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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시 | 정쟁의 소용돌이 속 희생자 눈물로 얼룩진 케냐 201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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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시 17

정쟁의 소용돌이 속 희생자 눈물로 얼룩진 케냐

케냐는 한반도의 약 2.6배에 해당하는 면적 58만km2를 보유하고 있다. 케냐는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수단, 우간다, 탄자니아, 르완다, 부룬디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조모 케냐타(Jomo Kenyatta)가 케냐를 통치했고, 1978년 그가 사망하면서 부족 간의 정쟁이 시작되었다. 케냐타의 후임 대통령이 된 모이는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정국을 통제했지만 부족과 정치세력 간 크고 작은 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2007년 부정선거 관련 소요사태로 1,500명이 사망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졌고 2013년에는 이슬람 반군 단체의 소행으로 알려진 쇼핑몰 테러 사건이 발생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지난 4월 3일(현지 시간), 케냐 가리사 대학에서 소말리아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의 무차별 공격이 이뤄졌다. 케냐 시민들은 8일 촛불집회를 갖고 이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합뉴스

지난 4월 3일(현지 시간), 케냐 가리사 대학에서 소말리아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의 무차별 공격이 이뤄졌다. 케냐 시민들은 8일 촛불집회를 갖고 이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합뉴스

끊이지 않는 테러 케냐는 제한전쟁 중

케냐 분쟁은 부족과 정치세력 간의 갈등, 문기키 교파의 활동, 인접한 국가들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연계된 원리주의 세력들의 테러 등과 관련되어 촉발·진행·확대과정을 거치고 있다. 케냐타 집권기간인 1963년부터 1978년까지는 키쿠유족 중심으로 정국이 운영되었다. 이어 등장한 모이는 같은 당 소속이었으나 칼렌진족을 대표했다. 그는 키쿠유족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대부분의 공적재산을 칼렌진족 위주로 분배했다. 1990년에는 다당제를 요구하는 폭력시위가 발생해 헌법 개정안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1992년 개정안이 철회되면서 각종 정치집회가 금지되고 탄압이 극에 달하자 야당은 무장조직을 설치했다. 1994년 리프트계곡에서 발생한 부족 간 무장충돌로 수백명이 사망하면서 전국적 규모의 내전으로 악화되기도 했다.

2007년 12월 27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당 므와이 키바키 대통령이 야당 오렌지민주운동의 라일라 오딩가 후보를 23만표의 차이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선거와 개표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정사례가 확인되었다. 특히 여론 조사와 개표 결과에서 오딩가 후보가 키바키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오자 선관위는 개표를 중단한다. 야당은 이후 재개된 개표로 키바키 대통령의 승리가 발표되자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 불복을 선언했다. 키바키 대통령은 소요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선거 결과 발표일 저녁 곧바로 취임식을 가졌다. 그러나 시위와 폭력사태는 수도 나이로비를 비롯해 케냐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유혈사태가 이어지며 1,500명의 사망자, 6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케냐 분쟁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 문기키 교파와의 분쟁은 2002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문기키 교파는 케냐 정부에 의해 금지된 정치·종교 집단이면서 범죄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문기키라는 말은 키쿠유어로 ‘단합된 사람들 또는 군중’이라는 뜻이다. 문기키 교파와 정부 사이의 지역적 지배를 둘러싼 분쟁은 2013년 들어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케냐에서는 1997년 8월 몸바사에서 폭동이 일어나 65명이 사망한 데 이어 1998년 8월 나이로비의 미국 대사관이 폭파되어 218명이 사망했다. 2002년 11월 몸바사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13명이 사망하는 등 연이은 테러가 발생했다. 케냐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수단,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등은 대부분이 분쟁이나 내전을 겪고 있다. 이중 소말리아는 현재 무정부상태에서 해적과 알카에다 연계 조직들이 들끓고 있다. 2013년 9월 21일 테러범들이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웨스트랜드 웨스트게이트 쇼핑몰을 수류탄과 총기로 장악한 뒤 무차별 살상을 벌였다. 이들은 쇼핑객들을 인질로 잡고 군경과 대치했다. 소말리아 이슬람 반군 알샤바브는 케냐가 2011년 소말리아에 병력을 파견한 데 대한 보복으로 테러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한국인 여성 1명을 포함해 민간인과 군인, 테러범 등 72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발생 4일 만인 9월 24일 종료되었다고 케냐 정부는 공식 발표했다.

통합·화합만이 유혈사태 재발방지책

2014년에도 케냐의 다양한 종족 간 분쟁은 자원과 지역적 지배 등을 놓고 제한전쟁 수준으로 계속되었다. 2014년 한 해 이들의 충돌로 인한 사망자가 300여 명 발생했고, 수백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22만여 명은 집을 잃고 난민이 되었다. 또한 케냐 정부와 문기키 교파와의 분쟁은 폭력을 동반하며 지속되었다. 케냐 정부는 2014년 문기키 교파의 폭력으로 수십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실종되었다고 발표했다. 문기키 요원들은 정부 청사를 습격하고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등 각종 폭력행위를 일삼고 있다. 그 이외에도 오렌지민주전선과 국가연합과의 갈등, 뭄바사 공화위원회와 정부 간 충돌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케냐의 정치 상황은 완전히 안정을 찾은 것은 아니다. 단지 새로 개정된 헌법에 따라 일부 종족이 연합하면서 정권을 잡았을 뿐이다. 정권을 획득하지 못한 종족들은 불만을 표시하고 시위를 하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전 한 종족이 정권 전반을 장악하고 케냐의 부를 점유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이제는 일부 종족이 그것을 하고 있다. 사회 전반적인 통합, 여러 종족의 화합과 권리의 공평한 분배가 요구된다. 만약 이와 같은 통합과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케냐가 2007년 당시 유혈사태를 다시 겪게 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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