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8월 1일

특집 | 역대 통일부 장관 특별 좌담 “새로운 국가대전략으로 통일강국의 꿈 앞당겨야” 2015년 8월호

광복 70주년 특집 분단의 극복, 광복의 완성

 <편집자주>

남북 간에 지속된 적대와 불신, 긴장과 충돌의 역사 속에서도 한국의 역대 정부는 교류와 협력, 상생과 발전을 위한 꾸준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올해 광복 70년과 분단 70년을 맞아 역대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인사들을 통해 당시의 남북관계 및 대북정책 추진배경과 함께 정부가 천착했던 통일노력을 회고하고 이에 비추어 향후 한반도 평화통일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올바른 통일정책의 방향과 비전에 대한 제언을 도출해 본다.

 

역대 통일부 장관 특별 좌담

“새로운 국가대전략으로 통일강국의 꿈 앞당겨야”

신영석 평화문제연구소 이사장신 영 석 올해 2015년은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광복과 분단의 70년 세월이 현재에 주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손 재 식 광복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우리 민족에게 광복은 반쪽에만 해당하죠. 지난 70년 동안 남한에서는 개인의 자유 보장과 나라의 번영을 함께 실현했고 민주화와 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아울러 이룩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선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죠. 일반 주민들이 혹독한 억압을 받으며 자유가 부인되고, 정치적·시민적 인권과 경제적·사회적 인권이 공히 매우 열악한 상태에 있잖습니까. 비록 일제의 사슬에서는 해방되었지만 주민들의 입장에선 억압과 수탈과 빈곤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광복은 남과 북 모두 이뤄진 것이 아니라 남쪽만 된 것이죠. 광복 70주년과 분단 70년을 동시에 맞이한 지금 남한이나 북한이나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북한은 일대 변혁을 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광복이 불가능하고 지금의 매우 고통스러운 분단 상황이 오래 계속될 것입니다.

강 인 덕 뜻 깊은 해를 맞는 지금 통일문제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조성되어야 통일문제가 풀리기 쉽겠는데 그 중 하나는 국제적인 통일환경 조성입니다. 과연 주변국가가 우리의 통일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미·중·일·러의 이해가 일치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있죠. 또 하나는 한반도 내부의 통일환경 조성인데 이는 최근 북한의 김정은 정권에서 보이고 있는 불안정한 상황 등으로 밝게 전망할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 70년의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통일이라는 것이 서두른다거나 국민이 원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따라서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인내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올림픽 대회에 같이 참가한다든지 또는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를 기념해 남과 북이 행사를 함께 하는 것 같은 일회성 이벤트로 통일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고, 기본적으로 국제 및 국내환경에 대한 본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생각의 차이입니다. 저는 1970년대 남북대화가 시작될 때 제일 어려웠던 것이 남북 간의 평화정착 문제였습니다. 북쪽과 대화를 시작할 당시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전부 다 ‘평화공존’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북한과 평화공존은 불가하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정권을 의미하니까 남북 간의 평화공존은 불가능하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만들어 낸 말이 평화정착입니다. 남북한의 생각이 비슷해지고 이를 토대로 다방면으로 노력을 다해야 진정으로 통일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봅니다.

이 종 석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140개가 넘는 신생국가가 탄생했습니다. 그 중 시장경제를 통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들어가고 선진국 수준 가까이 간 국가는 몇 개국이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이를 이룩했습니다. 시장경제로 인한 눈부신 발전을 이뤘고,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을 대륙으로 뻗은 육지가 봉쇄된 채 오로지 3면 바다만을 가지고 분단 속에서 해왔습니다. 온전한 광복이 아닌 것이죠. 광복과 분단의 70년을 맞아 이제는 남과 북이 하나의 공동체·협력체로 나아간다면 우리의 삶의 질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할 때입니다. 분단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을 해야 하고 지금 당장 통일은 어렵다고 할지라도 남북협력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면서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고 국가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현 인 택 지난 70년은 광복 이후 각기 다른 두 체제가 남북으로 서로 갈라져 점점 멀어져 간 시간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남북한, 상이한 두 체제의 실험이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측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룩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죠. 반면 북한은 공산주의와 계획경제 등을 통해 우리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는데 현재 시점에서 평가를 해보면 명백하게 실패한 체제입니다. 100년의 장기간을 설정해 봤을 때 이제는 체제수렴을 해야 할 전환점에 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사의 진화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하면 앞으로 남은 30년의 기간은 체제수렴을 해서 진정한 통일국가를 수립하는 계기로 삼는 해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신 영 석 1982년 1월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을 발표한 이후 손재식 전 장관 성명으로 동년 2월 ‘20개 항의 구체적 시범사업’을 북한에 제안하신 가운데 여러 차례 남북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하는 등 당시 긴장과 갈등으로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는데 어떻게 남북대화를 추진할 수 있었는지요?

손 재 식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은 한 마디로 종합적이고도 장기적인 통일비전을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개 시범사업을 장관 명의로 제안하는 등 구체적 실천방안도 내포되어 있었죠. 그 핵심은 교류와 협력, 화합을 통해 평화통일 기반을 구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포용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뿌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일 3원칙이 있습니다. 이를 보다 구체화 하여 북한에 제안을 한 것이죠.

사실 당시는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때였습니다. 대화가 중단되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죠. 말씀하셨듯 우리의 국가원수를 겨냥한 북한의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도 이 시기였거든요. 우리 정부는 인내심을 가지고 군사적 대응을 자제했고 1984년 4월 초 체육회담을 통해 남북대화를 재개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남북체육회담은 아웅산 테러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 북한에서 먼저 제의해 온 것이에요. 당시 폭탄 테러 사건에 대한 시인·사과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고 더구나 국제적인 여론을 호도하고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서 제안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과감하게 받아들였던 겁니다.

또한 남한에서 발생한 수해와 관련하여 북한이 수해물자를 제공하겠다는 방송을 했는데 사실 그 전에도 북한은 수해가 발생하면 상투적으로 구호물자를 보내겠다는 방송을 했거든요. 그 때마다 정부는 북한의 태도에 순수성이 없다고 봤고 실제로 경제적으로도 남한이 더 나으니 받을 이유가 없다며 거절을 해왔는데 1984년도에는 각계 원로들의 반대가 매우 강했지만 대담하게 받아들였죠. 그리하여 수재물자의 인도인수가 끝난 뒤 우리 측의 설득으로 이것이 정식 남북적십자회담으로 이어졌고 뒤이어 이산가족의 상봉도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측의 제의로 남북 경제회담이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게 오래 중단되었던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고 긴장국면의 남북관계에 교류와 협력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전략으로 시도되었던 것입니다.

신 영 석 강인덕 전 장관께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가기 시작했던 시기에 재임하셨습니다. 이른바 ‘햇볕정책’으로도 불린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남북은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 다양한 수준의 남북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어떤 소회가 드십니까?

강 인 덕 저는 ‘햇볕정책’에 대해선 전면적인 공격은 하지 않았지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동시에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죠. 고등학교 시절에 김구, 김규식 선생이 평양에 와서 남북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 하는 것을 현장에서 봤습니다. 김일성이 김구 선생을 모시고 우리 학교에 직접 와서 했어요. 그때 평양 뒷골목에 붙어 있던 ‘김구 이승만 타도하라’는 슬로건 표가 그대로 남아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북한의 기만적 태도를 현장에서 다 보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통일부를 맡아 일을 하라고 했을 때부터 저는 햇볕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장관직을 수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햇볕정책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 북한에 대한 관여(engagement)는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평양에 다녀 온 이후에 저와 만나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문제를 논의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통해서 남북관계의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일한 것입니다.

제가 퇴임한 이후 금강산과 개성에 대규모 시설도 들어서고 했지만 전 ‘햇볕정책’식 접근방법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회의적으로 봐요. 사실 당시에는 북한도 ‘햇볕정책’에 대해선 강한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 연설문에 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북한은 이를 평화적 이행전략이라고 봤으니까요. 1999년 연평해전 당시에도 전 북한의 대남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했던 과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 아래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포탄이 오가는 상황이라면 외국 투자자들의 불안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IMF 상황을 최대한 빨리 극복하고 다음 대책을 세우려면 남북관계의 안정적인 관리가 필수적인 시기였습니다. 제1차 정상회담 이후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었던 것 등은 그동안 남한에서 북한으로 들어간 엄청난 지원의 결과라고 봐야겠죠.

신 영 석 이종석 전 장관께서는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 기조 아래 남북관계 발전을 도모하였습니다. 그러나 2006년 10월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전격 진행하면서 남북관계는 급격한 경색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통일부 장관으로 재임하셨던 입장에서 어떠한 정책적 판단을 하셨는지요?

이 종 석 북한 핵문제는 우리에게 매우 중대한 도전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우리의 능력에는 명백히 한계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문제의 대립구도가 북한과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핵실험은 북·미관계에서 출발해 미국과의 지속적인 갈등과 힘겨루기 과정 속에서 발생했다고 봅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이 위조지폐를 생산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하면서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들어 있던 북한 자금 2,400만 달러를 동결시키지 않았습니까. 이에 대해 북한이 발끈했고, 미국이 금융제재를 통해서 자신들의 목줄을 조이려 한다는 인식을 가지며 북·미관계는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죠. 물론 재임하던 때 북·미 사이에서 긴장을 완화시키고 동시에 북한이 핵실험을 추진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을 지속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결국 핵실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핵을 포함한 군사적인 문제에 대해 남한과 상대할 것이 아니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미국과 풀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죠. 북한의 이 입장을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성과도 있었습니다만 지금도 여전히 핵문제는 북·미관계에서 작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핵문제는 남한의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죠.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이고 그런 점에서 당시도 마찬가지지만 지금도 여전히 북핵문제를 푸는 데 우리가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영향력을 얼마나 확대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과제로 놓여있습니다.

신 영 석  장성택과 대면하신 적이 있는데 당시 핵문제 등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까?

이 종 석

  2003년 1월 말 국민의 정부가 끝나기 전 마지막에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특사로 임동원 특보를 보낼 때 당시 제가 당선자 쪽 인수위원이었습니다. 당선자 쪽 대표로 제가 동행을 했고요. 장성택을 북한 만찬장에서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예를 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문제와 경제개방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죠. 저는 당시 장성택이 합리적으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신중해 보이기도 했고요. 그래도 어쨌든 장성택은 2인자 아니겠습니까. 1인자가 될 수 없는 2인자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역시 김정일의 생각과 교시 아래 있었기 때문에 장성택이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위치에 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신 영 석 이명박 정부는 엄격한 ‘상호주의 원칙’ 아래 대북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전 정부 10년과 비교하여 남북교류 측면에서 상당히 경직된 분위기를 보였고, 현인택 전 장관 재임 중에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등 군사적 긴장도 높았던 시기로 생각됩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대북정책에 대해 총체적인 평가를 하신다면?

현 인 택 남북관계가 쉬웠던 적은 한 순간도 없었을 겁니다. 이명박 정부도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 중 하나라고 봅니다. 북한의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은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인 대북정책의 결과는 아니라고 봅니다. 남북관계라는 것이 항상 상호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죠.

당시 북한의 상황 중에서 중요했던 것은 김정일이 2008년 8월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북한 권력구조가 상당히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이었고요. 김정일로서는 남은 시간에 신속한 권력승계를 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김정일은 안전한 권력승계를 위하여 더욱 과도하게 군부에 의존하는 정책을 펴게 됩니다. 이른바 선군정치라는 것을 강하게 들고 나오고 국방위원회가 북한 헌법구조 속에서 가장 최고의 권력기관이 되는 일이 벌어지죠.

그런 과정 속에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장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북한 조문단이 오지 않았습니까. 그 때 제가 김양건 등 조문단을 접견했지만 북한은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를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기에도 일부 언급되었지만 경색국면 속에서도 남북은 이른바 장막 뒤에서 예비접촉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판단했을 때 북한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었고 또 우리에게 상당히 과도한 요구를 하기도 했어요.

그런 상태에서 해를 넘겼고 불과 몇 개월 뒤인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이 일어난 겁니다. 물론 우리 군에서는 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북한이 그렇게 무도할 정도로 천안함을 폭침하리라고는 상정을 하지 않았는데 결국 그런 일을 벌인 것이죠. 그 이후에도 9월 지나면서 적십자회담은 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에 남북이 실무접촉을 거쳐 2010년 11월 25일 적십자회담을 개최하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준비도 완전히 끝낸 상태였고요. 그런데 그 이틀 전인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것이죠.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명백하게 북한이 의도적으로 한 것입니다.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김정일 정권과 북한 군부가 의도적으로 이를 자행함으로써 남북관계가 파탄나게 된 것이죠.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의도대로 마냥 끌려가선 결과적으로 앞으로의 미래가 더욱 암울해 질 수 있고, 따라서 당장은 어렵더라도 남북관계를 기본원칙에 맞도록 재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주변정세 인식과 통일외교 방향은?

 

손재식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 협력보다 적대관계 심화 … 상호의존 관계 증대해야”

강인덕 “유연성 발휘한 외교정책 긴요 … 역사적 흐름에서 국제정세 인식 교훈 얻어야”

현인택 “한·미관계 주축 통일외교 추진 … 한·중협력은 그 속에서 최대한 발전시켜야”

이종석 “안미경중(安美經中)은 비현실적 … 양자관계 벗어나 다자협력 추진해 나가야”

 

 

신 영 석 한반도의 통일은 비단 남북한만이 아닌, 동북아를 포함한 국제관계의 다양한 이해를 조정하는 가운데 주도면밀하게 추진해 나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따라서 현명한 통일외교의 전략을 세워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성공적인 통일외교를 위해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해 나가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손 재 식 남북통일을 이룩하는 데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한반도 주변 4강의 상호관계가 원만한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미·중 간의 경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중·일·러 등 각국 간 양자관계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협력관계보다 적대관계가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변 4강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데 그런 견지에서 우리의 상황과 여건 면에서 일치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과거 서독이 추진한 동방정책이나 유럽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EU를 만들어 온 과정은 면밀히 들여다보고 여러 가지 참고할 것이 있다고 봅니다.

특히 지금 상황에선 북·미·일·중·러들과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상호의존 관계를 증대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U는 경제통합을 통해서 정치통합까지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한·미뿐만 아니라 한·중, 한·일, 한·러까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경제적인 유대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밖에 과거 냉전시대에 서구 국가들과 동구 국가들이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또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통하여 함께 상호 안보문제를 협의한 선례가 있었던 것처럼 동북아에서도 미국을 포함한 다자간 안보협의체를 만들어가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 인 덕 냉전은 종식되었으니 한반도 주변 국가는 이제 이데올로기가 아닌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할 것입니다. 여기서 역사적 교훈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19세기 1880년대부터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던 때까지, 다시 말하면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포함하는 25년의 역사, 즉 당시 조선이 국제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던 혹독한 역사의 흐름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동북아평화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큰 틀에서 동의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협력관계와 러시아와 중국의 태도 등 4강 간의 관계가 묘하게 변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외교정책이 현실성을 갖기 위해선 각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 유연성을 발휘하여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아울러 주변국 홍보도 중요할 것입니다. 통일한국에 대한 주변국의 오해를 풀고 다방면적인 설득을 통한 통일외교 활동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 인 택 통일이라는 방향에서 주변 정세를 보면 3가지 각기 다른 기운이 있습니다. 하나는 복잡한 국제환경입니다. 1990년대와 달리 상대적인 능력 측면에서 약화되고 있는 미국과 강화되고 있는 중국 사이에서 미·중의 각축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도 아베 정부가 소위 ‘신안보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국면에서 앞으로 미래는 더 어려워질 것으로 봅니다. 두 번째는 김정은 정권의 퇴행적 성격입니다. 김정일 정권보다 더 퇴행적이며 이는 우리의 통일환경 조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상황으로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세 번째 우리의 통일역량은 매우 신장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량과 국제환경을 고려하면 지금 한반도 주변정세에선 최상의 전략은 만들기 어렵다고 봅니다. 최상의 전략이라 한다면 한·미관계가 돈독한 가운데 중국으로부터도 지원을 받는 결과를 얻는 것이겠지만 사실 미·중 양쪽에 균형적으로 접근해 동시에 효과를 얻는 묘책은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봅니다. 따라서 차선책을 구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요. 결국 역시 통일이 될 때까지는 우선순위 측면에서 한·미관계를 주축으로 가져가고 한·중 협력관계는 이 구조 속에서 최대한 발전시키는 전략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 외에 부수적인 것, 예를 들면 동아시아협력체 등의 문제는 현 상태에서 더해지면 좋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통일외교에서 세 가지 전체국면을 균형 있게 볼 수 있어야지, 대북정책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종 석 한반도 주변이라고 하면 좁게는 동북아, 넓게는 동아시아로 볼 수 있습니다. 현상적으로 북한이 이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역시 미·중관계입니다. 최근 여당인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표현을 했어요. 안보는 미국 중심으로 경제는 중국 중심을 한다는 말인데, 비록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미·중 간 대결이라는 안보문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국과 일본, EU에 수출하는 금액을 다 합쳐도 중국에 수출하는 금액에 못 미치는 경제적 조건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삶을 사는 현실 속에서 이제는 한·미동맹 일변도로 가기에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미·중의 이해가 일치되면 모르겠는데 갈등하는 구조에서는 문제가 복잡해지니까 여권 지도부 안에서도 이렇게 해서는 살기 어렵겠다는 문제의식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새로운 대전략의 구조와 틀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안미경중이 비현실적이라고 보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국가 사이에는 경제적인 이해가 집중되어 있는 곳에 안보적인 이해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동서고금에서 대부분의 전쟁은 경제문제, 즉 경제적 패권을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한·미동맹도 잘 유지하면서 한·중관계도 발전시키는 어려운 길을 가야하는데 모순적인 부분들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죠.

따라서 저는 다자협력을 향한 노력만이 결과적으로 양자관계에서 올 수 있는 긴장들을 해소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어렵겠지만 미·중의 양자관계 속에서 줄타기 하는 것을 벗어나 다자협력이라는 부분에 대해 우리가 대의를 내세워 추진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미동맹을 해체하거나 약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잘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보다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결국 다자협력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국가전략, 즉 공동안보와 경제공동체를 향한 노력을 이뤄내야 하는 것이죠.

최근 북한 정세와 김정은 정권 안정성 평가?

 

현인택 “최근 숙청 과정에서 광기 느껴져 … 비정상성 증가로 인한 정권교체 불가피”

이종석 “숙청은 비대해진 군부의 힘빼기 과정 … 정권 불안정 근거로 단정지을 수 없어”

 

신 영 석 북한의 3대 세습에 따라 김정은 정권이 등장한 지 4년이 되어갑니다. 정권 안정성 측면에서 최근 북한의 정세를 어떻게 평가하시며 향후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현 인 택 한 마디로 비정상성이 증가했다고 봅니다. 3대 세습이라는 것도 그렇고 최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노출되는 공개처형이나 숙청 과정 등을 보면 일종의 광기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최근에는 중간관리층도 탈북하는 사태를 볼 때 충분히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죠. 장성택 처형 이후 장성택 계열이 갖고 있던 여러 자금을 상당부분 회수하는 과정에서 군부를 숙청하는 상황입니다. 비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산하 39호실을 강화하고 조사를 시작하니 시쳇말로 도망가는 인원도 발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정은으로 자금을 집중화 하는 현상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정상성의 증가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북한의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북·중무역이 증가하고 있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북한경제의 생산성이 증가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활성화라는 것은 북한 체제에서 개혁·개방이라는 노선에 따라 이뤄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권 차원에서 이를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2009년 화폐개혁을 추진했다가 실패했고 이후에 이를 박남기에게 다 뒤집어 씌워 처형한 전례가 있지 않습니까. 이후 장마당이 다시 활성화되었지만 정권이 이러한 시장화 과정을 통제하기 어려우며 여러 가지 부작용들도 많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든 것이 뇌물 없이는 통하지 않을 정도로 부패공화국이기도 하고요.

만약 김정은이 근본적인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이런 문제들을 풀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지금으로 봐선 어렵지 않겠습니까. 체제를 뒤흔드는 것이니까요. 김정은이 원하는 것은 체제는 조금도 변화하지 않은 채 체제유지 자금만 외부에서 얻는 것이고 이것이 유일한 희망일텐데 가능하겠습니까. 저는 가까운 시일이든 조금 먼 미래든 시기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북한에서 정권교체는 불가피 할 것으로 봅니다.

이 종 석 북한은 1968년 김신조 일당 등이 벌인 1·21사태나 미국의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등을 경험하면서 군사모험주의가 경제적으로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김일성은 당시 군 수뇌부를 군사모험주의라고 질책하며 군을 약화시킨 적이 있습니다. 김일성 자신이 주도한 일이지만 군 수뇌부를 질책한 것은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김정은이 군부에 대해 숙청을 진행하는 것도 어떤 의도가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김정은의 군부 다루기로 볼 수 있는데, 사실 그동안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하면서 지금 북한 군부 어깨에 굉장한 힘이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그야말로 군이 사회를 지배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조직도 매우 비대화 되어 있고 장성들은 수차례에 걸쳐서 진급하여 상상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군 구조가 탄생됐죠.

저는 김정은이 비대해진 군부에 대한 힘빼기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 과정이 굉장히 거칠고 둔탁해 삐걱대는 소리가 나고 있다고 보고요. 그래서 김정은이 군에 견장을 떼었다가 붙이는, 소위 ‘견장정치’를 하는 것이 군을 다루는 하나의 방식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의 광기나 이상 행동을 그 요인으로 보는 것은 현재로선 맞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요. 성공과 실패 여부는 불확실 하지만 김정은이 군을 향해 보이고 있는 태도로 현재 북한 정권이 불안정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또한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시장화 현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북한은 2013년부터 최근까지 기존의 경제특구에 더하여 외국 자본을 유치하여 경제발전에 활용하도록 명문화 한 경제개발구를 전국에 20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UN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이를 추진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시 하지만 실제 북한은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기업이 양강도 혜산 같은 지방도시에 들어가 북한 노동력을 활용하여 기업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볼 때 저는 김정은이 구조적으로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실 중국식 모델인데, 물론 북한과 여러모로 다르겠지만 고도의 경제성장을 하면서도 정권의 안정을 유지하는 중국의 경험이 김정은한테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은 경제적인 개방에 대해서 이미 방향을 잡았고 다만 이것이 성공할 수 있을지 또는 실패할지, 김정은 정권을 위험하게 만들지 또는 그렇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 눈앞에 공개처형이나 기타 잔인한 모습들만 비춰져서 그렇지 이면에서는 과거 김정일 시대에선 상상하지 못했던 경제개발 자체에 대한 정책을 실질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향후 영향과 함께 남북관계에 활용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 인 덕 불안한 상황이 그렇게 빨리 해소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1967년 3월에 북한이 빨치산파를 숙청했습니다. 그 때 제가 현직에 있었는데 1968년 3월에 제가 북한 지방당 간부를 체크해 봤더니 1/3 이상, 절반 정도가 공석이었습니다. 이것이 거의 40여 년 동안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빨치산파 숙청이 이 정도 영향을 줬다면 장성택 숙청 이후 올 영향이라는 것은 결코 적지 않을 것입니다. 김정은은 10여 년의선군정치로 형성된 북한의 정치와 권력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과정으로 가고 있는데, 그동안 불안정한 측면이 계속 노출될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만 레짐 체인지, 즉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충분히 높고 따라서 이를 모면하기 위해 김정은의 여러 대책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불안정한 상황은 또 다시 계속될 것으로 봅니다.

또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이 바로 북한의 시장화입니다. 북한에서 시장은 자연발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지 흔히 말하는 개혁·개방 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북한에 380여 개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앞으로 얼마나 정상적으로 작동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상업은행이 활성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리대금업자가 출현하게 되는데 이를 통제하는 세력이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정상적인 무역이 아니라 암시장을 통해서 물건이 유통되면 정상적인 경로로 공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 이윤을 내는 집단이 나타나고 이를 통제하는 세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세력은 당이 될 수도 있는데 결론적으로 북한에서 시장은 곧 김정은의 자금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시장화 과정에서 이익을 보는 계층과 이를 권력으로 통제하여 자금줄로 활용하려는 새로운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망에서 보면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돌발적인 사건과 함께 불안정 상태가 계속될 여지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박근혜 정부 대북·통일정책 제언은?

 

손재식 “원칙에 입각, 처음 세운 기조 밀고나가야 … 지나친 양보, 과도한 지원 안 돼”

강인덕 “대북정책 이니셔티브 우리가 쥐고 있어 … 통일비전 구체적 실현 과정 설계할 때”

 

 

신 영 석 지난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임기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그간 대북·통일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며 향후 정책추진 방향에 대한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손 재 식 전체적인 기조는 바르게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정책추진 방향도 바람직하게 설정이 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현재 시기적으로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북한은 김정은이 등장해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과정 속에 있고, 이 과정에서 대남 강경정책을 구사할 가능성, 즉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보입니다. 아직까지 이러한 우리 정부의 정책에 대해 북한이 호응하고 있지 않은 상태지만 박근혜 정부는 어디까지나 원칙에 입각해 처음 세운 기조를 꾸준히 밀고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남북관계에 있어 효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더라도 기다려야 할 경우라면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기본 원칙을 폐기하는 일은 없어야 하며 긴 안목을 가지고 원칙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일관성과 형평성 그리고 호혜원칙과 상호주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견지를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정부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 것이 바로 자세의 문제입니다. 받는 쪽에선 고자세로 나오는데 오히려 주는 쪽에서 저자세를 취하는 듯한 관계, 이러한 인상을 주는 남북협상이란 앞으로 있어선 안 될 것입니다. 동시이행 원칙도 중요합니다. 공신력을 갖춘 상대라면 협상 시에 주는 것을 먼저 하고 받는 것을 나중에 하는 것으로 합의할 수 있겠지만 북한은 그러한 공신력을 갖추지 못한 상대 아닙니까. 전략 상 먼저 받고 나중에 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적어도 동시이행 원칙은 견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나 외교나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올리는 데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되도록 적은 비용으로 큰 성과를 올리도록 해야지 북한과의 관계라고 해서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지나치게 양보를 한다든지 과도한 지원을 하는 사례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강 인 덕 원칙을 유지한 가운데 신뢰를 기반으로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것은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으로부터 나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 방향은 불가피 한 측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최근 쿠바나 이란 등의 사례가 연이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생각했을 때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는 앞으로 북한에 대한 외교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압력을 가하면서 몰고 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북정책의 이니셔티브는 우리가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 한반도 주변국 어느 나라도 박근혜 정부가 주도하는 대북정책에 대해서 반대하는 태도는 취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는 이러한 주변환경을 십분 활용해서 보다 전략적인 사고를 가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는 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 지금까지 통일대박론 같은 비전 있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앞으로는 그 비전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과정의 문제를 보다 많이 드러내고 새롭게 정책을 설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5·24조치 해제 논의, 어떻게 볼 것인가?

 

현인택 “여전히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는 없는 상태 … 해제는 시기상조”

이종석 “5·24조치, 성과 거두지 못해 … 대북 경제압박 효과 및 북한 사과 가능성 없어”

손재식 “북한, 시인 및 사과하지 않을 것 … 융통성 있게 대처해 나갈 필요 있어”

강인덕 “현재 상황에서도 현실적 문제점 해결할 수 있는 … 균형적 대안 찾아내야”

 

 

신 영 석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뒤 2개월 만인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정부는 남북교역을 전면 중단하고 북한에 대한 신규 투자를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대북제재 조치인 이른바 5·24조치를 발표했습니다. 5·24조치가 추진된 지 만 5년이 넘어가는 가운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해제 문제를 둘러싸고 찬반 양론이 팽팽합니다. 현인택 전 장관께서는 당시 5·24조치를 만든 주무장관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 인 택 5·24조치에 관한 여러 의견이 있고, 이쯤 되면 어떤 식으로든지 조치를 해제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의 태도는 사실 그때 당시와 비교해서 변한 것이 없고요. 5·24조치를 해제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득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2011년 5월 비공개 남북한 간 접촉이 있었습니다. 그걸 북한이 폭로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 접촉을 시도한 것은 북한에서 먼저 제의가 왔기 때문에 시작이 된 것입니다만 결과적으로 남북은 비공개로 접촉했고, 당시 만남의 주된 목적은 남북관계를 다시 재개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천안함 및 연평도 포격 도발에 관한 북한의 분명한 사과 같은 입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북한 측에서는 군부 인사들이 나왔고 우리도 정부 인사들이 나가서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사안에 대한 명확한 해법을 밝혔습니다. 당시 북한은 우리의 입장을 청취하고 상당히 고민을 하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간 이후의 일인데, 결과적으로 판을 깨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엉뚱한 돈봉투 이야기를 하며 회담이 결렬된 이유를 우리 측에 뒤집어 씌우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 저는 어떤 식으로든지 해당 문제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태도가 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유야무야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적으로 5·24조치가 5년이 넘었다고 해서 그만 둬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단 1년이 되더라도 북한이 거기에 책임 있는 조치를 한다면 해제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러나 지금 이를 해제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들은 앞으로 남북관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언제든 다시 일어날 개연성이 많습니다. 따라서 모범적으로 따를 만한 선례를 만들어 놓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종 석 사실 이 부분에선 저와 현인택 전 장관님과 의견이 갈립니다. 현 전 장관께서 당시 주무장관이셨고 나름 여러 부분에서 고민하고 판단하셨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섣불리 이야기 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만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5·24조치라는 것이 국가의 정책이라는 점입니다. 하나의 정책이라는 것이 시간적으로 5년이 지난 상태라고 한다면 그 정책이 실제 실현되어서 정책의 대상, 즉 북한에 대한 효과가 있는지, 5·24조치가 하고자 하는 방향과 목적대로 효과가 나타났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해봐야겠죠. 물론 그 검증이 쉬운 것도 아니고 평가의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만, 적어도 북한에게 경제적으로 고통을 주겠다는 것은 이미 잘 아시는 것처럼 제대로 안 되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죠.

또 하나는 향후 전망 차원에서 볼 수 있겠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5·24조치로 북한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나갈 경우 언젠가는 북한이 사과를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확실하다면 괜찮겠지만 사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그렇게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과 안 하고도 지금까지 무리 없이 진행되어 왔는데 지금 와서 갑자기 사과하며 나올 이유가 없겠죠. 물론 우리 입장에서 북한이 유감의 뜻을 표명한 것을 가지고 자의대로 해석하여 사과의 뜻으로서 받아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현 전 장관께서 말씀하신 그러한 원칙적인 입장이 견고한 상태에서 사과를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 어렵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제가 판단할 때는 5·24조치를 통한 대북제재 정책은 기본적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남북관계를 볼 때 안보라는 이슈를 중심에 놓고 국방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제는 경제적인 측면까지 포함해서 봐야 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북한에 비해 40배가 넘는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고 국방비도 북한 국민총생산의 2배 이상을 쓰고 있는데 이런 수준의 대한민국이 여전히 안보 이슈에 갇혀 북한한테 끌려다녀야 하는지, 아니면 대륙으로 뻗어 나갈 비전을 세우고 새로운 미래전략을 위해 생각을 바꿔야 하는지, 저는 이제는 바꿔야 된다고 봅니다. 지금 국내 곳곳에서 5·24조치에 대한 해제를 주장하는 이유 역시 바로 이런 생각 때문입니다. 미래에 우리가 생존해 나갈 길은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죠. 바로 이런 점에서 5·24조치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쯤 뭔가 새로운 판단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손 재 식 북한 당국의 특성 중 하나인데, 대남관계에서 잘못을 저질러도 사과라는 말을 하지 않죠. 한편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앞으로도 악행에 대해서 시인 및 사과를 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것으로 체제유지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요. 문제는 우리가 시인 및 사과를 받고 재발방지를 위해 남북 간에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인데 지금 상황에선 북한 당국의 속성을 감안해 융통성 있게 대처해 나갈 필요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강 인 덕 남북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교류협력과 저지의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균형을 잘 잡아 나간다면 국민을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죠. 지금 박근혜 정부로서는 5·24조치를 폐지하자는 말을 국민들께 감히 할 수가 없습니다. 5년이 지났어도 천안함 사건이란 게 얼마나 큰 사건입니까. 우리 해군 사상 가장 처참한 사건인데 이것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아직까지도 크게 남아있단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풀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그렇다면 현 상태 그대로 두고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고려해 볼만 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과거에도 많이 했어요. 북한의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국민에게 어떻게 알려드릴 것이냐 하는 과정이죠. 물론 이 문제에 대한 국민의 견해는 갈리겠지만 조화롭게 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남갈등 극복 어떻게?

 

손재식 “편견 갖고 자신의 견해 고집해선 안 돼 … 남남갈등 정치적 이용 경계해야”

강인덕 “국민적 합의 형성 위한 정부 노력 긴요 … 불순한 목적으로 통일문제 논의 안 돼”

현인택 “사회적 합의, 대북·통일정책 일관성 담보 … 갈등해소 위한 통일교육 중요”

이종석 “진보·보수 등 이분법적 구도 탈피 … 실사구시 기반한 사회적 합의 이끌어야”

 

 

신 영 석 대북정책이 효율적으로 추진되고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전 국민들의 확고한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통일문제를 둘러싸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남남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각각의 사안마다 사회 곳곳에서 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남남갈등을 극복하고 국내외 모든 동포들의 통일의지를 하나로 결집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손 재 식 남남대화가 남북대화보다 더 어렵단 말도 있죠. 그 정도로 서로 소통이 안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견해를 달리 하는 집단이나 개인이 좀 더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서 합의를 이루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학계나 언론계 등 사회 각계에서도 이런 공동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자신만의 견해를 고집해선 갈등 해소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남남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동시에 정치 활동 과정에서 남남갈등이 증폭되고 확산되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북한문제나 대북정책, 통일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광범한 논의가 있어야 되고 특히 여야, 좌우에서 대립하고 있는 사안에 대한 활발한 소통이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강 인 덕 남남갈등 해결은 정부가 대북정책을 추진할 때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 훨씬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남남갈등을 더 부추기는 상황이 올 수 있죠. 명백하게 우리가 신봉하는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북한에 대해 평가하는 자세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도록 노력하는 것 역시 중요할 것입니다.

정부의 노력과 함께 저는 우리나라에서 통일운동 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마음가짐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들이 진정 통일을 위해서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혹여 개인적 욕심을 위해 또는 향후 정치적 행보를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하나의 배경을 만들기 위해서 통일운동을 하고 있다면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통일문제에 대한 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고민하면 그건 문제가 될 리 없겠죠. 그러나 불순한 의도로 정치적인 뜻을 가지고 통일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하면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 인 택 우리의 세대가 한 때는 굉장히 진보적이거나 또는 보수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현상을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그 힘을 바탕으로 강력한 대북·통일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열된 국내적 상황과 첨예한 갈등 국면 속에서는 그러한 힘을 가질 수 없겠죠.

최근에 한 가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젊은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영화 <연평해전>을 봤더니 젊은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의 의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남남갈등 해법의 한 가지는 결과적으로 10대들이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가지느냐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제대로 구현해 내려면 올바른 통일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입시교육에 밀려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된 통일교육이 진행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통일·대북문제에 대한 지식 전달과 함께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고 건강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 위한 과정을 교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종 석 남남갈등 극복이라는 게 쉽지 않습니다. 북한 문제에 있어 우리는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같은 말을 많이 씁니다. 그런데 저는 북한 문제에 대한 이러한 이분법을 어떻게든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통일, 한반도 평화와 안정 등의 목표에 대해 반대한다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문제는 이러한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 하는 것에서 갈등을 빚는 것인데요. 과연 이것이 진보와 보수의 문제로 봐야 하는지 혹은 합리적인 판단과 상식의 문제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선 북한 문제를 보수와 진보로 나눠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편이 뚜렷하게 갈리니 논의가 필요 없거든요. 한 쪽에 귀속되면 다른 쪽을 반대하면 되니 편리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실사구시적 진전은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시민단체에 가서 강의를 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북한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또는 북한체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이런 분들이 진보적입니까?’ 하고 물어요. 북한의 3대 세습은 사실 수구 중에서도 수구인 것인데 이를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과연 진정한 진보입니까. 또 민족통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 진보입니까. 굳이 따지자면 민족통일은 보수의 가치와 가까운 것인데도 우리 언론에서는 그걸 진보라고 부르잖아요. 이게 바로 실사구시가 실종된 선입관과 정치 싸움을 위해서 만들어진 구도라고 보는 것이죠.

이제는 국익, 통일, 남북협력의 관점에서 상식적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사안을 놓고 판단을 해야 합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놓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는 지점, 즉 통일 및 북한 문제와 관련된 사안 중 사실에 대해서 일정 부분 합의가 되는 지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것이 귀찮고 어렵고 하기 싫으니까 서로 정치적으로 싸운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남남갈등 해결 측면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 영 석 마지막으로 분단의 극복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정부와 국민, 그리고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손 재 식 통일의 한쪽 당사자인 북한의 허상이 아니라 실상을 직시하여 바로 알고 바로 판단하여 언동해야 하겠습니다. 더욱이 북한의 선전선동에 현혹되어 경거망동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북한의 정권 실체나 실제 사회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정확하게 알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도자들이 중심을 제대로 잡아 앞으로 다가올 통일 과정에서 큰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강 인 덕 실사구시적 태도를 취하면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 통일론을 주장하는 인사들을 보면 너무 관념적이고 마치 자신들만이 통일문제를 다루는 것 마냥 언동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통일논의를 할 수 있는 기반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무엇이 기초가 되었는지에 대한 것을 염두에 두고 각 사안마다 논의를 해 나가면 갈등이 커지지 않을 텐데 70년 동안 발전하며 축적되어 온 역사적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시하면 안 될 것입니다.

이 종 석 우리 사회 지도자들이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과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에게 어떤 조국의 모습과 어떤 대한민국의 모습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민 위에서 통일된 한반도를 향해 나아간다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도자들 서로 간에 의견의 차이가 있는 것은 조금 줄이고 작은 차이는 일치시키려는 타협과 배려의 노력을 해야지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타협과 배려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현 인 택 좋은 국민이 좋은 지도자를 만들고, 좋은 지도자가 좋은 국가와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광복 이후 70년 세월을 돌아보면 큰 틀에서 우리는 좋은 국민이었고 또 우리나라에는 좋은 지도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미래에는 70년의 세월 동안 닥쳐왔던 과제보다도 더 큰 과제가 있습니다. 바로 평화통일입니다. 이를 이룩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좋은 국민이 되어야 하고 더욱 좋은 지도자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사회 지도자들이 정치적 이해타산을 떠나서 더 큰 국가차원에서 미래를 고민하고 전략을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사회자 신영석 / 평화문제연구소 이사장, 월간 <통일한국> 발행인

손재식 / 제10대 국토통일원 장관(1982년 1월~1985년 2월)

강인덕 / 제24대 통일부 장관(1998년 3월~1999년 5월)

이종석 / 제32대 통일부 장관(2006년 2월~2006년 12월)

현인택 / 제35대 통일부 장관(2009년2월~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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