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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시 | 모자이크 국가, 레바논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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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시 7 | 모자이크 국가, 레바논 내전
 
 
레바논은 2013년 7월 이후로 10여 건의 자살폭탄 차량 테러를 겪으며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 1월 2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근거지인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지역에서 발생한 차량 폭탄 테러 피해 현장

레바논은 2013년 7월 이후로 10여 건의 자살폭탄 차량 테러를 겪으며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 1월 2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근거지인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지역에서 발생한 차량 폭탄 테러 피해 현장

 레바논은 1943년 독립 이후 한때 세계무역과 금융 및 관광의 중심지로서 중동의 스위스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번영을 이루었던 곳이다. 독립 초기 종파 간 협약에 따라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도, 총리는 수니파 이슬람교도, 국회의장은 시아파 이슬람교도, 국방장관은 드루즈파 이슬람교도, 군사령관은 마론파가 맡아 종파별 권력을 인구비율에 맞게 분배하는 형태를 유지했다. 안정과 번영을 누리던 이 지역도 이스라엘과 아랍세계 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기도교도와 이슬람교도의 합의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레바논 분쟁의 역사는 마론파 기독교도와 드루즈파 이슬람교도 간의 충돌과 반목에서 출발했다. 시리아 북부의 성 마론 수도원을 중심으로 5세기경부터 독자적으로 주교를 선출하는 등 분파 움직임을 보이던 기독교의 한 분파가 베이루트 북쪽의 산악 및 삼림지대를 중심으로 이슬람교 지배에 저항했는데 이 분파가 바로 마론파 기독교였다. 종교의 분파적 움직임은 이슬람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11세기경부터 정통 이슬람교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드루즈파 세력이 확대되면서 레바논 내에 또 다른 폐쇄적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6세기 초에 이르러 오스만제국이 이 지역을 정복함으로써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의 종교적 갈등은 다소 약화되었다.
 
레바논 내전, 국제전으로 확산

레바논으로 유입된 시리아 난민이 100만명을 돌파했으며 유엔난민기구(UNHCR)가 지난 4월 3일 밝혔다.

레바논으로 유입된 시리아 난민이 100만명을 돌파했으며 유엔난민기구(UNHCR)가 지난 4월 3일 밝혔다.

 한편 1860년 드루즈파가 오스만 당국의 묵인 하에 마론파 기독교도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레바논 지역에 관심이 많았던 프랑스는 종교 집단 간 분쟁을 중지시키기 위해 레바논에 군대를 파견한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가 레바논 문제에 개입하게 되었고 프랑스는 오스만제국을 압박해 레바논 지역에 자치 지역을 만들게 한다. 이러한 통치에 대해 기독교도는 환영했지만 드루즈파를 포함한 이슬람교도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레바논 분쟁은 1958년에 기독교 세력의 샤문 대통령이 서방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이슬람교도들이 반발하면서 표면화되었다. 상황이 악화되자 샤문 대통령은 1958년 7월 15일 미국에 개입을 요청했고 미국은 영국, 터키와 함께 1만5천명을 베이루트에 상륙시켰다. 서방의 개입으로 사태는 수습되었으나 3개월간 계속된 소요사태로 2,700여 명이 사망했다.
 
 1975년 4월 강경파 기독교도 정당인 팔랑헤 당의 당원이 베이루트에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탑승한 버스를 습격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및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 간의 내전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1978년 3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텔아비브 습격에 대한 보복을 명분삼아 레바논을 침공했다. 사태가 확대되자 유엔은 평화유지군을 파견했으나 미국이 이스라엘과 기독교 우파를 지원하고 구소련이 시리아와 이슬람 좌파를 지원함으로써 레바논 내전은 국제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1982년 이스라엘은 PLO 본부를 레바논에서 몰아내고 기독교 정권을 강화시킨다는 명분으로 레바논을 다시 침공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슬람 민병대의 공격으로 네 차례의 중동전쟁에서 입은 인명 손실만큼의 피해를 입었고 국내 철수여론이 높아져 1985년에 남부 레바논에서 철수했다. 1982년의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결과적으로는 PLO 소탕작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레바논에서 시리아군을 철수시켜 시리아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계획된 전쟁이었다.
 
끊이지 않는 이스라엘과의 분쟁
 
 1985년 이스라엘이 철수한 이후 시아파 민병대가 남부 레바논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이슬람의 시아파는 친시리아계인 아말파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로 분열되었다. 이들은 모두 PLO의 각 파벌 및 드루즈파, 수니파와도 자주 전투를 벌였다. 특히 서베이루트와 남부 레바논을 근거로 하는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을 대상으로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하고 이스라엘 북부 지방에 로켓을 쏘는 등 반이스라엘 투쟁을 벌이고 있다. 1988년 대통령 지명을 둘러싸고 벌어진 내전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협약을 통해 인구비율에 따른 권력배분 폐지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 협약은 또 다른 불만을 야기했을 뿐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1996년 4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에 휴전이 성립되어 레바논에는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왔지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남부주둔군 간에 안전지대를 문제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2000년 5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의 안전지대에서 철수하면서 권력 공백이 발생하자,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10여 개의 부락을 점령하여 그들의 영향권 아래 두었다. 2002년 8월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공격 중지를 요구하면서 시리아와 레바논에 대해 대규모 보복 공격을 예고했고 2003년 10월에는 실제로 공격했다. 2006년 7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하는 사건으로 시작된 양측의 전쟁은 34일간 지속되어 레바논 국민 1,287명, 헤즈볼라 대원 수백명, 이스라엘은 153명이 사망했다.
 
 2013년 이스라엘과 레바논, 이스라엘 대 헤즈볼라의 분쟁은 폭력적 위기로 악화되었다. 양측의 사망자도 전년도에 이어 수백명을 넘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렇듯 레바논 분쟁은 종교와 민족문제, 그리고 인접국가와 강대국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팔레스타인 난민문제까지 결합되어 실마리를 풀기 어려운 상태이다. SNS가 발단이 되어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민주화 요구 열풍도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중동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책임 있는 국제정치 세력들이 안정적인 세계 자원공급 문제 해결차원에서 원만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이 요망된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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