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10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北 | 금지된 땅, 가상현실로 걷다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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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46

금지된 땅, 가상현실로 걷다

 

DMZ에 대해 정치적으로 부각되는 상황은 분단 현실을 드러내는 물리적 공간이 갖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DMZ 국제영화제가 열렸다는 소식을 언론보도로 접한다. ‘리얼 DMZ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미술제도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그러나 DMZ에서 여러 행사가 개최된다고 해서 우리에게 DMZ라는 공간이 자유롭게 열리는 것은 아니다. 리얼 DMZ 프로젝트도 DMZ 안보관광 루트를 근간으로 전시 동선이 설정되어 있었다.

오늘 소개할 미술가는 권하윤이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3D 등 다양한 기법으로 영상 작업을 선보여온 작가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30대 젊은 미술가이다. 그는 매번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DMZ가 정치적인 도구로 변모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제는 신화처럼 되어버린 이 공간, 나에게 금지된 이 공간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인간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그녀의 작품 <489>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북한프로젝트’ 전시에 출품되었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광경이 지금도 떠오른다. 360도로 가상공간을 체험할 수 있도록 24대의 카메라를 사용하여 3D매체를 통해 기획된 작품이기 때문에 특수한 안경을 쓰기 전까지는 그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없었다.

권하윤,  스틸이미지, 2015

권하윤, 스틸이미지, 2015

권하윤이 안내하는 DMZ3D 세계

권하윤은 2014년 봄 파주에 머물렀고 DMZ 수색대 출신의 군인들을 인터뷰 하는 과정에서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카메라를 들고 DMZ로 가서 촬영을 하는 것보다는 그 곳에서 근무했던 군인들의 기억을 통해 ‘그들의 DMZ’를 방문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권하윤은 군인들의 추억을 토대로 하여 자신이 상상할 수 있었던 DMZ를 3D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했고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토대로 DMZ 공간을 만들어냈다. DMZ라는 존재가 우리의 인식 속에 만들어내는 심리적인 선이 물리적 선을 지배하고 실재 공간을 압박해가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3D 가상공간을 이용해 해체하는 방식으로 기획한 것이다.

권하윤이 제공하는 특수 안경을 쓰면 관람객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 공간을 거닐 수 있다. 북으로 갔다가 뒤로 돌아 남쪽으로 걸어 나왔다가 오른쪽 또 왼쪽으로 자유롭게 공간을 활보한다. 하지만 마냥 신기한 어린아이로 되돌아 간 것 같은 느낌 속에서도 이 공간이 DMZ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자유롭게 활보했던 스스로를 발견하며 알 수 없는 느낌에 당황한다. DMZ라는 물리적 선에 의해 섬처럼 갇힌 공간에서 사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내 몸이 분단의 트라우마가 그대로 전이되어 있는 신체였음을 느낌으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가상현실 기법으로 활용해서 만든 DMZ 공간을 거니는 내내 우리의 귀엔 DMZ 수색대 출신 군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그 목소리와 함께 DMZ를 능동적으로 거닐면서 시각적 자유와 정치 도구화된 DMZ 공간의 혼재성을 체험하게 된다. 작품 마지막에서 권하윤의 DMZ 공간은 한쪽에서부터 서서히 번져 나가는 불의 위력이 역설적이게도 웅장한 아름다움으로 펼쳐나가게끔 구성된다. 정치적 목적으로 나뉜 이 공간을 무력화시켜내는 ‘자연’이라는 원초적인 힘이 인간의 욕망과 나약함에 대해 되묻게 하는 장면이다.

우리는 모두 DMZ 공간이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변화하는 순간을 꿈꾼다. 그것은 이 땅의 아이들이 유럽 대륙의 국경을 넘으면서 “국경인데 왜 철조망이 없어?”라고 묻지 않는 날을 꿈꾸는 것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쑥 튀어나오는 상상력의 지평선이 가로막히지 않는 날을 꿈꾸는 것이다.

분단 문제를 다루는 권하윤 같은 젊은 세대들의 참신한 시선이 반가운 것은 분단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 속에서 갇혀있기보다는 풍부한 작가적 상상력으로 지금의 분단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권하윤의 다음 작품을 주목해보고 싶은 가장 큰 이유다.

 

박계리 / 통일디자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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