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가 숨 쉰다 | 물억새군락 저공비행하는 갈대밭 신사, 잿빛개구리매 2014년 11월호
DMZ, 평화가 숨 쉰다 13 | 잿빛개구리매
물억새군락 저공비행하는 갈대밭 신사, 잿빛개구리매
많은 맹금류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좋아한다.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를 가면 사냥을 하지 못하는 독수리들도 전봇대 위를 서열순으로 차지하고 있고, 심지어 때까치 같은 작은 맹금류도 높은 곳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러다가 말똥가리, 황조롱이, 물수리들이 높은 곳에서 호버링을 하며 먹잇감을 찾는 행동을 발견한다. 그런데 매목수리과의 조류임에도 낮은 곳으로 비행하며 먹이활동을 하는 새가 있다. 바로 개구리매들이다.
개구리매는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지정돼 있으며, 잿빛개구리매는 천연기념물 323-6호, 알락개구리매는 천연기념물 323-5호이다. 잿빛개구리매는 멸종위기동물2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동물이다. 영어이름이 Hen Harrier. Hen(암탉) Harrier(침략자, 약탈자) 암탉을 약탈해가는 새 정도로 이해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잿빛개구리매로, 개구리 잡아먹는 잿빛의 새란 의미로 해석되는데 이건 생태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개구리가 없는 겨울에 왔다가 돌아가는 겨울철새이기 때문이다.
잿빛개구리매의 몸길이는 41~51㎝ 정도로 수컷은 머리에서 등, 가슴 부분은 회색이며, 배와 허리, 윗꼬리덮개는 흰색이다. 암컷은 등과 날개, 가슴, 아랫꼬리덮깃은 어두운 갈색이다. 갈색의 꼬리에는 검은색의 줄무늬가 3~5개 있으며 암수 모두 허리는 흰색인 것이 매우 특징적이다. 언뜻보면 황조롱이와 비슷해서 일반인들은 황조롱이로 보기도 한다. 다른 맹금류와 달리 이 새는 유달리 꼬리와 다리가 길어 보이고, 얼굴이 다소 뭉툭한 느낌이다. 그래서 갈대밭의 신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논뚝 위 나는 모습, 스텔스 전투기 연상케 해
잿빛개구리매는 습지나 농경지, 평지 등에서 대부분 단독으로 생활한다. 양 날개를 ‘V’자 모양으로 올리고 천천히 날면서 간혹 일시정지한 채 먹이를 찾는다. 논뚝 위를 나는 모습은 흡사 은밀하게 침투하는 스텔스 전투기를 연상시킨다. 장단반도에 독수리 월동지를 조사하던 중에 이 친구를 처음 만났다. 장단반도는 포탄사격장으로 쓰이던 곳이었다. 최근에는 포탄사격을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생태가 복원되었고 임진강변에 있던 물억새들이 이주하여 가을이면 아주 광활한 지역을 새하얀 모습으로 바꾸는 마술을 부린다. 포탄이 떨어졌던 곳은 움푹 파여서 자연스레 웅덩이를 만들었고, 그 웅덩이는 습지가 되어 다양한 생태계를 보여주는 참 아찔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인데 이곳을 조사하다가 만났다. 농수로를 유유히 비행하는 황조롱이를 보고 사진을 찍었는데 집에서 확인해 보니 잿빛개구리매였다. 그 당시에 가슴 떨리는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흐뭇하다. 그 뒤 수시로 장단반도에서 이들을 만났고 도라산역 부근에 농경지를 조사하다가 만난 잿빛개구리매 암수는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연출해 주었다. 쥐 한 마리를 놓고 암수가 공중전까지 벌이면서 보여준 리얼리티 생태 현장에 행복했다.
잿빛개구리매는 일부다처제로서 번식기에는 2~3마리의 암컷이 있다. 둥우리는 초원이나 우거진 덤불, 초습지 등의 땅 위에 작은 나뭇가지와 풀을 가지고 암컷이 만든다. 번식기간은 4월 중순부터 7월 초순까지이나 대부분 5월까지 산란한다. 식성은 주로 포유류와 조류이며, 포유류는 설치류가 대부분이고 조류는 어린 멧비둘기, 오리, 기타 조류이다. 주로 땅 위에 내려앉은 것을 잡아먹지만, 날아가는 작은 새를 추격하여 잡기도 한다. 땅 위를 걸어 다니기도 하고 가볍게 뛰기도 하는데, 뛸 때는 꼬리를 상하로 심하게 흔든다.
다른 맹금류와 텃새들의 텃세까지 … 힘겨운 겨울나기
잿빛개구리매는 유라시아 대륙과 북미에 분포하며 겨울에는 아프리카 북부,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한국, 일본 등지에서 월동한다. 잿빛개구리매는 전국의 관목이 산재하는 초지, 초원, 경작지 및 습지 등의 개활지에 주로 서식한다. 풀이 우거진 습지, 낮은 산이나 낮은 언덕, 하천 부근의 풀밭, 농경지 등에서 생활하는 겨울철새이다. 그런데 이들이 월동해야 할 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다. 서식지역이 대부분 초원습지 지역이다 보니 이곳에 도래하는 다양한 맹금류와 충돌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까치, 까마귀 등 텃새들의 텃세를 이겨내야 하는 힘겨운 겨울나기를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현재 간척사업, 습지매립, 하천정비 등 다양한 생태파괴로 야생동물들의 안전한 서식지가 매우 열악해졌다는 점이다. 필자가 주로 이들을 만났던 장단반도 물억새군락은 논으로 전환하기 위해 대규모 포탄제거 사업을 하고 있어 조만간 커다란 습지하나를 또 잃게 될 위기에 있다. 초평도와 임진강 유역의 준설계획은 또 다른 멸종위기동물들의 서식지를 멸종시킬 것이 뻔하다.
공존? 우리에게 이러한 단어를 사용할 자격이 있는가? 가슴이 아리다. 조만간 또 나는 이들의 흔적을 찾아서 아주 힘들게 다녀야 할 것이다. 허우대도 멀쩡한데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 앉아 죽은 고기 기다리지 말고 낮게 낮게 저공비행하면서 생명의 순환구조를 보아달라고 잿빛개구리는 오늘도 시위하듯 장단반도 물억새군락 위를 날아다닌다.
김승호 / DMZ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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