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8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北 | 학이 운다, 아름답고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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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44

학이 운다, 아름답고 처연하다

조습,  시리즈, 진달래, 달빛4, 벚꽃. 129x86, 피그먼트 프린트, 2013

조습, <일식-달빛4> 시리즈, 진달래, 달빛4, 벚꽃. 129×86, 피그먼트 프린트, 2013

얼마 전 영화 <연평해전>을 봤다.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은 괴물들끼리의 게임이 아니라, 우리 오빠와 내 아들 그리고 심지어 나의 일상이 순식간에 저 싸움의 한 복판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영화 같은 현실이 가슴으로 느껴질 때 다른 것들은 사소해지고 있었다.

전쟁이 과거의 것, 역사로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인지된다는 것은 정전상태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일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들은 영화를 보며 새삼 깨닫는다. 정전협정을 대신 할 평화협정이 우리 삶에 얼마나 직결되어 있는 화두인지 알게 되면서도 또 잊는다. 우리 사회의 집단적 망각은 역사적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전쟁’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우리 사회와 함께 하고 있다.

조습의 사진은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하다. 조습의 <일식> 시리즈는 작가가 DMZ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학으로 분장한 사람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이 풍경과 함께 사진에 담겨 있다. 사진 속 사람은 얼핏 광기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볼수록 우스꽝스럽다. 조습다운 화면이다. 그는 이성과 정의보다는 광기와 일탈로 점철된 현실을 드러내서 이를 패러디하는 작업을 즐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진지하지만 독특하고, 가볍지만 날카롭다.

작가 조습, 강한 빛으로 분단의 상처를 드러내다

작가는 스스로 “<일식> 연작은 우리의 근대국가 탄생을 ‘전쟁’으로 보고, 그 ‘전쟁’을 통해 살육되어버린 인간과 버려지고 상처 받은 인간들의 영혼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시각화시켰다.”고 밝힌 바 있다. 강원도 DMZ 쪽을 거닐다가 사진을 찍으려고 빛을 쏘자 묘한 기운들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국가 권력에 노출될 권리조차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과, 그런 ‘인간’이 어떤 또 다른 ‘인간’에게 죽이거나 죽임을 당해,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도는 혼령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일식> 연작 제작에 중요한 핵심이었습니다. 이 작업은 버려진 영혼이 현실계에 나타난 이야기입니다.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중음(中陰)의 시간 어딘가에서 떠도는 보이지 않는 혼령들을 일식이라는 자연적 현상을 가정해 강한 빛으로 포착했습니다.”

조습은 이렇게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도는 ‘중음신(中陰身)’의 시간을 살고 있는 DMZ 도처에 있을 전쟁의 상처들에게 학 도상을 입혔다. 전통시대부터 학은 여러 미술작품에 등장하였다. 신선을 태우고 이동하는 수단으로 그려지기도 하였으며 고상함과 순수함, 오래 산다는 길상적 의미까지 표상해 내었던 도상이다. 몽고족 치하의 원나라에서 학은 원 정부 아래에서 봉직하기를 거부하는 문인을 상징하는 표상이 되면서 문인들의 숭고함과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기질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우는 학의 도상 또한 전통시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많이 그려졌던 도상이다. 초기 유교 서적인 「시경」에 “학이 구곡에서 울 때 그 소리는 하늘에 들린다.”라고 쓰여진 글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도상에서 학의 울음은 현자의 목소리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우는 학의 모습이 드러내고 있는 ‘현명한 군신의 울음소리’는 하늘의 아들인 훌륭한 통치자에게 들려질 것이라는 믿음이 함께 암시되어 있다.

조습의 학에는 이러한 도상들의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 우리가 잊고 있으나 어느 날 망각의 기억에 환하게 불을 밝히면 도처에서 뛰어나오는 분단의 상처들, 전이된 역사적 트라우마의 상처를 향해 작가는 치유의 손을 내밀고 있다. 그 시작은 조습이 말하는 것처럼 상처를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상처가 드러날 때 치유는 시작된다.

그의 학이 신선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선학이 되길, 상처의 현장에서 상서로운 조짐을 알리는 이미지로 동작되기를 바란다. 그래서일까. 상처를 드러내고 있는 DMZ의 모습이 조습의 사진 속에선 아름답다. 또한 처연하다.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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