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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 속 북한 | 김정은이 입는 그 옷 201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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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 속 북한6

김정은이 입는 그 옷

변영욱 /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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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쁘게 이어진 남북과 북·중,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느덧 우리에게 익숙한 뉴스의 인물이 되었다. 외국의 카메라맨들이 가까이서 김정은 위원장을 촬영하게 허용한 것 자체가 북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아직 고집하고 있는 모습 중 하나는 바로 최고지도자의 패션이다.

북한 인민복 유행의 시작은 김일성 시절부터

정상회담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복장은 양복에 넥타이였다. 반면 외교 무대에서 김정은은 북한 특유의 ‘인민복’을 고수하고 있다. 이 옷을 북한에서는 ‘맞섶 양복’ 또는 ‘닫긴 깃 양복’이라고 하며 주민들은 일본어를 어원으로 둔 ‘쯔메르 양복’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인민복은 북한의 발명품이 아니다. 인도의 간디와 남한의 김구 선생 등의 사진에서도 비슷한 형식의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국에서는 ‘중산복(中山服)’이라고 부른다. 신해혁명으로 봉건제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혁명정부 대원수로 취임한 쑨원의 호가 바로 ‘중산’이다. 쑨원을 계승한 장제스와 마오쩌둥도 중산복을 즐겨 입었고, 그래서 서방에서는 이를 ‘마오룩(Mao Look)’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중산복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개혁·개방 이후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83년 후야오방 총서기가 선전특구를 방문해 “특구 간부는 옷을 잘 입어야 한다. 과감하게 양복을 입어라”라고 지시를 내리면서 양복이 중산복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 지도자들은 북한을 비롯한 외국 정상들을 만날 때 양복을 입는다. 다만 예외적으로 중산복을 입고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도 있다. 시진핑은 2015년 전승절 기념행사 때 외국 정상들과 천안문 망루에 오르면서 중산복을, 2014년 2월 네덜란드를 방문해 국왕 부부 초청 만찬에 참석할 때는 개량 중산복을 입었다.

북한에서 인민복을 유행시킨 사람은 김일성 주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소련군의 지지를 받으며 북한 대중들에게 얼굴을 드러낸 33세의 지도자 김일성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1950년 1월 농림수산부문지도일꾼 연석회의에서 연설하는 사진 속에서 김일성은 양복을 입고 있고, 1961년 9월 개최된 제4차 당 대회 때도 양복 차림이었다. 1967년 6월 양복에 모자를 쓴 채 옆구리에 팔을 올리고 인민 속에서 웃는 김일성의 모습도 확인된다.

하지만 북한 최고지도자의 공식 복장은 인민복이었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현지지도를 하거나 공식 행사를 할 때 그리고 중국을 방문할 때 김일성은 주로 인민복을 입었다. 김정일이 아버지의 후계자로 북한 정치에 영향력 발휘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김일성은 1984년 7월까지 인민복만 입었다. 그러다가 1984년 7월 17일 잠비아 공화국 외교부 대표단을 접견하면서부터 사망 시까지 양복을 입었다.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자신이 ‘닫긴 옷’(인민복)을 입고 모든 일을 할 테니 아버지는 ‘제낀 옷’(양복)을 입고 쉬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김정일에게 인민복은 일하는 사람의 복장인 것이다. 어쩌면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 시대와 달리 경제적으로 낙후된 북한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서 양복을 입을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김정일은 사망할 때까지 거의 양복을 입지 않았고 인민복만 입었다. 북한 공식 매체에서 양복을 입은 김정일의 모습 사진은 거의 없었고, 1980년대 촬영된 ‘양복을 입고 상품 박람회를 둘러보는 모습’이 김정일의 유일한 양복 차림 사진이었다.

다만 김정일은 2008년 건강이상설 이후 사망 때까지 몇 차례 양복을 입고 등장했다. 2009년 8월 김정숙 해군대학 시찰 기념사진 등 현지지도를 하는 모습에서 기존의 인민복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양복을 입고 등장했다. 자신이 권력을 잡은 후 아버지 김일성에게 양복을 권했듯이 아들이 권력을 이행받기 시작하자 김정일 본인도 비로소 양복을 입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인민복과 양복 혼용하는 김정은, 대내외 메시지는?

김정일의 권력을 계승한 김정은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2010년 9월 북한 정치 무대에 공식 등장한 이후 김정은은 항상 인민복 차림으로 공개 활동을 했다. 그렇지만 김정은이 양복을 입고 나타난 경우는 이미 꽤 많다. 김정은이 양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이 처음 공개된 것은 2012년 4월 12일이다. 당시 <노동신문>은 전날 열린 노동당 제4차 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은이 노동당 제1비서에 추대된 소식을 전하며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포즈를 취한 김정은의 대형 사진을 게재했다.

이후 김정은이 행사를 하면서 양복 입은 모습은 계속 등장했다. 2016년 5월 7일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 개회사를 하면서 양복과 넥타이 차림으로 등장했고 당 대회 직후 첫 공개 일정인 2016년 5월 13일 기계설비 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현지지도 복장으로는 처음으로 양복을 입었다.

신년사를 하는 김정은의 복장도 이제는 양복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신년사의 경우 모두 감색 계열의 인민복을 입었지만 2017년과 2018년 신년사 때는 양복에 넥타이를 맸다. 2017년 4월 김일성 탄생 105년 경축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시위 때는 양복을 입고 대중들 앞에 서기도 했다.

정치지도자를 비롯해 대중 앞에 나서는 유명인의 옷차림은 본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상대방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김정은이 양복 차림으로 등장하는 것은 북한 내부적으로는 젊은 시절의 김일성 모습을 상기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정일의 경우 양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았지만 김일성의 경우 30~40대의 젊은 나이에 양복을 입은 모습이 북한 주민들에게 각인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외부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하는 의상을 선택함으로써 정상국가의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포석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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