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8월 1일

기획 | 잔혹한 피의 숙청, 김정은 시대에도 대물림? 201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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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김정은식 측근정치, 어디로 가는가?

잔혹한 피의 숙청, 김정은 시대에도 대물림?

북한 김정은 정권이 집권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2012년 7월 이영호 총참모장 해임, 2013년 12월 장성택 행정부장 처형, 그리고 금년 4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처형 등 주요 권력엘리트를 비롯하여 상당수 고위층에 대한 피의 숙청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잔혹한 피의 숙청과 공포정치는 김정은 정권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김일성·김정일, 끈임없는 숙청 통한 권력기반 강화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 역시 끊임없는 피의 숙청을 통해 정권을 유지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박헌영 등 남로당 일파를 제거했으며,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통해 연안파와 소련파를 제거했다. 김일성은 자신을 지지하는 항일 유격대출신 측근들을 기반으로 권력구도를 재편했다. 1967년 후계구도 및 경제정책에서 이견을 보이던 갑산파 역시 제거됨으로써 북한의 1인지배체제와 김정일 후계체제가 강화되었다. 숙청된 사람들의 상당수는 처형된 반면 김일성은 자신과 항일유격대 경험을 공유한 소위 빨치산 1세대를 중심으로 권력기반을 공고히했다. 빨치산 1세대는 김일성이 신뢰하는 권력기반이었으며, 이들은 김일성의 최측근으로 운명공동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심복인 오진우는 당시 북한군 최고위직인 인민무력부장을 1976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20여 년간 역임했다. 빨치산 1세대들은 김일성 사망 이후는 물론 현재까지도 북한에서 대우를 받고 있다.

김정일의 경우 북한의 주요 파벌을 제거하면서 권력기반을 강화했던 김일성과는 다른 경로를 경유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라는 절대적인 후원세력을 기반으로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할 수 있었다. 김일성이 1인지배체제를 확립한 1960년대 후반 이후 김정일은 권력승계를 위한 작업을 충실히 수행해나갔으며, 1974년에는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의 직함을 달고 공식적인 후계자로 등장했다. 모든 실권을 당이 장악하는 공산당 체제에서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북한의 당·정·군의 모든 인사를 책임지는 핵심기구이자 공안권력의 중심이었다. 이는 김정일이 북한의 모든 권력엘리트들을 장악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후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까지 20여 년간 자신의 인맥을 형성했으며, 충성도가 검증된 인물들을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김일성 사망 당시 김정일은 이미 북한의 실질적 통치자였으며, 장기간의 승계기간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심복들을 길러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핵심 측근들의 관리에 있어서 특정한 세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을 경계했으며, 자신의 권력기반 강화를 위해 희생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정확한 추계가 어려우나 2만명 이상 숙청되어 희생을 당한 소위 심화조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1990년대 중반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아사자가 발생함으로써 북한정권 최대의 위기였던 소위 고난의 행군기는 김정일에게도 정치적으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심화조 사건은 이를 무마하기 위한 피의 숙청작업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심화조 사건은 1997년 8월 노동당 당중앙위원회 농업담당 비서 서관히가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간첩이었다는 혐의로 공개처형되면서 시작되었다. 김정일의 지시로 8천명에 달하는 심화조가 구성되어 한국전쟁 당시의 간첩사건을 조작해 수많은 사람을 숙청, 처형했다. 이 과정에서 김일성 시대 고위층들의 상당수가 숙청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피의 숙청이 도를 넘고 주민들의 불만이 팽배하자 김정일은 국가안전보위부와 보위사령부를 통해 자신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심화조를 다시 숙청함으로써 희생양으로 삼았다.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은 군장성이었던 형제를 비롯하여 상당한 권력기반을 형성하고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장성택은 2004년 실각에 가까운 하방조치를 당했으며, 이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었던 이제강이 김정일의 재가를 받은 결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장성택은 복권되어 이전보다 강력한 실권을 장악했다. 장성택의 실각을 주도했던 이제강은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조직지도부의 측근들도 숙청당했다. 이제강의 사망이 장성택의 작품이라는 설은 당시 북한 내에 널리 퍼져있었다. 건강악화로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김정일은 김정은의 후계구도 정착을 위해 가족인 장성택의 권력을 다시 강화시켰으며, 장성택이 조직지도부를 정리하는 것을 방조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김정일은 2009년 비대해진 시장을 억제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실시했으나 이로 인한 혼란과 시장세력의 불만이 위험수위를 넘자 박남기 당 재정경리부장에게 책임을 돌려 공개처형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모두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는 측근 세력들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랜 정치적 경험을 공유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인맥들이라는 공통성을 지닌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이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했으며, 충성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활용했다. 동시에 이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언제든 숙청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었다.

지난 7월 8일 김일성 주석 21주기를 맞아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 있는 평양 만수대 언덕을 방문한 모습

지난 7월 8일 김일성 주석 21주기를 맞아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 있는 평양 만수대 언덕을 방문한 모습

김정은 권력기반 취약, 관료·권력층 도움 필요하지만

김정은의 경우 권력기반의 특성과 통치스타일, 그리고 측근에 대한 관리 등에 있어서 선대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김정은의 경우 권력 승계를 위한 준비기간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1년 12월 30일 최고사령관직에 취임한 김정은은 2012년 4월의 당대표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당 제1비서직과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직에 올랐다. 김정은은 김정일 사후 4개월 만에 당·정·군이라는 북한 권력 3대기구의 최고위직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김정일의 경우 20년 이상 권력승계 준비기간을 거쳤으며,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이미 사실상 실질적인 최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김정일은 김일성 생존 당시인 1991년 12월 최고사령관직에 취임했으나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3년이 넘는 유훈통치기간을 설정했다. 김정일이 당 총비서에 취임한 것은 1997년 10월이었고, 국방위원장에 오른 것은 1998년 9월이었다.

김정은의 신속한 권력승계는 김정일의 급사에 원인이 있으나, 후계 수업을 통한 국정운영 능력의 확보,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인맥을 형성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20여 년간의 후계자 수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축적했으며, 김일성 사망 이전 이미 실질적인 최고 권력을 행사했던 김정일에 비해 김정은의 권력기반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의 국정운영 능력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풍부한 관료와 권력 엘리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김정은은 집권 2년 만에 소위 운구차 8인에 해당하는 인물 중 자신과 실권이 없는 김기남과 최태복을 제외한 이영호 총참모장과 장성택 행정부장을 포함한 나머지 5인을 숙청 또는 실각시켰다. 이들은 김정일이 김정은의 후계를 부탁한 핵심세력들이라고 할 수 있다.

KR_201508_30견장정치통한 군부장악 시도 무풍지대는?

고위직위에 대한 강등과 복권을 반복하는 소위 ‘견장정치’는 김정은의 측근정치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이다. 2015년 4월 윤동현 인민무력부 부부장은 계급이 중장으로 강등됨으로써 3년간 6차례의 강등과 승진을 반복했다. 천안함 폭침과 소니사 해킹을 주도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2012년 4월 대장 진급 이후 금년 4월까지 대장, 중장, 대장, 그리고 상장으로 계급이 변화했다. 박정천 부총참모장은 중장, 상장을 거쳐 최근 다시 소장으로 강등되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인민무력부장이 5차례 교체되었는데, 선대인 김정일 집권기 17년 동안 3명의 인민무력부장이 기용된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실질적인 군 작전권을 갖는 총참모부 작전국장 직위도 급격하게 변동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의 지시에 이견을 보였다는 이유로 변인선은 2014년 말 전후 작전국장에서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김춘삼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김춘삼 역시 금년 4월 이후 자취를 감추었으며, 최근 노광철 상장이 작전국장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북한군을 책임지는 실세들이다. 군부실세들에 대해 반복되고 있는 견장정치는 군부장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북한 공안기관의 핵심인 국가안전보위부와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김정은의 견장정치에도 불구하고 무풍지대로 남아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당, 군, 내각, 기타 사회조직 전반의 관리 및 인사를 총괄하는 북한 최고의 핵심 공안기관이며, 국가안전보위부는 한국의 국정원에 해당한다. 국가안전보위부장인 김원홍은 2012년 4월 임명된 이후 변함없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당 최고의 공안권력인 조직지도부 제 1부부장 조연준 역시 김정은 집권 이후 수장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도 조직지도부 출신으로 장기간 조연준과 호흡을 같이 했다. 현영철 숙청 이후 임명된 박영식 대장은 총정치국 조직부 국장출신이다. 이들의 특징은 모두 공안라인 출신들이라는 점이다.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국가안전보위부 등이 김정은의 잔인한 숙청과 변덕스러운 견장정치를 피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 공안정치의 핵심적 권력기반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김일성은 항일유격대 출신의 핵심측근들을 바탕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강력한 후견과 장기간의 권력승계 준비기간을 통해 핵심 측근들을 길러 냈으며, 필요에 따라 이들을 적절히 활용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권력승계 기간이 매우 짧고 충분한 국정운영 경험을 습득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으며, 권력기반을 자력으로 얻은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군에 대한 확고한 장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안라인 측근을 중심으로 숙청과 공포정치를 통해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것은 취약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무차별적인 숙청은 국정경험이 있는 엘리트들의 상실과 아울러 권력엘리트의 통합에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성이 검증된 측근들을 적절히 활용했던 선대에 비해 김정은의 정치가 위험하고 취약한 이유이다.

조한범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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