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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 함흥 서점주인 과거사 201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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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55

함흥 서점주인 과거사

3년 전 어느 여름날 함흥시 성천구역 장마당 귀퉁이에 난데없이 책방 하나가 생겼다. 주인은 예쁘장하게 생긴 30대 중반쯤 되는 여자였는데 얼굴에는 늘 방실방실 웃음이 피어있었다. 유독 한 사람, 어떤 남자만 들어오면 웃던 얼굴이 단박 파래지며 여주인은 이내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 남자는 이런 걸음이 처음이 아닌 듯 여자가 들어간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힘 빠진 걸음으로 출입문 밖으로 나간다. 안에서 책을 읽던 사람들의 표정도 각양각색이다.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는 사람, 히죽히죽 웃는 사람, 경멸의 눈총을 쏘는 사람도 있다.

안으로 들어간 여인은 한동안 넋을 잃고 천정만 바라보다가 그 남자가 가자 다시 나와 책을 주문하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엔 이내 웃음꽃이 피어난다. “난 정말 책방에 나오기 전까진 웃음이라는 걸 몰랐어요. 빌려줄 책을 주문해 오고 빌려주고 읽으며 즐거워하고 울기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밝아지거든요.”, “혹, 그 웃음이 난생 처음 스스로의 경영으로 얻게 된 수입에서 온 것은 아니었습니까?”

필자는 아직도 그때의 기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은 여인을 보며 넌지시 물었다. “아니, 그렇게 직설적으로 들이대면 어떻게 해요.” 여인은 가볍게 웃고 나서 정말 골방 안에 갇혀 남편 수입만 바라보며 살던 때가 과연 있었지 하는 생각에 아련한 기억을 떠올린다.

어머니와 동생 탈북하자 졸지에 집안 도륙 낼 여자로

여인의 남편은 북한의 국가기관에서 이른바 ‘한 자리’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공급되는 식량으로 살던 그들의 가정에 뜻하지 않은 시련이 닥쳐왔다. 계속되는 어려움으로 빈곤한 생활난이 이어지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여인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중국으로 탈출했고 이어 한국에 정착했다. 그 사실은 곧 남편과 함께 살던 시어머니에게 심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잖아도 남의 집 여인들처럼 시장에 나가 꽝꽝 벌어들이지 못하는 젊은 며느리를 늘 마땅찮게 생각해오던 시어머니가 기회가 온 듯 집안을 도륙 낼 여자라 소리치며 당장에 이혼을 선포했다. 여인은 그때처럼 암담한 때가 없었다고 말한다.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었어요. 이혼은 무섭지 않았으나 아들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펐어요. 그렇지만 슬슬 눈치만 보는 남편 곁에 더 이상 붙어 있고 싶지 않아 전 이혼 문서에 도장을 찍고 무작정 집을 나왔어요. 처음엔 암담했죠. 무엇을 어떻게 해야 먹고 살지, 북한도 이젠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 어지간해선 설 자리를 찾기 힘들거든요. 며칠을 방황하던 내 눈에 뜨인 것이 바로 책장사였어요. 그건 아마 제가 책 읽기를 좋아해서 그런 발상을 했던가 봐요. 평시에도 많은 책들을 빌려 읽곤 했던 저여서 승산이 보였어요. 이후 귀인을 만나 시장 변두리에 자그마한 책방을 내오고 본격적인 책장사를 시작했어요. 의외로 독서자가 많았어요. 어떤 분들은 먹고살기도 바쁜 열악한 환경인데 책이 말이 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니었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독서 열의가 더 강했어요. 결국 번창해졌죠.”

그렇다면 그 많은 책은 어디서 구해오는지 궁금했다. “국영도서관 책들입니다. 미공급이어서 도서관 운영이 안 되거든요. 누가 한 달 일해 쌀 1kg도 못 사는 월급을 받으려고 직장에 출근을 합니까? 결국 도서관엔 책임일꾼만 남아 있는데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임대료로 수입의 3할을 주고 7은 제가 먹어요. 한국에선 사업자가 되면 국세청에 등록하고 세금도 내야 하지만 그쪽은 아직 그런 체계가 없어 장세만 내면 수입이 참 짭짤했어요.”

다시 저와 살아줄 순 없겠습니까?”

“그렇게 짭짤한 수입을 두고 왜 한국에 오셨습니까?”, “말씀 드렸잖아요. 내 얼굴이 확 피니까 대신 남편이 풀이 죽어 매일 책방에 나타났어요. 국가기관 수입이 날이 갈수록 엉망이어서 그랬던가 봐요. 출세고 뭐고 당장 입에 풀칠이 급해 늘 내 주위를 돌았어요. 안쓰럽긴 했지만 엄마와 동생이 탈북했다고 하여 나까지 쫓아낸 걸 생각하면… 용서가 되지 않았어요. 남편이 책방에 나타났다가 돌아가면 안의 사람들은 늘 빈정거렸어요. 그 중엔 흉내까지 내는 분들도 있었어요. ‘다시 저와 살아줄 순 없겠습니까? 직위보다 목구멍이 먼저라는 걸 때늦게야 알게 됐습니다. 웬만하면 다시 살아 주시우’ 하고요. 따라 웃긴 했지만 가슴은 쓰리고 아팠어요. 제도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죠. 처음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날 엄청 좋아했었는데…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어요. 또 한국에 정착한 엄마도 보고 싶고, 동생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어 결국 이렇게…”

여인은 끝내 손수건을 눈언저리로 가져간다. 필자 역시 가슴이 쓰렸다. 여인은 홀몸으로 탈북했고 끝내 아들은 데려오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다시 볼 수 없는 한 점 혈육을 불모의 땅에 두고 왔음에야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겠는가. 또 한 번 통일의 절박함을 느껴보는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이지명 / 망명작가펜(PEN)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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