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한·중 FTA, 지역경제협력의 새로운 시작 2014년 12월호
시론 | 한·중 FTA, 지역경제협력의 새로운 시작
지난 11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년 반 동안 계속된 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실질적으로 타결시키는 데 합의했다. 양국 정부가 협상 결과를 조문화하여 국내의 비준절차를 밟아야 하는 일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내년 안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중 FTA 체결은 1992년 양국 간의 국교 정상화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일이다. 두 나라가 경제적으로 매우 밀접해졌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양국 정부가 이러한 경제협력관계의 발전을 지속시켜 나가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담긴 것이기도 하다.
한·중 FTA는 앞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째, 한·중 FTA 체결은 한·중관계를 더욱 확대·심화시키고 북한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 중국은 이미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대상국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최대 교역국이었던 미국, 일본과의 교역량을 합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교역을 중국과 하고 있다. 중국의 내수시장 확대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시점에 체결된 한·중 FTA는 우리 기업들의 중국시장 진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중국에 있어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세 번째 교역대상국이고 중국의 수출경제 작동에 필요한 중간재와 자본재를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자본의 국내 진출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중 양국 간의 이러한 경제협력 추세는 양국 국민 간의 교류와 우호적 태도를 증가시키고 양국의 정치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튼튼한 기초가 될 것이다.
한·중 간의 경제관계와 정치관계의 이러한 선순환적 발전은 남북한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이미 한·중 수교와 양국 사이의 급속한 경제교류 확대가 ‘순망치한’으로 표현되던 전통적인 북·중관계의 기본 틀을 바꾸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 이후 아직까지 북한을 방문하지도 않았고 김정은을 만나지도 않았지만, 서울을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는 다섯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 11월 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장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한 뒤 서명서를 교환하며 악수하고 있다.
한·중 FTA, 긴 안목의 통일준비
중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북한을 더 이상 북·중동맹으로 보호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핵개발과 인권유린으로 국제적 지탄과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을 옹호하고 지원하는 것이 더 이상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중국인들이 스스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중 FTA는 북·중관계를 더욱 멀어지게 하고 북한 당국의 선택의 폭을 더욱 좁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중 FTA는 긴 안목에서의 통일준비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한·중 FTA 체결은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과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 사이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켜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려 있는 북한이 존재하는 한 우리나라는 우리 안보의 핵심축인 한·미동맹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웃국가인 중국의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거대한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한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기회를 놓칠 수도 없다.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대미, 대중 관계에서의 불균형은 이러한 현실적 여건 속에서 자연히 만들어진 것이다. 즉,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과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은 한국의 국익차원에서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한·중 FTA가 한·미동맹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한·중 FTA가 한국을 더욱 친중적인 국가로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지나친 것이다. 우선 FTA는 어디까지나 경제관계에 관한 협정이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성장하는 이웃나라들과 경제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중 FTA를 한국의 친중국화로 인식하고 비판하려 하기보다 한국의 국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이 더욱 친중적으로 기우는 것을 막으려면 한국에 더 많은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고 한·미안보동맹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을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떼어내려면 경제적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북한의 한국에 대한 위협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경쟁하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양쪽으로부터 휘둘릴 것이 아니라 양쪽을 우리나라에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하는 협상력과 원칙이 있는 외교가 필요하다.
미·중 간 ‘전략적 균형’ 중요도 커져
셋째, 한·중 FTA는 동북아와 동아시아의 경제통합을 더욱 가속시키는 작용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익 차원에서 볼 때, 우리가 추구하는 동북아와 동아시아의 미래는 모든 역내 국가들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것이다. 지역통합의 범위와 수준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일본 대 중국의 대립구도가 강화되는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동아시아를 평화와 협력의 지역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한·중 FTA는 우리나라의 이러한 노력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FTA는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게임의 전략적 수단이다. FTA와 같은 지역경제협력이 마치 도미노처럼 확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중 FTA로 한국이나 중국시장에서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국가들은 서둘러 우리나라나 중국과 FTA를 체결하려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한·중 FTA는 한·중·일 FTA를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비중을 고려할 때 동아시아나 아·태지역과 같은 더 넓은 지역의 FTA를 촉진시킬 수도 있다. 한·중 FTA가 우리나라가 그리는 지역경제협력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이유이다.
내년에는 한·중 FTA 비준을 둘러싼 국내 정치적 논란이 시끄러울 것이다. 한·중 FTA의 국내적, 국제적 파급효과가 그만큼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중 FTA를 잘 활용하면 한반도 통일준비의 훌륭한 방책이 될 수 있고, 주변 강대국들에 대한 우리의 협상력을 키울 수도 있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동북아와 동아시아의 평화협력지대 구상을 촉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중 FTA가 가져올 수 있는 대내외적 부정적 효과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정진영 / 경희대 교수·국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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