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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전기·컴퓨터 없는 정보산업시대 수업?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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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24 | 전기·컴퓨터 없는 정보산업시대 수업?

2008년 11월 2일 평양의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컴퓨터 소조(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북한 학생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은 북한의 특수 교육기관으로 일반 학교보다 좋은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일반 학교에는 아직 컴퓨터 교육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2008년 11월 2일 평양의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컴퓨터 소조(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북한 학생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은 북한의 특수 교육기관으로 일반 학교보다 좋은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일반 학교에는 아직 컴퓨터 교육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학교면 학교, 기관이면 기관, 어디를 가도 빔 프로젝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가정용 빔도 있어 빔을 이용해 집에서도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이런 것을 볼 때면 ‘북한의 학교에 꼭 필요한데….’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북한 교사들이 힘들게 괘도(걸그림)를 만들어 수업 준비를 하고 있을 모습이 눈앞에 선하기 때문이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교육강령, 교수조치에 따라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비슷할 것이다. 교수안은 수업목적, 교양목적, 준비 및 관련, 시간수, 교편물 등을 먼저 기록한다. 준비 및 관련에는 수업을 준비하며 참고한 서적이나 교재를 기록하고, 시간수에는 총 수업시간 중 몇 번째 수업이라고 밝히면 된다. 교편물에는 괘도 혹은 다른 교편물이 있으면 적어 놓는다. 다만 교양목적에는 그 시간에 나오는 특정 단어나 표현을 중심에 놓고 수령에 대한 우상화, 충실성, 당 정책무장, 사회주의 애국주의, 도덕교양 등을 적어둔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나무라는 단어가 있으면 ‘산림을 애호할 데 대한 수령님의 교시대로 산을 아끼고 사랑하도록 학생들을 교양한다’라고 적는다.

자재중단·지침강화 … 피해는 현장의 교사와 학생

예전에는 교육위원회에서 만든 ‘모범교수안’이 있어 교사들이 굳이 교수안을 쓰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1983년 김정일의 서한인 ‘교육사업을 더욱 발전시킬 데 대하여’가 나오며 교육의 질적 혁명을 도모했다. 그 다음해인 1984년에는 평양제1중학교를 시작으로 전국에 수재교육바람이 불면서 교사들의 실력제고 또한 요구되었고, 교수안도 다 자체적으로 쓰라는 지시와 함께 모범교수안이 없어졌다.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이전에 쓴 교수안에 새로운 내용들을 보충해야 한다고 요구하더니 2002년부터는 교사들의 월급을 올려주며 그만한 보상을 요구했다. 다시 말해 교사들이 낡은 교수안에 안주하다 보면 학생들의 실력이 좋아질 수 없기 때문에 교사들도 교수안을 쓰며 실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교사로서 교수안은 응당 써야 한다. 그런데 사소한 펜, 종이부터 시작해 자재들의 공급이 모두 끊어지며 여건이 마련되지 않고, 수업 외의 부업까지 해야 하는 마당에 교수안을 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검열 때면 걸리는 교사들이 꼭 몇몇씩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든 것이 교편물 만드는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지구의(지구본), 현미경, 시약품 등은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괘도 만들기는 보통 일이 아니다. 이전에는 국가에서 보급하는 것들이 있었으나 요즘은 공급이 끊겨 교사들이 자체적으로 괘도를 제작해야 한다. 그래서 붓글씨를 쓸 줄 아는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그럴싸한 수업용 괘도를 만들거나 진땀 깨나 흘리며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더 힘든 것은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맞는 수업, 즉 컴퓨터를 이용한 수업을 하라는 지침이 내려오는 것이다. 문제는 학교마다 컴퓨터가 얼마 되지 않고, 그마저도 문화재처럼 컴퓨터실에 고이 모셔두는 처지라는 점이다. 교사들은 컴퓨터를 다룰 줄 몰랐고, 파워포인트 같은 프로그램조차 알지 못했다. 더구나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으니 말해서 무엇하랴?

2007년 양강도 교수방법토론회가 열렸다. 1등은 어느 소학교 처녀교사에게 돌아갔다. 음악에 맞춰 그 수업에서 배우는 꽃과 나무들이 화면에 나오는 자료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슬라이드쇼였다. 하지만 교사가 화면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화면에 맞춰 설명을 조절했다. 그럼에도 모두가 신기하게 화면을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후에 그 교사가 그 자료를 만드는 데 북한돈 3만원을 썼다고 했다. 당시 3만원이면 입쌀 14kg을 살 수 있는 큰 돈이었다.

한 수업 분량 현대적 수업자료, 2달 걸려 만들기도

사진 몇 장이 음악에 맞춰 흘러가던 것이 신기해 모두 입을 벌리고 바라보던 그때가 2007년이라니 지금 한국에서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도 그 모습에 자극을 받아 동료 교사들과 의기투합해 어느 대학 컴퓨터학과 교수에게 부탁하여 수업자료를 만들었다. 지금 같으면 몇 분 내에 뚝딱 만들 것을 대략 2달이 걸렸고, 우리도 3만원대의 금액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공을 들여 현대적 수업자료를 만들어도 정전이 자주 되다 보니 이용률이 낮아 사실 수업에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1학기 분량을 전부 만든 것도 아니고 한 수업 분량만 만들다 보니 효과도 떨어졌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료를 CD에 담아 학생들에게 강제로 판매함으로써 제작비용을 메울 수 있었다.

이러한 실태는 평양도 비슷하다. 하지만 간부나 무역회사 학부형이 많은 평양의 일부 학교에서는 다르다. 평양제1중학교를 참관할 일이 있었다. 당시 한 교실에 들어섰다 깜짝 놀랐다. 양쪽으로 휘어있는 곡선칠판에 한쪽에는 빔 프로젝터가 있었다. 책걸상은 1인용으로 척 봐도 고급스러웠다. 이런 교실에서 수업하면 더 잘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전체 학교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 한 교실만 그랬다. 알고 보니 조총련 출신 귀국자 학부형이 특별히 일본에서 공수해온 것들이라고 했다.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것들을 학부형 개인이 해준 꼴이었다.

북한에서 정보화시대 구호가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다. 수업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데 지침만 내려오니 현장의 교사들만 힘들고 교편물을 구실로 이런저런 부정부패만 난무하게 된다. 통일이 되면 달라질 것이다. 교원실에 앉아 컴퓨터로 교수안을 작성하고, 파워포인트도 만들고, 동영상도 편집하여 USB에 저장한 것을 수업 때마다 꺼내 쓰는 북한의 교사들을 상상해본다. 이곳에서는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북한에서는 아직 상상도 못하는 먼 미래의 일이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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