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8월 1일

통통 인터뷰 | “시대를 담는 디자인, 북한도 예외는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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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 인터뷰 | 최희선 디자이너(중앙대 디자인학부 강의전담교수)

시대를 담는 디자인, 북한도 예외는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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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디자인과 인간의 생활환경은 대단히 밀접하고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패션, 산업, 환경, 웹, 도시 등 어느 하나 디자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미적 요소와 기능적 가치가 적절히 조화되며 산업디자인의 기술과 예술성은 발전의 궤를 같이 해왔다. 우리의 삶과 밀접한 영향을 갖고 있는 디자인, 그 디자인이 북한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북한은 ‘디자인’이라는 외래어 대신 ‘산업미술’ 혹은 ‘도안’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북한의 산업디자인도 기계류를 디자인하는 ‘공업미술’, 상품의 포장·브랜드·진열공간을 심미적으로 창작하는 ‘상업미술’, 도시환경·공공시설물을 디자인하는 ‘거리장식미술’, 인테리어 디자인에 속하는 ‘건축장식미술’ 등 다양한 영역이 있다.

일반적으로 디자인이 기업이나 소비자의 요구에 의해 발생되는 것과 달리, 북한의 디자인은 국가가 주도하고 체제 유지에 적극 활용되어 왔다. 이처럼 북한은 ‘국가를 위한 디자인’을 행해왔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이데올로기에 적합해야 하고, 당의 지침이나 지도자의 취향에 어긋나지 않는 스타일이어야 했다.

하지만 북한의 디자인에도 최근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북한은 현대화를 강조한 최신 시설의 문수물놀이장, 마식령스키장 등을 개장했으며, 이설주의 세련된 의상과 여성들의 스타일 변화는 외부세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최희선 디자이너를 만나 북한 산업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Q. 북한 산업미술(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시장경제 체제에서 디자인은 ‘소비자가 어떤 형태와 기능을 원할까?’라는 관점이 반영됩니다. 반면 북한 산업미술은 당 정책을 달성하기 위해 우선 투입되어야 하는 산업경제 분야에 집중되는 특성을 갖습니다. ‘지도자 방침, 당 정책의 도구’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 한데요, 북한에서 강조하는 ‘혁명적 요소’들이 곳곳에 베어 있습니다. 또한 북한의 디자인은 고유한 스타일을 갖고 있어요. 우리의 안목으로 보면 얼핏 촌스럽고 다르게 표현하면 예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일부 디자이너들은 북한 디자인을 보고 남한의 1970~1980년대를 연상하게 한다고 말하기도 하죠.

한편 스타일이 획일화되고 대상이 한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사회주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북한식 스타일 외에는 허용하지 않고 산업규모가 남한에 비해 낙후되어 있어 의상, 신발, 식료품 등 그 대상이 기초적인 물품에 한정되어 있죠. 산업이 발달되지 않았으니 디자인 성장에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1. 기존 북한에서 볼 수 없었던 매장 디스플레이 방식을 도입한 순안국제공항 면세점 내 시계매장 2. 북한의 아파트 인테리어 디자인

1. 기존 북한에서 볼 수 없었던 매장 디스플레이 방식을 도입한 순안국제공항 면세점 내 시계매장 2. 북한의 아파트 인테리어 디자인

Q.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산업미술에 두드러진 특징이 발견되나요?

북한 산업미술은 정권 수립 이후부터 경공업성, 기계공업성 등 내각과 중앙기관에 산업미술창작소를 각각 두었고, 각 도의 인민위원회 산업미술국들을 바탕으로 발달해왔습니다. 그러다 2010년 3월 노동당 산하에 ‘중앙산업미술지도국’을 조직하며 뿔뿔이 흩어져 있던 여러 산업미술창작조직들을 통합했습니다. 특히 이 기관은 국립디자인센터라 할 수 있는 평양 ‘국가산업미술중심’에 위치해 있는데 북한의 디자인 특허와 같은 지식재산의 등록·심사기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표 및 공업도안, 원산지명사무소’와 ‘조선산업미술창작사, 조선산업미술정보교류사’와 한 건물에 배치해두었습니다. 한 마디로 국가의 모든 디자인을 창작-지도-심사-등록 할 수 있는 하나의 콘트롤타워 디자인행정체계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눈여겨 봐야할 대목입니다. 또한 김정은 정권에서는 산업미술을 국가의 주요 정책수단으로 활용하고 김정은의 치적사업들을 위해 다양한 작품을 창작하고 있는데요. 아마 다른 어떤 분야보다 디자인을 활용한 업적이나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2012~2014년 국가산업미술전람회를 보면 출품작들이 김정일 시대에 비해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림 승마구락부' 마크도안(위), '모란봉악단' 마크도안(가운데), '국가우주개발국' 마크도안(아래)

‘미림 승마구락부’ 마크도안(위), ‘모란봉악단’ 마크도안(가운데), ‘국가우주개발국’ 마크도안(아래)

Q. 그렇다면 최근 북한의 산업디자인 영역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아도 되는 걸까요?

분명 북한의 디자인들은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난해 순안국제공항 신청사에 대해 김정은은 ‘민족성이 결여됐다, 조선식(북한식)으로 바꾸라.’고 지적을 했다죠. 이는 북한 미술창작이론인 <주체미술>에서 강조하는 조형성을 도입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신청사 건축물 외벽에는 고구려 강서고분의 ‘백호’를 모티브로 한 장식이 등장했습니다. 북한의 주체미술에서 중요시하는 고구려 강서고분의 조형 모티브는 단순한 장식요소가 아니라 국가 이데올로기와 연관된 중요한 시각 상징물입니다. 북한의 조선스타일 디자인은 단순한 예스러움이라기보다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스타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마식령스키장이나 문수물놀이장 리조트 내에는 김정일 동상을 설치하거나 중간 중간 고려청자를 전시해 놓았죠. 결국 현대건물을 건설하는 데 특정 장식성을 가미하는 방법 외에는 특별한 민족성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북한 주요기관들의 상징체계디자인(C.I.) 사례를 들어볼까요? 미림 승마구락부 마크도안은 북한 내부에서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도안은 조선화기법(몰골기법)을 이용해서 만들어졌다고 하여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솔직히 이런 디자인은 외국에도 많습니다. 승마랑 관련된 다른 나라들의 로고와 비교해보면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니죠. 디자이너에게 정보가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예요. 즉 디자인의 아이디어 개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북한 디자인이 너무 서구화되지 않게 신경쓰는 부분은 높게 평가합니다.

Q. 북한 디자인의 현대화와 민족적 스타일 사이에 딜레마가 발생하는 가장 큰 요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우선 중국의 영향이 클 거예요. 대다수의 물건이 중국을 통해 들어오잖아요. 중국과의 교역으로 들어온 제품을 접한 북한 주민들의 안목이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졌을 겁니다. 가령 북한 신발도안을 보면 중국 스타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장마당이 활성화된 점도 간과하면 안 되겠죠. 주민들의 요구(needs)가 반영되어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과거 배급제 시대에는 소비자에게 권한이 전혀 없었어요. 중앙에서 허락한 범위 내에서만 모든 것이 가능했던 거죠. 하지만 시장화가 진행되고 물품이 많아지면서부터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정책의 권한이 부분적으로 역전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남한의 드라마를 통해 북한과 다른 생활상을 보게 되면서 안목에도 변화가 생기니, 과거 북한 스타일 제품들이 주민들에게 점차 외면당하지 않을까요?

북한 제품은 앞으로도 조금씩 현대화되겠지만 다양한 디자인을 원하는 주민들과 국가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점점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당 정책사업은 예외예요. 북한 승마구락부의 심볼마크 디자인과 승마복 의상디자인의 경우 김정은이 이를 직접 지도했다고 공식매체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승마복을 입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또 북한에 잔디가 정말 얼마 있지 않은데 잔디 깎는 기계가 평양미술대학에 디자인되기도 하였습니다. 사용자의 반응보다 위의 기준이 반영된 거죠. 하지만 생필품 같이 주민들의 소비가 큰 물건들은 위에서 지시하는 수준이 주민들의 요구 수준보다 낮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북한에서 디자인의 수요구조가 하향식(Top-down)과 상향식(Bottom-up)의 양방향이 되어 버린거죠.

Q. 그렇다면 북한의 디자인 정책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북한 사회에서 흥미로운 점은 국가의 주요시설에 브랜딩 디자인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류경원의 로고 디자인뿐 아니라 봉사원들의 의상디자인, 실내디자인도 통일성 있게 디자인했습니다. 김정은의 직접적인 지도가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해외 유학파인 그의 경험도 북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물론 예전에도 북한의 주요시설이나 행사용 심볼을 정치적 색채를 갖도록 만들기는 했지만, 하나의 디자인 컨셉을 잡아 로고, 전체공간, 시설물, 의상 등을 총체적으로 디자인하여 하나의 상품으로 브랜딩하지는 않았습니다. 브랜딩 디자인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주목해 보아야 하는데요. 최근 공개된 북한의 면세점 모습을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것들이 눈에 띕니다. 예전에는 ‘화장품’이라는 간판에 물건을 진열해놓기 급급했다면 이제는 각 매장별 컨셉을 살려 디스플레이 방식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면은 서구화된 모습으로 명품 브랜드 C사의 디스플레이와도 닮아 있습니다. 브랜딩 하여 마케팅을 시작한 것은 내국인보다는 외국인, 즉 브랜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함입니다. 최근 북한이 주력하고 있는 경제특구에서도 이러한 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각 경제특구별로 주력하는 사업을 정하고 특구별로 도시디자인을 달리하고 있다는 거죠. 이러한 면모는 모두 외국인 관광객 유치나 해외투자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북한으로서는 외화벌이에 주력해야 하니 결국 그들의 시선을 쉽게 사로잡을 수 있는 ‘브랜딩 디자인’을 선택한 것입니다.

1993년 북한에서 발행한 형태도안집에 소개된 가방이 해외 명품 브랜드 제품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93년 북한에서 발행한 형태도안집에 소개된 가방이 해외 명품 브랜드 제품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Q. 북한에서도 해외 명품 브랜드를 선호할까요?

북한 주민들도 이제 해외제품의 상표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다만 품명을 세세하게 알기보다 ‘유럽산’ ‘일본산’이라고 설명하죠. 간혹 외신들의 사진에서 짝퉁의복을 입은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포착되고 있는데요, 반면 고위 권력층은 밀수된 해외 제품들을 사용하고 있을 겁니다. 얼마 전에는 퍼스트레이디 이설주가 명품 가방과 의상을 입고 나온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점은 20대 여성, 그 세대의 패션 요구(needs)를 이설주가 반영한 것입니다. 2012년 중국의 사진작가 왕궈펑이 찍은 아리랑축전의 평양광장사진을 보면 젊은 여성들 일부가 한복 대신 이설주와 같이 세련된 양장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설주뿐만 아니라 북한 젊은 여성들의 디자인 눈높이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해외 명품 브랜드 C사, L사의 제품들이 1990년대 북한 생활필수품 디자인을 위한 도안자료집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중앙기관에서 해외 명품 디자인을 표준안으로 선정해 전국에 보급한 셈이 됩니다. 아마 당시 북한 경공업 소속 도안창작가(디자이너)들이 해외 브랜드를 몰라 중국 등을 통해 들어온 해외 제품들을 국가 표본집에 넣은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어요.

Q. 통일 이후 디자인은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까요?

통일한국에서도 디자인의 역할은 중요할 것입니다. 독일, 홍콩, 베트남 등은 통일 과정에서 사회 곳곳의 디자인 통합을 하느라 진통을 겪었습니다. 교통시스템, 고속도로, 오폐수 시설 등 사회 전반에 표준화 된 시스템이 필요한데 이것도 모두 디자인의 영역이죠. 통일독일에서는 행사를 할 때 동서독의 신분증이 같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는 일화가 있어요. 남한에서는 한국산업규격인 KS 인증마크를, 북한은 국가규격 KPS를 사용하고 있는데 남북한 공통의 상품규격과 품질인증마크에 대한 합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홍콩과 대만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합의가 없이 교역이 시작되어서 지금도 특허에 관한 논쟁이 매끄럽게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어요. 또 교정시설, 경찰 등과 같은 치안 시스템은 어떨까요? 이 부분은 남북 통합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거예요. 통일이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디자인 고민은 지속되어야 해요.

 

선수현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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