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인물 | 이준식, 윌리엄 해밀턴 쇼 2015년 9월호
이달의 인물
이준식, 초지일관 항일 군인으로!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한국광복군 제1지대장 출신 이준식(李俊植, 1900.2.18.~1966.4.5.)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으로 건너가 1921년 중국 쿤밍에 위치한 운남강무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만주로 이동하여 항일무력을 재정비하기 위해 조직된 대한통의부에 가입했다. 만주지역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던 선생은 1924년 정의부 중앙위원에 선임되었다가 1927년 오동진이 일제에 체포되자 그의 후임으로 정의부 군사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28년에는 만주지역 3부가 통합해 조직된 국민부의 군사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29년 12월 국민부를 지원하기 위한 민족유일당으로 조선혁명당이 조직되자 조선혁명당 중앙위원 및 산하 무력단체인 조선혁명군 참모장으로도 활약하였다. 선생은 1931년 노선대립 등으로 만주지역에서의 독립군 활동이 어려워지자 상해로 이동하여 중국군 고급장교로 활약하면서 한국군인회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지속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여 임시정부가 창샤, 광저우 등지로 이전하게 되자 임시정부 청사를 확보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39년에는 임시정부 군사위원회 화북 지구 특파단으로 서안에 파견되어 병사모집과 군사훈련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선생은 총사령부 참모, 같은 해 11월에는 한국광복군 제1지대장에 임명되었다. 1941년에는 광복군 제1징모분처 주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2년 선생은 임시의정원 비서장 및 중령구 의원 선거회장을 맡다가 1943년 광복군 총사령부 고급참모로 전입되었고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에도 선출되었다. 정부는 초지일관 항일 군인으로 활약한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선생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9월 중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9월 한 달간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생의 생애와 한국광복군 활동을 담은 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지극한 조국애의 표상, 윌리엄 해밀턴 쇼
미국인 선교사 서위렴 1세 부부의 아들로 일제강점기인 1922년 6월 5일 평양에서 태어난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대위로 전역한 뒤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 중 6·25전쟁 발발 소식을 듣자 곧바로 해군에 재입대했다. 한국어와 한국 지리에 정통했던 그는 해군 정보장교로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뒤 서울탈환작전에 참전하였다. 1950년 9월 22일 녹번리(현 서울시 녹번동)에 정찰을 나갔다가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적 매복조의 공격을 받아 전사했다. 전사하기 일주일 전 쇼 대위는 동료인 해군 이성호 중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입니다. 내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공부만 하겠습니까? 공부는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의 한국 사랑에 대한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이 뜻을 모아 1956년 그가 전사한 자리에 추모비를 세웠으며 대전 목원대에는 해밀턴 쇼를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졌고 2010년에는 서울시 은평구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동상을 건립했다. 2015년 6월 ‘호국영웅 우표’의 인물로도 선정되어 기념우표가 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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