 모든 싱가포르 화폐의 앞면에는 말레이계인 유솝 빈 이스학(Yusof bin Ishak)의 초상화가 실리고 있다. 유솝 빈 이스학은 리콴유의 친구이자, 싱가포르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이러한 화폐 디자인 정책으로 리콴유는 말레이계 국민의 민족주의 감정을 다독일 뿐만 아니라 26년간 총리로 재직했지만, 자신이 독재자가 아니었다는 메시지도 던지고 있다. 이것은 마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자마자 자신의 얼굴을 화폐에 담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는 달리 위인들의 초상화를 실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정권을 차지한 후 화폐에 자신의 초상화를 실었던 감비아의 독재자 야흐야 자메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장베델 보카사와도 확실히 다르다.

한편 싱가포르 화폐에는 4개 언어로 ‘싱가포르’가 적혀 있다. 중국어, 영어, 말레이어 그리고 타밀어다. 이 4개 언어는 싱가포르의 공용어로 그중 말레이어가 국어다. 모든 화폐의 왼쪽 상단에는 사자와 호랑이가 그려진 국장이 보인다. 국장에는 싱가포르의 표어인 “싱가포르여 전진하라(Majulah Singapura)”라는 문구가 말레이어로 써있다.

1000 싱가포르 달러

1000 싱가포르 달러

싱가포르 국부와 관련해 앞서 언급한 리콴유 이야기만 한다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외국인들은 리콴유를 싱가포르의 국부로 알고 있지만, 실상 국내적으로 리콴유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100% 일치하지 않는다. 대신 역사적으로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Thomas Stamford Raffles)다.

래플스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관료로, 현재 싱가포르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을 관리하던 조호르 주의 술탄과 계약을 맺고 싱가포르를 1826년에 성립될 해협식민지(Straits Settlements)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싱가포르 대통령궁 건물인 이스타나(Istana)는 1869년에 완공된 해협식민지의 총독부 건물이었다. 싱가포르 역사와 현재의 상징적인 의미 때문인지 싱가포르 화폐 1000달러 뒷면에는 이 건물의 사진이 실려 있다.

스위스 1,000프랑보다 더 큰 단위의 돈?

10000 싱가포르 달러

10000 싱가포르 달러

화폐를 통해 정치와 역사를 알아봤으니 이제 마무리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나눠보려 한다. 싱가포르처럼 말레이시아에 합류되지 않았던 브루나이는 싱가포르와 화폐가치가 같다. 예를 들어 1싱가포르달러는 1브루나이달러에 해당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단위가 가장 큰돈을 스위스의 1,000프랑(한국 돈으로 약 113만원)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이보다 더 큰 화폐가 있다. 바로 10,000싱가포르달러다. 스위스 1,000프랑보다 약 8배 가치가 높은 10,000싱가포르달러는 한국 돈으로 환산했을 때 800만원이 넘는다. 다만, 국제 범죄 집단이 이 화폐를 돈 세탁에 빈번히 이용하면서 현재 싱가포르와 브루나이는 더 이상 발행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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