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12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겨울에 뭐 하고 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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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65 | 겨울에 뭐 하고 노나?
 
 
지난 2008년 첫 눈이 내린 11월 20일 북한 평양 시내에서 학생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첫 눈이 내린 11월 20일 북한 평양 시내에서 학생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다.

 또 겨울이 왔다.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들과 함께 스키장에 갈 생각에 마음이 부푼다. 시간만 많다면 주말마다 스키장에 가고 싶다. 그래도 지금까진 한해 겨울에 5~6번 정도는 간 것 같다. 아직 얼음낚시를 못해 봤는데 올 겨울엔 그것도 계획에 넣었다.
 
 그런데 난감한 일이 하나 생겼다. 딸들이 올해 겨울방학엔 해외여행을 가자고 아빠를 압박한다. 동남아시아에 가자고 조른다. 성화에 못 이겨 그러겠다고 대답은 했다. 그래도 아내는 내편을 들어주려니 했는데 실망이다. 무조건 아이들 편이다. 물론 나도 가고 싶다. 그런데 해외여행까지 갈만큼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론 남한에 와서 참 행복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이면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다. 자가용을 타고 스키장에 가서 고급 시설에 숙박하며 맛있는 음식도 먹고 스키, 썰매, 보드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얼음낚시를 계획하고 겨울온천에 갈 생각도 하다니 남들 즐기는 것은 다 즐기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런 욕심도 사치라면 사치가 아닐까.
 
붉은청년근위대 훈련 때 배운 스키
 
 북한에 살 때 겨울놀이를 어떻게 했는지 추억을 더듬어 보면 어렸을 때 말곤 기억이 없다. 어렸을 땐 썰매를 많이 탔다. 그리고 ‘빼도리’라고 부르는 외발 썰매를 타고 얼음 위에서 놀았다. 스키는 별로 타보지 못했다. 위험했기 때문이다. 남한에 와서야 스키를 제대로 배웠다.
 
 북한 사정을 모르는 남한 분들은 필자가 추운 지방에서 살다 와서 당연히 스키를 잘 타려니 여겼다. 그래서 좀 부끄러웠다. 북한에 살 때 스키라고 해봐야 남한에서 타는 멋진 스키가 아니라 자체로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었다. 스키부츠도 없고 슬리퍼처럼 끈으로 발을 고정하고 탔다. 넘어지면 발목이 상하기 십상이고 그래서 부모님들이 타지 말라고 했다. 몇 번 타보려 시도했지만 겁에 질려 제대로 타보지 못했다.
 
 그러다 16살 때 부득이 타야만 되는 기회를 만났다. 북한 청소년들이 무조건 거쳐야 하는 ‘붉은청년근위대’ 훈련을 가야 했다. ‘붉은청년근위대’는 전쟁을 대비해 조직된 청소년들의 준군사조직이다. 전시에 지역방어에 동원되어야 하는 것이다. 훈련에선 사격, 전술 등 다양한 군사교육을 받는다. 남녀 청소년을 가리지 않는다. 남한에 온 탈북여성들 중에 사격을 할 줄 모르는 여성이 없다. ‘붉은청년근위대’ 훈련을 통해 실탄사격을 배우고 이후 사회생활 과정에 “노농적위대” 훈련에서 매해 실탄사격을 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살던 곳은 고산지대로 눈이 많이 내리고 겨울이 길어 다른 지역과 달리 스키타기가 훈련종목에 들어있었다. 이것을 통과해야 한다. 이 지역엔 현역군부대도 있는데 스키를 타고 작전을 하는 경보병부대다. 특수전부대인 것이다. 스키를 타고 목표를 사격하는 훈련을 하는데 우리는 어려서 사고가 날까봐 그것까진 시키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 때 스키를 타보곤 다시는 타보지 못했다. 또 도시에만 살았던 사정도 있다. 남한 현실 같으면 서울에 살아도 스키 타러 다니는데 문제가 없지만 북한엔 갈 곳이 없다. 스키를 타려면 적당한 산에 가야 하는데 걸어서 가야 해서 잘 가지 않았다.
 
 썰매를 탈만한 곳은 있었다. 따로 건설된 썰매장은 없었지만 탈 수 있는 곳이면 다 탔다. 필자가 살던 도시에 공항이 있었는데 높은 산 위에 있었다. 거기서 도심으로 내려오는 도로가 썰매 타기 좋았다. 4km 가량 되는 내리막길이어서 썰매를 타면 총알처럼 달렸다. 주로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심야에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썰매를 끌고 공항 근처까지 올라갔다.
 
 지금 생각하면 북한 썰매는 아이들이 자체로 만들었지만 남한 썰매에 비하면 아주 ‘첨단 썰매’였다. 썰매는 혼자 탈만한 크기에서 많게는 15명까지 탈 수 있는 특대형이 있었다. 판자로 아주 튼튼하게 만들었다. 앞에는 핸들을 달았고 제동장치도 달았다. 그것을 타고 자동차가 없는 심야에 내리막도로를 질주하면 속도가 엄청났다. 그래서 사고도 잦았다. 썰매 결함으로 사고가 났다고 생각되면 썰매를 다시 업그레이드 했다.
 
요새 北 아이들 겨울 놀이는 한류드라마와 게임
 
 하지만 그것도 이젠 옛 이야기가 됐다. 다 식량배급이 되고 경제가 돌아가던 때 일이다. 식량난, 경제난은 아이들에게 겨울놀이도 뺏어갔다. 아이들은 먹을 궁리나 장마당에 관심이 더 많다. 좀 여유가 있으면 겨울에 집에 들어박혀 한류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경제가 낙후해지니 썰매도 낙후해졌다. 썰매에 경쟁적으로 옵션을 추가하던 ‘기술경쟁’도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은 대충 만든 것을 타고 논다. 북한 방송에 공장에서 만든 수지 썰매가 가끔 등장하지만 누리는 애들은 따로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타던 썰매엔 비길 수 없다. 버스처럼 지붕까지 만든 썰매를 탔었는데, 아마 세계 최고의 썰매였으리라.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마식령스키장을 건설했어도 좋은 소식은 없다. 경제난에 스키장에 갈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북한은 주제 넘게 선진국을 모방한 스키장을 만들기보다 식량난을 해결하고 멈춰선 공장들을 돌리는 것이 먼저다. 해서 필자가 어렸을 때 뽐내던 그런 ‘첨단 썰매’라도 다시 나타나게 하는 것이 먼저다.
 
 
도명학 / 망명북한작가펜(PEN)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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