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8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인스턴트? 먹는 건가?” 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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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61 | “인스턴트? 먹는 건가?”

TB_201408_46 남한 생활이 처음일 때 인스턴트란 말을 몰라 난처했던 적이 있다. 한 번은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게 됐는데 누군가 “저녁은 인스턴트가 어때?” 하고 물었다. 나는 ‘인스턴트가 뭘까?’ 생각하며 쳐다봤다. 인스턴트? 이런, 또 외래어다. 그게 먹는 건가?

사람들은 김치라면이니, 부대찌개니, 햇반이니, 저 좋은 것을 연신 불러댔다. 한 사람이 “아 시끄러! 그냥 아무거나 인스턴트면 되겠네.” 했다. 심부름은 내가 가게 됐다. ‘아, 인스턴트란 음식이 있었구나’ 속으로 낯선 말인 ‘인스턴트’를 곱씹으며 편의점에 갔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눈에 ‘인스턴트’라고 쓴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물어보기 어색해 다시 몇 바퀴를 빙빙 돌았다. 찾지 못했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편의점에 인스턴트 없는데요.”

“이 편의점엔 아무리 찾아봐도 인스턴트가 없는데요.”, “아니, 인스턴트가 없는 편의점이 있다고?” 옆에서 통화내용을 듣고 이상하게 쳐다보던 매장 직원이 알만하다는 듯 낄낄 웃었다. 그때 얼마나 민망하고 창피하던지. 하여간 그날 온 사무실이 나로 인해 재밌게 웃었다.

인스턴트를 많이 먹지 말라고 하는 것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됐다. ‘그렇게 나쁘면 왜 만들지? 거기에 독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하고 무시했다. ‘사람이 살면 천년을 사나? 먹고 싶은 대로 즐기며 사는 거지, 살이 찐다고? 살이 찌면 운동을 하든가, 공사판에 나가 꽝꽝 일이나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다.

북한에 살 때 남한 라면을 딱 한번 먹어본 적이 있다. 대북지원이 많은 때여서 남쪽에서 식량은 물론, 다양한 물자들이 들어올 때였다. 김정일의 지시로 건설되는 극장에 노력동원을 나갔는데 신라면 1개씩 주는 것을 받았다.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비닐봉지에 포장된 라면을 만져보니 수첩만한 크기밖에 안되었다.

“아니, 뭐가 이렇게 적어? 젠장, 먹던 도중에 굶어죽겠다. 몇 개씩 주면 몰라, 이거야 어디 주는 흉내만 내는 거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그러다 “거 말 많은 게 누구요? 싫으면 두고 가든가.”하는 간부의 말에 흠칫하며 누가 낚아채기라도 할 것처럼 얼른 옷 속에 집어넣었다.

집에 와서 꺼내놓으니 식구들이 ‘와!’하고 반겼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나누어 먹나? 집에는 세 딸과 아내, 나, 그리고 장모까지 있었다. 라면을 끓여봐야 한 젓가락씩 돌아갈까. 겉봉에 적힌 조리법을 보고 따라했다. 그런데 끓이면 많이 불어나려니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물을 더 붓고 한참 삶았다. 라면이 푹 퍼져 죽처럼 되었지만 양이 훨씬 많아졌다.

그것을 여섯 식구가 나누어 홀짝거리며 먹었다. 솔직히 맛만 봤다고 하는 게 맞다. 그래도 기억에 처음 먹는 남쪽 라면이 엄청 맛있었다. 국물 맛이 아주 끝내줬다. 평생 라면만 먹고 살았으면 싶었다. 간부들이 빼돌린 것이 시장에 암거래 되기도 했지만 값이 비싸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탈북 과정 중에 중국에서 중국 라면을 먹어봤다. 그것도 맛이 좋았다. 중국 사람들은 내가 한국 라면을 먹어본 얘기를 하자 한국 라면이 중국 라면보다 훨씬 더 맛있다며 일본 라면도 좋은데 면은 한국 것보다 낫고 국물은 못하다고 했다.

태국에서 교도소에 갇혔을 때 그 나라 라면도 먹어봤다. 그것도 맛있었다. 당시로선 한국 라면이나 중국 라면이나 태국 라면이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자주 먹어봐야 비교할 감각이 생기지 어쩌다 한 번 먹어보는 정도로는 제대로 비교가 어려웠다.

한국에 와서야 라면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느 라면이 더 맛있는지 가리지 못했다. 그냥 라면이면 다 맛있었다. 한동안 지나서야 맛에 차이가 있는 것이 느껴졌고 내 입에 맞는 것을 골라먹을 수 있게 됐다.

“한국 라면, 북한에 가면 고관대작”

그런데 라면이 엄청 비쌀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라면만 먹고자 하면 돈이 모자랄 일이 없었다. 북한 같으면 부자 음식으로 치부될 라면이 남쪽에선 하찮은 음식 취급을 받고 있었다. 가끔 방송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경험담을 말할 때 어찌어찌 생활이 어려워져 라면만 먹고 지낸 적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처음엔 그런 얘기를 “그 정도를 가지고 고생했다니 엄살도 팔자네.”하고 들었다.

하기야 북한에서 쌀이 없어 굶어죽는다는 소식에 “그럼 라면 먹으면 되지 않아요?”하고 대답하는 어린이가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남한에선 라면의 위신이 바닥인 것 같다. 필자는 언젠가 북한에 쌀보다 라면을 보내야 주민들의 건강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라면을 얼마나 보내야 주민들이 그것으로 끼니를 때울 정도가 될까. 너무 순진한 발상이었다. 북한에 가면 한국 라면이 고관대작이 되는 줄 모르는 것이다.

북한에 살 때 남한 라면을 딱 한번 먹어본 적이 있다. 솔직히 맛만 봤다고 하는 게 맞다. 그래도 기억에 처음 먹는 남쪽 라면이 엄청 맛있었다. 국물 맛이 아주 끝내줬다. 평생 라면만 먹고 살았으면 싶었다.

도명학 / 망명북한작가펜(PEN)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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