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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탄소하나 산업의 기원을 찾아서 | 탄소하나화학공업, 최악의 국면까지 대비한 보루? 201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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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탄소하나 산업의 기원을 찾아서 4

탄소하나화학공업 

최악의 국면까지 대비한 보루?

 박종철 / 경상대 통일평화연구센터 소장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를 시찰했다고 이 2017년 8월 23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위원장이 관계자들과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연합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7년 8월 23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위원장이 관계자들과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연합

세계대전 이후 군수물품 수요 급감과 미국 세력권에 편입된 권역에서의 원활한 석유 공급으로, 1947년 이후 석유 가격은 급락하게 되었다. 1947년부터 1951년까지 서유럽 16개 나라에 행한 대외원조계획 ‘마셜플랜’과 같이 미국은 국내의 남는 물품을 각국에 원조 혹은 경제협력 목적으로 제공하였다. 반면 소련의 세력권은 경제적 고난이 지속되었다. 일례로 해방 이후 북한의 주요 산업은 대부분 중단되었다.

해방 이후 김일성 측은 “주요 산업설비인 19개 수력발전소, 178개 탄광, 광산 그리고 흥남비료공장, 성진제강소, 청진제철소, 황해제철소, 평양화학공장을 비롯한 47개 공장과 기업소가 파괴되었고, 64개 탄광, 광산, 철도가 마비되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제시기 조선인 기술자와 과학자들이 양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기도 했다. 1946년 4월 소련군정은 김일성 측에 주요 공업설비 1,600개 정도를 인도하였고, 여기에는 아오지의 석탄액화설비 등도 포함되었다. 당시 북한 경제가 당면한 최대 애로사항이 원유 문제였기 때문에 김일성 측은 1948년까지 원산석유공장의 복구를 목표로 하였다.

1947년 말경부터 일부 열차와 흥남비료공장, 남포제련소, 황해제철소, 성진제강소, 수풍발전소 등 주요 기업이 부분 복구되었다. 하지만 원유설비와 석탄액화설비는 목표대로 복구되지 않았고, 해방 이후 북한 지역에 거의 모든 자동차까지도 중지되었다고 한다.

소련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유한 ‘나홋드카’ 산 석유를 북한의 철도로 공급하기 위하여 원산에 조쏘석유회사를 설립하였다. 1949년부터는 원산공장설비가 복구되어 소련에서 원유를 공급받아 공장이 가동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개전 초기 원유설비와 석탄액화설비는 미군 폭격단의 주요 목표가 되어 파괴되었다.

김일성, 전쟁 중에도 석탄액화설비 복구 독려

한국전쟁 시기에도 김일성은 아오지의 액화설비의 복구를 독려하였다. 1952년 전시 과학자 대회에서는 아오지공장 건설을, 1953년 6월 5일 흥남의 류안비료광장과 질안비료공장에서는 인조석유와 알콜을 증산하도록 독려하였다. 휴전 직후, 김일성은 1953년 8월 5일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6차 전원회의에서 전후 복구의 주요 재건 산업으로 ‘조쏘석유회사와 아오지인조석유공장, 류안비료공장과 질안비료공장’의 복구를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1953년 중국 정부가 중국 잔류 일본인 기술자 4천 명을 귀국시키는 결정을 하면서, 북한도 북한 잔류 일본인 과학자와 기술자의 일본 귀국을 허용하였고 이로써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이는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조선인의 북한 귀국(북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었다. 1954년 귀국한 일본인 과학자와 기술자들에 의하여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과학기술 수준을 파악하였고, 아오지에서 귀국한 과학자들은 북한의 재건 수준에 대한 발표를 하기도 하였다.

북한은 일제가 착오를 하여 개발한 석탄액화설비만이 아니라, 무연탄을 미세한 가루로 분쇄하여 내연기관에 이용하는 실험을 지속하여 1956년 성공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 북한 언론에는 사회주의 국가의 석유탐사, 원유 정제에 관한 소식이 적지 않게 보도되었다. <노동신문>은 1959년 3월부터 아오지화학공장의 메탄올 생산공정의 복구를 시작하여 1962년 완료하였고, 연간 2만4천t 규모의 메탄올 조업이 재개되었다고 보도하였고, 1960년 8월에는 김일성종합대학 화학부에서 ‘인조석유’ 실험을 하는 모습을 보도하였다. 한편 동시대에는 북한 기술자의 파견도 진행되었다.

1962년부터 중국은 북한에 원유 공급을 개시하였고, 1960년대 중반 이주연 부수상은 저우언라이 총리에게 연간 북한의 석유 소비량이 60만~70만t이라고 설명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북한에 소련으로부터의 원유 공급이 확대되었다. 1966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노동신문>에는 평양의 석유에 의한 환경오염 문제나 석유곤로 부족 현상을 해결하는 문제가 상당량 보도되었다. 김일성은 원유는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므로 외국에서 제공하지 않으면 국가 경제에 위기가 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석탄에 기반을 둔 산업 발전을 중요하게 설명하였다. 하지만 중국과 소련에서 원유를 공급받기 시작하면서 인조석유 개발이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1972년 김일성은 재일조선인 과학자들에게 북한의 화학 산업 발전을 부탁하였고, 조선대학 총장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이 인조석유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였다. 1972년 12월 김일성은 재일조선인 과학자들에게 원유를 이용한 석유화학설비의 공정은 간단하고 가격이 저렴하지만, 외국의 원유에 의존하는 것은 “남에게 멱살을 잡히는 꼴”이라며, 석탄에 기반을 둔 주체과학의 발전을 거듭 강조하였다. 또한 1973년과 1975년 중동 석유위기 상황에서 석탄에 기반을 둔 화학 산업으로 북한에는 경제 위기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친북 국가에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석탄에 기반을 둔 주체과학’의 위력을 홍보하였다.

고난의 행군’, 탄소하나 산업 직격탄 기술 발전 정체

김일성의 주체과학에 대한 강조에도 불구하고, 1960~1980년대 중·소 경제협력으로 원유가 제공되면서 북한의 인조석유 기술에 대한 자료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기술이 발전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는 북한 경제가 상당한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었다. 1994년 김일성 사후 ‘고난의 행군’ 기간 주요 산업 대부분이 붕괴되었다. 화학, 철강, 에너지 분야는 일단 가동을 멈추면 복구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업이 폐기되기도 하였다.

1991년 12월 <천리마> 잡지에 김정일은 탄소하나 산업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이는 북한 최고지도자가 최초로 탄소하나 산업을 거론한 것으로 여겨지며, 김정은의 탄소하나에 대한 정의와 동일하다.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을 비롯한 기초과학을 발전시켜 그것이 나라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데 더 잘 이바지하도록 하여야 한다. ‘탄소하나화학’이란 탄소원자가 1개로 된 물질인 일산화탄소나 메탄놀 그리고 메탄과 같은 화합물로부터 여러 가지 화학제품들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말한다. 공업적으로는 석탄이나 천연가스에서 일산화탄소와 수소가 혼합된 합성가스를 뽑아내고 이것을 여러 가지로 가공하여 에틸렌글리콜, 에탄올, 초산, 탄화수소 등 유기화학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술공정이다. 이런 유기화합물은 석유로 만들어 냈지만, 원유자원이 제한이 있다. 탄소하나화학이라는 용어가 생긴 것은 최근이지만, 연구 역사는 오래되었다. 이미 1913년 메탄올을 합성하여 공업화하였고, 그 이후 일산화탄소와 수소의 합성가스를 가지고 인조석유를 만들어 냈다. 이 부분은 1970년대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원유로 얻어내던 아닐론을 비롯한 화학섬유와 합성고무, 폴리에틸렌수지 등을 석탄이나 천연가스에서 생산되고 있다”

1980년대 말, 소련이 북한에 공급한 평균 원유가 100만t, 중국이 공급한 원유가 200만t으로 연간 400만t 이상의 석유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난의 행군’ 시기 탄소하나 산업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고, 전반적인 북한 산업이 축소되면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역시 50만t으로 줄었다. 더욱이 1999년 소련이 나진의 승리화학공장에 공급하던 원유도 중단되어 공장이 폐쇄되었다.

2016년 5월, 북한의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는 “석탄가스화에 의한 탄소하나화학공업을 창설하자”는 경제건설노선이 제시되었고,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기간(2016년~2020년)을 설정하였다. 2017년 5월에는 탄소하나화학공업 창설을 위한 대상건설이 시작되었다. 약 1년간의 준비 기간이었다. 2017년과 2018년 신년사 등에서 김정은은 ‘탄소하나화학공업’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북한 경제는 상당한 성장을 하고 있지만 유엔 결의안으로 인한 대북제재가 지속된다면 경제성장이 한계에 부딪치며 모든 자원, 특히 석유를 국내에서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정은은 2016년 탄소하나 산업 계획을 발표하고, 2017년부터 관련 시설을 대규모로 건설하고 있다. 이는 제6차 핵실험과 ‘화성-15’를 완성한 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더불어 2018년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의 결속(끝맺음), 즉 완성 선언과 시기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만약 북·미정상회담 등 일련의 협상이 결렬되어 최악의 국면을 맞게 된다면, 에너지 측면에서는 휘발유를 자체 조달하는 탄소하나 산업으로 수년을 버틴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는 미·영의 제재에 대비하여 인조석유산업을 활성화시키며 핵무기 개발을 완성한 ‘남아프리카 모델’이다. 만약 북·미정상회담에 실패할 경우 북한은 탄소하나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며 남아프리카 식으로 핵개발을 하고 실전 배치를 통하여 안전보장과 경제 위기를 타개할 가능성이 높다.

협상 실패와 최악 국면까지 대비한 기술?

탄소하나 화학의 대표적인 기업소로는 석유를 정제하는 피현군 봉화화학(피현군), 남흥화학(나선시)과 승리화학(안주시), 석탄 액화와 가스화를 하는 2·8비날론연합기업소, 흥남비료공장, 아오지공장 등이 있다. 석탄을 건류하여 제철소에 사용하고 있으므로 김책제철소, 성진제강도 등도 이에 포함이 되며, 더불어 이들 기업소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을 집진하여 다시 합성화합물질로 생산하고 있다.

이들 화학 콤비나트가 가동되기 위해서는 대량의 전기가 필요한데 ‘석탄’을 주로 이용하고 있고, 특히 석탄의 화력을 높이기 위하여 탄광뿐만 아니라 화력발전소에 건류화 공정이나 가스화 공정 설비를 건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탄광과 화력발전소 역시 탄소하나 산업에 포함된다고 분석할 수 있다.

2018년 2월 20일 탈북자 K는 북한에 산재한 석탄화학 가스화 공정에서 연유를 생산하고, 중국에서 일부 설비를 수입하여 인조석유를 생산하는 사영기업도 있다고 주장했다. 아오지에서 일본 해군은 석탄액화를 통하여 소량의 인조석유를 생산하는데 그쳤지만, 나치 독일은 갈탄을 가스화를 통하여 대량의 항공유를 공급하는 데 이르렀다. <노동신문>을 보면, 탄소하나 산업의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가 이와 같은 가스화 공정이 되고 있다.

아직 체계적으로 북한의 관련 기업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노동신문>만을 단순 참고해 보도록 하자. 건설 사업은 건설건재공업성, 기계공업성 등이 참여하고 있고, 화학 분야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가과학원, 석탄공업성, 원유공업성, 화학공업성, 국가계획위원회(광업계획국, 경제조사국, 석탄공업계회국, 연유계획국, 연유관리국 등), 전력공업계회국, 화학공업계회국, 국가과학원(경공업과학분원 비날론인견계연구소, 섬유연구소, 수지가공연구원소, 신발연구소, 종이공업연구소, 일용품연구소, 금속분원, 기계분원), 석탄과학분원(원장 김용남), 무연탄채굴연구소(순천지구연구소) 등이 있다.

특히 조선과학원 함흥분원의 비날론연구소, 생물유기화학연구소, 석유화학 및 메탄올연구소, 석유화학연구소, 석탄화학연구소, 유기화학연구소, 화학공학연구소 등과 석탄공업성 산하 석탄연구원 등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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