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8월 1일 0

윗동네 리얼스토리 | 30년 만에 되찾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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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54

30년 만에 되찾은 사랑

1960년대 중반 평양엔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들이 많았다. 베트남은 국부로 불리는 호치민의 ‘새베트남건설’ 전략으로 당시 전쟁 중이였음에도 많은 유학생들을 외국에 보냈다고 한다. 평양에도 300여 명의 유학생들을 파견했다. 다른 나라 유학생과 달리 같은 사회주의 나라라는 의미에서인지 당시 북한은 베트남 유학생들을 극진히 대우했고 보살폈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베트남 유학생 쓰왕(가명)도 평양에 오자 1년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한국어를 익히고 다시 김책공업대학에서 야금공학을 공부했다. 그때 북한은 풍부한 자원개발을 목적으로 야금공학에 상당한 힘을 들이던 때다.

베트남 유학생, 북한 처녀와 사랑에 빠지다

학업을 마치고 현장실습을 함흥에 있는 흥남비료공장에서 하게 된 쓰왕은 당시 공장설계실에서 일하는 한영옥이라는 북한 처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때 필자는 중학생이었지만 어른들의 말을 빌려 외국인과 벌어진 위의 두 사람의 소문을 들은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민족의 순결을 운운하는 북한에서 감히 외국인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대단한 이슈가 아닐 수 없었다.

한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민족의 순결성이라는 것이 얼핏 듣기에는 고개를 끄덕일 만큼 수긍되는 문제이나 다시 뒤집어 보면 북한 정권의 숨은 의도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는 문제였다. 만약 국제결혼을 승인하면 외국문물이 들어오는 길이 열리는 것이기에 유일사상을 목숨 같이 고수하는 나라정책상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그냥 한때 세간을 뒤흔들었을 뿐 결국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슬픈 여운으로 남았다.

현장실습이 끝나 귀국하며 북한 정부에 대고 한영옥을 아내로 맞아 베트남으로 데려가겠다는 쓰왕의 제의는 찬 서리를 맞았고 두 사람은 결국 사랑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 소문을 들은 주민들치고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러면서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는 의식 속에 말 그대로 여운은 여운을 따라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한데 충격적인 결말에 관한 이야기를 최근에 듣게 된 필자는 다시 그때 일이 떠오르며 이 이야기를 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흥남비료공장에서 평생 근무하다 최근 탈북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한 A씨로부터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은 나는 오래도록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3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 쓰왕은 북한과의 외교 채널을 통해 다시 한 번 한영옥을 아내로 맞고 싶다는 메시지를 날렸다 한다. 이미 60세가 가까운 나이가 돼 버린 한영옥은 고난의 시절 남편을 잃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흥남비료공장 당위원회로부터 베트남 사람과의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북한 현실에서 당위원회로부터 그 정도의 제의가 들어옴은 본인만 수락하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만약 거절이라도 한다면 그건 당의 의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의식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영옥은 두 아들과의 협의 끝에 그리하겠노라는 대답을 주었다. 물론 그때까지 쓰왕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의 승인이 떨어지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결국 한영옥은 할머니의 몸으로 쓰왕과 결혼해 베트남으로 떠나갔다. 흥남 사람들은 그가 떠나간 후 모두 잘 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며 은근히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이 대량 아사로 아우성치고 있던 때인 만큼 늘그막에 외국으로 가는 한영옥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트남에서 1960년대에 외국 유학을 한 사람들은 이후 모두 인재로 등용됐고 나라의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데서 지대한 공적을 이룬, 기본적으로 엘리트 계층이라고 했다. 쓰왕도 나라 건설에 적잖은 기여를 해 정부의 주요 관리로까지 출세한 엘리트였는데 한영옥을 데리러 올 때는 어마어마한 직책에 있었다고 A씨는 증언했다.

중앙당에 외화를 바쳐서라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 믿어지지 않습니다. 북한 실정에서 어찌 외국인과?” 의문을 던지는 필자의 말에 A씨는 웃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요. 2년 전 제가 탈북 할 때만 해도 흥남 사람들은 모여 앉으면 그 이야기를 하며 기막히게 운 좋은 노친을 얼마나 부러워했는데요. 세상에 비밀이 없다고 이후 당위원회를 통해 흘러나온 말은 그 쓰왕이란 사람이 중앙당에 상당한 외화를 바치고 갈망하던 사랑을 되찾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랬겠지요. 그 시절 정권의 시점에서 외화벌이라면 무슨 짓인들 마다하겠습니까. 결국 돈으로 사랑을 샀다는 소린데… 아니 팔았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죠?”, “어찌됐든 대단한 일 아닙니까?”, “뭐가요?”, “그 쓰왕이란 사람 말입니다. 그런 남자의 사랑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지명 / 망명작가펜(PEN)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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