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7월 2일 1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시(詩)야? 암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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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72

(詩)야? 암호야?

 

태국 방콕에서 한국행 항공편에 올랐을 때 부푼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 남쪽 작가들이 어떤 글을 쓰고 있을지, 심사와 출판 경로는 어떨지, 궁금증에 속이 화끈 달아올랐다. 표현의 자유를 한껏 만끽하며 짓눌렸던 어깨를 펴고 펜을 달려보겠노라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객기에 가깝던 열기가 식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처음 접해 본 남한 문학은 본인에게 그야말로 절벽강산이었다.

북에서 시를 썼기에 남쪽에서도 시인으로 살고 싶어 시집부터 구했다. 시 중에도 먼저 큼직한 상을 받은 시들을 읽었다. 상 받은 시라면 당연히 한국 시를 대표하는 시일 것이었다. 그런데 시들을 읽고 나니 머리를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썼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남한 시, 아리송한 표현에 비약과 함축 심해

이 말을 하다간 느닷없이 저 말을 하고, 아리송한 표현들을 나열하고, 비약과 함축도 너무 심했다. 도무지 알아먹지 못할 시들이 상 받은 시들이었다. 시를 쓴 당사자가 아니면 누가 그 시를 이해할지 궁금했다. 구구절절 곱씹어 봤지만 안개 속 어렴풋한 물체처럼 막연한 표상만 짐작될 뿐 도우미 없인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시를 읽는 한국 독자들이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선진국을 목전에 둔 대한민국, 역시 지식사회니만큼 독자의 독해력이 비상히 높을 수밖에… 그래, 나만 모르는 거지.’ 하며 애초에 좌절해버렸다. 이 땅에서 시인의 삶을 이어가자면 새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해하기 쉬운 시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들은 좀처럼 상을 받지 못하는 풍토였다. 간혹 상을 받은 경우에도 꼭 외국의 시를 서툴게 번역한 것처럼 내용 파악이 조금은 어렵다 싶은 시였다. 사정이 이러니 내가 북한식 작시법으로 무슨 시를 쓴단 말인가.

그런데 좀 지나 알고 보니 이 땅에 나서 자란 사람들 대부분도 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수나 박사들도 모르겠다고 했다. 심지어 소설가, 수필가들조차 모르겠다며 웃었다. 시인들 중에도 난해한 시에 머리를 젓는 이들이 있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도 시집들은 서고에서 잠만 자고 있었다. 독자들의 발길은 야박하게 느껴질 정도로 시집 코너를 생략해 버렸다.

혹시 남쪽 시인들은 자기들끼리 문장짓기 게임을 하는가? 시단이 자기들만의 잔치인가? 좋은 시의 자격은 프로급 시인들만 이해하고 수준 없는 독자 따윈 알아듣지 못하게 써야 갖춰지는가? 그래야 큼직한 상도 타고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로 인정되는가? 황당한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한번은 장난기가 발동해 아무 단어나 이리저리 붙여서 시처럼 엮어 난해한 시를 좋아하는 어느 시인에게 보였다. 반응이 황당했다. 대충 읽어보고 이게 시냐고 던져버릴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한참 음미해보며 남쪽 작시법을 빨리 익혔다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시가 너무 한심해 거꾸로 하는 말이려니 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태도가 너무 진지했다.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용을 ‘시’라고 들고 궁상을 떠는 모양이 너무 우스웠다.

북에서는 시가 체제찬양과 충성심 고취로만 일관돼 독자에게 외면당했다. 그런데 시가 남쪽에서까지 홀대받을 줄은 몰랐다. 이유만 다를 뿐 시는 남에서도 북에서도 다 같이 천덕꾸러기였다. 북한 시는 알기 쉽지만 내용이 진절머리 나고, 남쪽 시는 분주하고 머리 아픈 현대인에게 퀴즈를 풀라고 무례를 범하는 것 같았다. 생각 같아선 시고 뭐고 싹 다 인연을 끊고 싶었다.

체제찬양 북한 시, 암호 같은 남한 시… 독자 외면 똑같아

그럼에도 남쪽 시를 알려고 노력해왔다. 난해한 시를 써서 상이나 타볼 생각이 아니라 다가올 통일을 생각해서다. 통일이 오면 남북 문단 사이엔 나 같은 사람의 가교 역할이 꼭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때 가서 남북 문단이 갑작스런 문화 충격을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 준비를 미리미리 해가는 마음으로 싫어도 공부하는 중이다. 지하철에 게시된 시들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음미하기도 한다. 장난삼아 시를 난해하게 써보는 연습도 했다.

그 와중에 몇몇 시들을 발표했다. 나름 일정한 과도기를 거쳤고 서툴지만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알아듣지 못할 암호문 같은 시를 발표하진 않았다. 상을 타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냥 누구나 이해하고 애독해주는 시를 쓰고 싶다. 같은 입장을 가진 좋은 시인들도 알게 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쪼그라들었던 의욕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남북 문학이 쉽게 공통분모를 찾을만한 장르는 소설, 수필, 에세이, 동화 등 산문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리얼리즘 문학은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래선지 나도 소설에 재미를 들였고 지금은 주로 소설을 쓰고 있다. 한국 문단에도 소설가로 이름을 올렸다. 미약하지만 이렇게 뚜벅뚜벅 걸어가 통일 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싶은 것이 목표다.

도명학 / 자유문화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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