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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학부모들의 꿈 제1중학교 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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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20 | 학부모들의 꿈 제1중학교

평양보통강중학교의 학생들이 수영장에서 방학기간을 보내는 모습을 2012년 8월 14일 이 보도했다.

평양보통강중학교의 학생들이 수영장에서 방학기간을 보내는 모습을 2012년 8월 14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체제 북한에 아이러니하게도 명문학교가 존재한다. 오히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형식적·체계적인 보완이 남한보다 발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명문학교는 제1중학교로 통칭된다. 일반적으로 1중학교는 도와 시에 하나씩 있다. 그 중에서도 더 이름난 학교로는 평양의 모란봉제1중학교, 동평양제1중학교, 창덕제1중학교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각 도에 하나씩 있는 외국어학원, 예술학원과 금성학원, 평양외국어대 부속 학원, 원자력총국 산하 수재학교도 있다. 명문학교일수록 아이들의 성적이 높아 대학추천과 진학률이 높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학교 출신’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인식이 다르다.

한편 지역마다 이름 있는 학교들이 있다. 창립역사가 오래된 학교, 김 부자가 찾은 학교, 학생실력이나 예체능으로 소문난 학교들이다. 요즘에는 실력 있는 몇몇 선생님들에 의해 이름값이 오른 학교에 학생들이 몰리면서 명문고가 되는 경우도 있다. 북한도 거주지별로 학교가 배정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간부 및 일부 돈 있는 학부모들이 구역을 벗어나 이런 학교들에, 정확히는 특정 학급으로 전학 보내는 추세에 있다.

제1중학교, 북한판 서열화 온상

1중학교는 보통 수재학교로 통한다. 수재학교의 전신은 바로 양강도 보천군에 있던 김일성고등농업전문학교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 항일운동의 상징인 보천보전투가 있었던 까닭에 보천군에 대한 배려로 보천고등농업전문학교를 김일성의 이름으로 명명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김일성고등물리학교로 개칭했다. 이어 전국에 수재학교가 생기며 양강도의 수재학교가 되었다. 김일성고등물리학교로 말하자면, 1990년대 북한 위성발사의 주역들이 이 학교 출신이라는 소문이 자자했고 위성발사 후 요란하게 치러진 전국지식인대회에 그들의 담임들이 참가하고 돌아와 자랑했던 곳이라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1중학교가 하루아침에 뚝딱 생긴 것은 아니다. 1985년 개교한 평양제1중학교는 김정일이 졸업한 남산고급중학교를 모체로 했다. 그 다음해 전국에 수재학교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1중학교이기 때문에 교육내용과 운영이 일반학교와 다르다. 우선 주요 과목 교원들은 사범대학 출신이 아니라 종합대학, 이과대학 졸업생들을 위주로 하며 교과내용은 교사들에게도 어려울 정도의 난이도였다. 학생모집도 소학교 졸업단계에서 1, 2차로 나누어 예비시험을 치렀다. 시험과목은 혁명역사, 국어, 수학 3과목을 보는데 수학 같은 경우에는 두 번씩 보고 본시험에서는 자연관찰 과목이 더해진다.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학교마다 수학소조, 수재반이라는 것이 생기고 실력 좋은 교사들이 붙어 전문지도도 한다. 입소문으로 학교 수준이 전해지며 자연히 명문학교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개교 당시 1중학교의 위세는 대단했다. 교재와 설비가 좋고, 교사의 질이 높으니 학생들의 실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으며 실력이 좋으니 대학추천을 받기 쉬웠고 시험을 치르는 대로 합격했다. 하지만 1중학교의 본질도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관치와 인맥, 돈이 맑은 물을 흐려놓았던 것이다. 간부 자제이니 합격시키고, 컴퓨터나 자재를 얻기 위해 돈주(북한의 현대판 부자) 자식도 합격시켜야 했다. 이런저런 요구를 다 충족시킬 만한 방법이 바로 북한판 서열화였다. 즉 입학 성적 순위로 1반부터 X반까지 아이들을 배치하고 분기별로 학급을 재구성했다. 실력이 부족한 학생은 학부모가 다른 형태로라도 기여해야 했다. 1중학교의 낙제생이 일반 중학교 우등생보다 낫다는 평가도 있었다. 때문에 일부는 졸업학년이 되면 일반 학교로 전학하여 원하는 대학에 가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안타까운 사연들도 속출했다. 도 1중학교 같은 경우에는 타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 많다보니 기숙사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국가의 보조는 차차 중단됐고, 집에서 식량을 보내주지 못하는 사정의 아이들은 중도에 학업을 관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실제로 머리가 비상한 지방 출신 아이들이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신분차이·사회적 물의 야기한 수재교육

1중학교 졸업생들은 대체로 이과대학, 김책공대, 김일성종합대학, 김형직사대, 건설건재대학, 기타 북한의 중앙대학들과 각 도 사범대학들에 추천을 받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보통 요직으로 진출하거나 연구소, 대학교수, 1중학교 교사들로 배치되며 빠른 출세 속도를 보였다. 이렇게 북한판 명문고인 1중학교-수재학교는 부모들의 자존심이자 꿈, 명예의 전부이다.

1중학교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일반 중학교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져갔다. 학생들은 공부하려 하지 않았으며 교사들도 긍지를 잃어갔다. 결국 2007년 일반 중학교 교재도 1중학교 교재와 동일하게 한다는 소문이 돌더니 2009년에는 시, 구역, 군급 1중학교를 없애는 조치를 취했다. 이 조치의 가장 근본적인 본질은 당과 대중과의 이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1중학교로 하여금 빈익빈부익부가 극대화되며 특정인들을 위한 학교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런 식이면 당의 대중노선이 도대체 무엇이 되느냐?’ 라는 신소가 끊이지 않았다. 더불어 당이 민심을 포착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이 대대적으로 진행한 수재교육이 신분의 차이를 가져왔으며 사회적 물의은 것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2009년에는 시, 구역, 군급 1중학교를 없앴다. ‘이런 식이면 당의 대중노선이 도대체 무엇이 되느냐?’라는 신소가 끊이지 않았고 당이 민심을 포착한 것이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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