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8월 1일

기획 | 한·중 역사공동연구, 안보보다 인문유대로 분류해야 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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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동북아의 질서가 전환적 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7월 3~4일 한국을 국빈 방문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앞으로 양국이 ‘성숙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더욱 심화, 발전시켜나가자는 한·중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북한 핵문제에서부터 경제협력과 역사문제까지 양국이 직면한 많은 도전과 과제들에 대한 논의를 더욱 심화시키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방안에도 합의하였다. 이에 ‘성숙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더욱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양국 간 합의와 향후 과제들을 역사, 경제, 안보분야로 나누어 진단하고 전망해 보았다.

 

기획 | 한·중정상회담이 던진 도전과 과제
한·중 역사공동연구, 안보보다 인문유대로 분류해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월 3일 청와대에서 단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 주석의 방한은 지난해 6월 박 대통령의 국빈 방중에 대한 답방 차원에서 이뤄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월 3일 청와대에서 단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 주석의 방한은 지난해 6월 박 대통령의 국빈 방중에 대한 답방 차원에서 이뤄졌다.

지난 7월 3일과 4일 한·중정상회담이 열리자, 세계는 대일 역사외교의 방향을 놓고 두 나라 정상이 어떻게 합의할지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일본 아베 정권의 왜곡된 역사인식과 대외정책으로 촉발된 동북아 외교 갈등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에서 나온 공동성명에서는 일본의 역사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지만, 그 부속서에서는 양국 간 공동협력을 명확히 하였다. 사료의 발굴, 조사와 열람, 연구를 계속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공동연구와 자료교환을 별도로 명기한 점이 눈에 띈다.

인문유대 중심에 역사교류와 공동연구 있어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인 펑리위안 여사를 지난 7월 4일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으로 초청해 특별오찬을 갖기 전 정미숙 한국가구박물관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인 펑리위안 여사를 지난 7월 4일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으로 초청해 특별오찬을 갖기 전 정미숙 한국가구박물관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두 나라 간 역사공조는 인문분야의 협력 차원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인문교류를 더욱 촉진하기 위해 학술, 청소년 및 청년, 지자체, 전통예능 분야, 19개의 세부사업에 합의하였다. 이들 사업은 작년 11월에 출범한 ‘한·중인문교류 공동위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외교안보분야의 협력이 정부 간 협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이라면, 인문유대사업이라고도 부르는 인문교류는 국민 간 공감대를 넓히려는 시도다. 역사학자 사이의 교류와 공동연구는 그러한 인문유대사업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역사공조와 인문유대라는 말은 오늘날 역사분야에서의 한·중관계를 압축하고 있다. 2013년 6월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한·중미래비전 공동성명’이 그 출발점이었다면, 이번 정상회담은 이를 구체화하며 협력관계를 강화한 만남이었다.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더욱 내실화한 것이다.

역사분야에서 한·중 간의 협력은 동북공정으로 압축되는 양국 간 역사 갈등을 관리하며 안정적인 관계를 튼튼히 지속하는 토대이다. 더 나아가 한·중·일 3국 간 외교현안인 일본의 역사문제를 관리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오늘날 한·중·일 3국 간 외교관계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역사문제이기 때문이다.

3국간 역사문제는 세계화 시대라는 2000년대 들어 더 심화되어 왔다. 앞으로도 당분간 해결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외교문제화 한 역사문제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문제해결 지향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중 간 학자 교류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인문유대를 맺기로 합의한 점은 단기적인 대책과 장기적인 안목을 갖춘 대응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분야의 경우 반일 연대라기보다 갈등을 관리한 정상회담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정밀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역사공조와 인문유대 사이에 낙차가 있기 때문이다. 공동성명의 부속서를 보면, 19개의 인문유대사업은 ‘쌍방향 인문교류 제고’라는 항목에 있다. 이에 비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자료 교환을 포함해 역사문제와 관련한 ‘상호 노력과 역사연구 협력’은 ‘전략적 정치안보협력 강화’라는 항목에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양국 사회는 하얼빈역의 안중근 의사 관련 기념시설과 한국광복군 제2지대의 표지석 설치 때도 그랬지만 후자의 협력을 역사공조라는 말로 설명했지, 인문유대라는 범주에 넣지 않았다.

물론 첨예한 외교현안인 일본과의 역사 갈등을 풀기 위해 정치안보의 측면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지난 5월 ‘조선시대 사행단 교류를 통해 본 한·중교류’라는 주제의 학술회의가 단둥에서 열린 것처럼, 역사분야의 인문유대사업이 호혜적인 역사를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 더욱 그랬을 수 있다. 그러나 갈등을 외교안보차원에서, 그리고 호혜의 역사를 문화교류차원에서 접근하는 태도와 관점은 양국 외교안보라인이 안보와 역사를 제대로 분리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오히려 일본과 국제사회에 반일 연대로 비춰질 수 있다.

더구나 역사자료를 조사하고 열람하여 함께 연구하며 협력의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은 인문유대사업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일반상식이지만 역사학은 인문학의 중추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역사문제가 외교문제화 되어 있다 하더라도 학문적 접근을 우선해야 국내외에서 객관성을 인정받고 주장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적 협상력의 원천(源泉)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청소년 교류, 역사공동연구 성과와 연계해야

역사공조와 인문유대 사이의 낙차를 정밀하게 재조정하는 원칙은 역사와 안보를 분리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의 불가피성을 중국이 인정하고, 우리는 북·중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에 한·미·일 공조를 말하면서도 한·일 간의 역사적 특수관계를 당당히 풀어가야 한다.

그러면서도 공동성명의 부속서에 나와 있듯이 양국관계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해야 한다. 동북공정 때문에 중국측이 자꾸 회피하는 한·중역사공동연구위원회도 인문유대사업의 취지에 맞추어 우선 접근하면 쉽게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 관한 지속적인 공동연구는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좁히는 가장 기본적인 노력이다.

그리고 양국의 청소년 교류만을 전담하는 청소년교류위원회를 서울과 베이징에 각각 설치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대규모 청소년 교류를 역사공동연구의 성과와 연계시켜야 한다. 한·중 간 미래를 열어가는 토대는 이렇게 접근해야 튼실하게 쌓이는 것이다. 침략국가이자 분단국가였던 독일이 프랑스, 폴란드와 오랫동안 추진했던 역사대화와 청소년 교류의 경험이 이를 말해준다.

역사자료를 조사하고 열람하여 함께 연구하며 협력의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은 인문유대사업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아무리 역사문제가 외교문제화 되어 있다하더라도 학문적 접근을 우선해야 객관성을 인정받고 주장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주백 /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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