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8월 1일

기획 | 한·일관계 동북아 맥락에서 조망돼야 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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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동북아 지정학의 부활 – 일본
한·일관계 동북아 맥락에서 조망돼야

지난 7월 9일 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제1134차 정기 수요집회에 참여한 여고생들이 소녀상 주위에 앉아있다.

지난 7월 9일 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제1134차 정기 수요집회에 참여한 여고생들이 소녀상 주위에 앉아있다.

우리 정부의 대일정책은 이율배반적 요인을 안고 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일본에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지만, 여기에 안보 이슈가 얽히면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안보 면에서 한·미·일 협력에 의존하고 있고 그 중심축인 미국의 입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 정부는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과거사 문제나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본을 매섭게 몰아붙였지만 정작 한반도가 영향권에 포함된 집단적 자위권 문제가 공식화되는 과정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도 대일정책은 한·미·일 안보 공조와 맞물리면서 미묘한 줄타기를 해왔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선 완강한 입장을 견지했지만 지난해 10월 미·일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를 계기로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자 11월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을 제안하며 일본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낮췄다. 이어 1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한·일관계는 다시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올해 한·일 순방을 앞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지난 3월 한·미·일 정상회담에 응하며 다시 일본을 향한 칼날을 비켜 세웠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일정책은 과거사와 안보 문제가 복잡하게 빚어내는 딜레마에서 헤어날 수 없는가.

對미·중·일 복합적 균형 외교로 국익 극대화해야

우리에게 과거사와 안보는 어느 것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국가이익이다. 우선 민족 정통성 문제와도 직결되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당연히 엄격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과거 침략사를 부정하려는 아베 정권의 비뚤어진 역사인식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한·일관계의 정상화는 물론, 일본의 ‘정상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한·일 양국이 공히 강조하는 ‘미래지향’은 ‘과거직시’를 기초로 할 때 더욱 건실해진다. 특히 위안부 문제는 한국이 도덕적 정당성을 내세워 국제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슈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중국과 관련 역사자료를 공유하는 등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만을 이유로 상호 협력 가능한 사안마저 방치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한·일 간에는 역사인식의 괴리와는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확보해야 할 중대한 안보 이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의 대치가 지속되는 한, 그리고 중국과 일본이라는 지역 강국이 군사적으로 경쟁하는 노선을 지속하는 한, 한국으로선 역외 균형자인 미국과 제휴하면서 한·미·일 안보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득책이다.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협력 파트너로서 한국의 안보에 기여하도록 자리매김하는 것이 우리 국익에도 부합한다.

이와 관련, 많은 전문가들은 한·일관계에서 과거사와 안보 문제를 분리해 대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제안은 민족적 자존심과 국가안보 이익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현실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역사와 안보 문제는 현실 정치에선 나눠지기보다 상호 연동되기 일쑤이다. 가령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결정은 한·미·일 안보체제에 의존하는 우리 안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지만, 동시에 일본의 과거 군국주의 노선을 상기시키는 과거사 문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결정은 과거 침략주의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려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대일정책은 과거사와 안보 문제의 분리 대응을 넘어선 보다 전략적인 관점에서 재설정될 필요가 있다. 역사에 대한 당위성과 국익 우선 원칙을 견지하되, 동시에 이 두 가지가 충돌하지 않도록 융통성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지혜가 요망된다. 특히 이를 위해선 미국과의 안보 이익을 공유하는 가운데 중국은 물론, 일본과도 정상적인 대화와 협력이 가능한 관계를 회복하는 등 주변국 외교의 균형을 되찾음으로써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은 한·미동맹과 한·중협력, 여기에 한·일협조가 조화를 이루는 복합적 균형외교를 추구할 때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작금의 동북아시아 정세는 미·중이 세력 경쟁을 본격화한 가운데 내셔널리즘의 충돌로 야기된 중·일관계가 군비경쟁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이러한 역내 긴장이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태세이다. 이처럼 동북아의 전략적 유동성이 커진 것은 한국에는 일단 위기이지만, 오히려 역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은 역내에서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지만 지역 안보질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 변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민감정 아우르는 정치적 리더십 절실

한국의 대일정책도 이 같은 우리의 국가위상을 적극 활용하면서 보다 주도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를 벼랑으로 몰아 일본과 척을 지면 우리의 외교적 선택지는 그만큼 좁아진다. 오히려 한국의 대일정책은 역내 역학관계에서 우리의 ‘몸값’을 높이는 방향으로, 또 한·일관계만의 렌즈가 아니라 보다 큰 지역정치적 맥락에서 재고될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표방하고 있다. 이 구상은 일본의 협력을 얻을 때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다만, 한·일관계는 외교가 아니라 국내정치적 속성이 강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양국의 국민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국민감정을 아우르는 정치적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요망된다. 이를 토대로 보다 유연한 정책적 대응으로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자신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일본을 리드해 나갈 때 2015년 수교 50주년을 맞이하는 한·일관계는 우리 국익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으로 설정될 수 있다.

한·일관계를 벼랑으로 몰아 일본과 척을 지면 우리의 외교적 선택지는 그만큼 좁아진다. 오히려 한국의 대일정책은 역내 역학관계에서 우리의 ‘몸값’을 높이는 방향으로, 또 한·일관계 만이 아니라 보다 큰 지역정치적 맥락에서 재고될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동준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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