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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학연·지연·혈연, 절대 용납할 수 없어 201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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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33

학연·지연·혈연,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언젠가 어느 마을을 지나며 ‘○○○님의 장남 ☆☆군의 ◇◇대 입학을 축하합니다. -△△초등학교 56기 동창회 일동-’이라고 적혀있는 플래카드를 보았다. 동창회 이름으로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아직도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왠지 모르게 부러웠다. 그럴수록 너무나 경직된 북한의 동창 문화가 안타까웠다.

북한에서 동창회 더 활발하다고? 글쎄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북한에서 동창회 같은 우정의 공간이 더 많고 활발할 것이라 여긴다. 그 이유는 북한의 학급 및 담임 고정제 때문일 것이다. 우리처럼 학년마다 학급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입학 때 구성된 학급이 졸업할 때까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히 동창들끼리 끈끈한 우정을 유지한다고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담임도 웬만하면 없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북한에는 사조직문화 같은 게 없다. 북한당국이 제일로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사조직문화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조직문화란 표현은 다소 한국적으로 순화한 표현이다. 북한 용어대로 하면 종파적 요소이다.

북한에서는 왜 종파나 분파에 대해 이리도 신경 쓸까? 바로 김일성이나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세상에 절대적이란 게 있을 수 없으나 북한에서는 이 절대적인 것이 만능으로 통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절대적 충성은 순도 100%짜리 충성이지 그 어떤 불순물이 낀 충성이 아니다. 그런데 종파적, 분파적 행위가 지속되다보면 반드시 사회적 현상에 대한 불평불만이 나오기 마련이다. 좋게 말해 사회적 현상이지 나쁘게 말하면 당과 수령, 그의 사상과 정책에 대해 의문점을 표출하게 되고 그것이 반당·반국가적 요소가 되며 종국에는 행위로 번질 수 있다는 게 북한당국의 판단이다.

이 절대적 충성심을 강조하기 위해 북한은 김일성의 역사를 한 마디로 반종파 투쟁이라고 총평한다. 그만큼 종파적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유는 종파가 동상이몽과 끼리끼리의 온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해방 후 일부 종파분자들이 모여 뒤에서 김일성을 헐뜯었고 그가 내놓은 사상과 정책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고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종파적 행위를 낳는 요소로 바로 학연, 지연, 혈연을 꼽는다.

실태가 이러다보니 학생 교육·교양에서도 온통 수령에 대한 충실성으로 일관될 수밖에 없고 심지어 아이들의 사생활에서도 끼리끼리 단속한다. 물론 같은 동네에서 사는 애들인 경우는 할 수 없지만 동네도 같지 않으면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끼리, 혹은 주먹이 센 아이들끼리 패를 지어 휩쓸려 다니는 것을 통제한다.

우리학급에도 이런 아이들이 있었다. 학급의 일진이라 할 수 있는 애들이 몇 명 있었는데 하나 같이 공부도 잘하고, 부모의 직위도 높은, 잘 사는 집 애들이었다. 이들은 공부할 때에도, 무슨 작업을 할 때도 서로 같은 조가 되길 원했고 다른 애들을 깔보며 우쭐대는 경향도 있었다. 규율을 문란하게 해도 서로 눈감아주기가 일쑤였다. 자연히 담임인 나나 다른 아이들의 눈에 거슬릴 것은 뻔했다. 그걸 가지고 호되게 비판하고 개별 담화를 하던 생각이 난다.

북한 학생 합창단이 정전협정 기념일인 지난해 7월 27일 공연을 하는 모습. 북한은 이날을 ‘전승절’로 선전하고있 다. ⓒ연합뉴스

북한 학생 합창단이 정전협정 기념일인 지난해 7월 27일 공연을 하는 모습. 북한은 이날을 ‘전승절’로 선전하고있 다. ⓒ연합뉴스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도 종파적 요소

그래도 굳이 북한에서 동창회 문화를 찾는다면 고향에 남은 몇몇 동창들끼리 이따금 모여 술도 마시고 노는 정도이다. 하지만 회비를 걷거나 연간 일정을 정하지는 않는다. 한 적극적인 친구가 주동이 되어 일일이 찾아다니며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식이었다. 오늘은 누구네 집에서 모이고 다음엔 누가 낸다는 식으로 친구들이 술도 마시고 회포를 나누는 수준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나 사회에서 사귄 친구, 동료들 간의 우정은 더 끈끈했다. 5~6명 정도였는데 이따금 모여 우정을 이어갔다. 그리고 각자의 직위에 따라 친구의 어려움을 도와줬다. 좋은 직장에 입사하도록 도와주거나 친구의 자식이 대학시험에 합격하도록, 친구의 가족이 죄를 지었을 경우 풀려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정도였다. 물론 돈이라는 매개체가 반드시 있었다.

이런 문화는 사회적으로 확산되지 못했고 일부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 사이에서나 간혹 통용되는 문화가 되었다. 참 이상하게도 어려서부터 조직문화에 익숙한 북한에서 동창회 같은 사조직문화는 없고 국가는 오히려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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