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9월 1일 0

북에서 온 내친구 |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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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7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아닌가요?”

탈북 친구들을 만나다보면, 변화가 심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다른 체제에서 살다 남한에 와서 적응하느라 혼란을 겪는 건 당연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때가 있다. 미희가 그렇다.

처음 미희를 보았을 때는 얼굴도 예쁜 데다가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열심히 써서 그 아이의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그런데 미희는 자신의 출신지나 북에서 힘들게 살았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같았다. 당원이었던 아버지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다는 것 외에는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다. 거울을 자주 보는 것이 특징인 미희는 뭔가를 숨기는 듯 싶기도 하고, 신비주의를 꿈꾸는 것 같기도 했다. 미희는 나날이 변해 갔다.

도도함을 잃지 않던 도라지꽃이 인조 장미로

대학입시를 코앞에 둔 시점, 미희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쌍꺼풀 수술은 물론 코까지 손을 댄 것 같았다. 들녘에 아무렇게 피어 있어도 도도함을 잃지 않던 도라지꽃이 순식간에 인조 장미로 변한 느낌이었다. 본인은 성형한 얼굴이 마음에 드는지 거울을 보는 횟수가 더욱 잦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이 많았다. ‘저토록 미모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활비도 없다고 쩔쩔매던 아이가 성형 비용은 어떻게 충당한 것일까.’ 하지만 대놓고 물을 수는 없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특례 입학으로 대학에 간 미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텔레비전을 보다 다른 프로그램을 찾느라 리모컨을 돌리는데, 낯익은 얼굴이 나왔다. 미희의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그녀는 화려한 차림에 우아한 자태로 앉아 있었다. 성형미인답게 화면에 비친 미희의 모습은 단연 빛났다. 하지만 방송에 나타난 미희의 역할은 별다른 게 없었다. 같이 출연한 탈북 미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림자처럼 앉아 방긋방긋 웃고만 있었다. 반가우면서도 왠지 아쉬웠다.

얼마 전 학교의 ‘홈커밍 데이’에 미희가 나타났다. 미희는 마치 연예인처럼 화려한 미소와 함께 선생님들과 후배들에게 인사를 했다. “언니,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 봤어요. 완전 예뻐요.” 후배들이 미희가 부러운 듯 말했다. 미희는 어깨에 더욱 힘을 주며 일일이 대답을 해 주는 등 바빴다.

갑자기 방송에서의 미희 모습이 떠올랐다. 행사가 끝난 뒤, 선후배가 모여 식사를 하는데 바로 옆자리에 미희가 앉았다. “요즘 책 좀 읽니? 대학 생활은 어때?”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탈북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 가 진도를 따라가는 것이 힘들어 휴학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저, 벌써 휴학 했어요. 공부는 제 적성이 아닌 듯 싶어요. 교수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해요?” 미희는 전혀 아쉬움이 없다는 듯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럼, 지금은 뭐해?” “저, 방송 하잖아요. 못 보셨어요?” 미희는 대스타가 된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나는 기분이 묘했다. 미희에게 무슨 말인가는 해 주고 싶은데, 혹 상처가 될까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송이 재밌니? 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전 돈 되는 일이면 뭐든 가리지 않고 할 거예요

미희는 내 질문에 속사포를 쏘듯 자기 속내를 털어놓았다. “방송 재밌어요. 출연료도 많고요. 제가 어떻게 그리 유명한 연예인을 만날 수 있겠어요? 완전 기회지요. 돈도 벌고, 재미도 있고요. 대한민국은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아닌가요? 아르바이트 한 달 뼈 빠지게 해봤자, 방송 한 번 출연하는 것보다 못 벌어요. 전 돈 되는 일이면 뭐든 가리지 않고 할 거예요.” 미희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지지하고 응원해 줄 수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미희가 그저 낯설 뿐이었다.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희도 내 연민 가득한 눈빛이 부담스러운지 슬그머니 다른 팀이 모여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웃고 떠드는 미희를 보며 행사장을 나왔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내 귓가에는 미희가 따지듯 물은 질문이 떠올랐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아닌가요?” 이 질문에 그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던 내가 참 한심했다. 적어도 ‘그건 아니다.’라고 말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책감에 한동안 괴로웠다.

나는 미희 말고도 오직 돈을 벌기 위해, 그늘 속으로 들어가는 탈북 아이들을 꽤 보았다. 보다 쉽게 돈 벌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아이들. 돈이 있어야 브로커를 사서라도 북에 있는 부모 형제를 데려오고, 화려한 옷도 사고 영화도 보고 데이트도 할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돌을 던질 수는 없었다. 비단 탈북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니므로.

남한의 젊은이들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면 두 발 벗고 나서는 세상 아닌가! 근본적으로 탈북 아이들 이 땅에 와서 제대로 뿌리 내릴 수 있는 기반을 갖춰 주지 못한 책임도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는 막막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나는 미희를 처음 보았을 때의 예쁘면서도 순전한 눈망울이 그립다. 다시 어디선가 미희를 만나면 꼭 말해 주리라.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은 아니란다. 성실히 자기 길을 가다보면 행복도 만나고 돈도 벌게 되는 것 아니겠니?”라고 말이다.

※ 탈북 친구들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박경희 / 하늘꿈학교 글쓰기 지도교사

Q. 저의 외모는 어딘가 모르게 촌스러운듯해요. 친구들도 저를 보고 촌스럽다 생각하지 않을까요?

A. 남한사회에 정착해 일반 학교에 편입한 탈북 청소년들은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독특한 억양과 문화적 이질감, 학습부진 등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로 소외와 차별을 겪다가 학교를 자퇴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시기는 급격한 신체적, 심리적 변화를 겪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고, 또래친구와의 관계를 어느 문제보다 중요하게 여깁니다. 특히나 갑작스럽게 대중문화에 노출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탈북 청소년들은 외모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많은 탈북 청소년들이 외모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표준어 구사와 세련된 외모를 갈망한다고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자신도 모르게 주눅 들어 있지는 않았나요?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만 신경을 곤두세운 채 남한 문화에 일방적으로 적응하기보다는 무엇이 내게 어울리는지 생각하며 한발 한발 내딛기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외모 가꾸기에 쏟을 시간과 정성을 미래에 꼭 이루고픈 꿈을 발견하고, 준비하는 데에 사용하면 어떨까요? 어느 순간 자신감 넘치는 멋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해요.

전지현 / 화성시청 북한이탈주민 담당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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