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겨레말 | “선생, 전보다 좀 까진 것 같습니다” 2015년 10월호
알쏭달쏭 겨레말
“선생, 전보다 좀 까진 것 같습니다.”
북 : 오랜만에 봅니다.
남 : 그러게요. 그동안 건강하셨죠.
북 : 그런데 전보다 좀 까진 것 같습니다.
남 : 까졌다니요. 말이 좀 심하네요.
북 : 심하다니요. 까진 걸 까졌다고 하지 뭐라고 합니까?
남 : 제가 어딜 봐서 까졌다고 그런 말을 합니까?
북 : 동무가 왜 화를 내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남 : 내가 왜 화를 내는지 알지 못하는 당신이 나도 이해가 안갑니다.
북 : 그만 합시다.
이상은 남과 북의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다 ‘까지다’에 있는 의미 차이로 싸움까지 번지는 상황을 가상으로 만들어 본 것이다. 남에서 ‘까지다’라는 말과 잘 어울려 쓰이는 말들이 있다. ‘까지다’ 앞에 ‘홀랑, 홀딱, 훌렁’이 오면 ‘대머리’가 연상되고 ‘발랑’이 오면 ‘되바라진 아이’가 연상된다.
그런데 북은 ‘홀랑, 홀딱, 훌렁, 발랑’과 ‘까지다’를 절대로 어울려 쓰지 않고, 대신 ‘볼’과 함께 쓰고 있다. ‘볼’이 대머리처럼 벗겨진 것도 아니고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처럼 되바라진 것도 아닐 텐데 ‘까지다’ 앞에 ‘볼’이 자리를 하고 있다. 이 이유는 ‘까지다’의 남과 북 사전 풀이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북에서는 ‘벗겨지다’와 ‘되바라지다’의 의미로 ‘까지다’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조선말대사전≫에서는 ‘빠지다’를 ‘(살이) 여위다’로 풀이하고 있지만, 북에서는 ‘빠지다’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까지다’라는 말만을 쓰고 있다. 그래서 5년 만에 만난 북쪽 선생님이 내게 첫인사를 이렇게 했다.
“완서 선생, 왜 이렇게 몸이 까졌어요? 어디 아팠어요?”
까지다 <표준국어대사전>
– 까지다1 [동]
- 껍질 따위가 벗겨지다.
- 재물 따위가 줄어들다.
– 까지다2 [동]
- 지나치게 약아서 되바라지다. | 나쁜 애들과 어울리더니 말투까지 {까질}대로 {까졌다}.
까지다 <조선말대사전>
– 까지다 [동]
- (살이) 빠지다. || 볼이 {까져서} 홀쭉하다
남측 용례
⊙ 굿 차릴 준비가 거의 되어가는 데다 드디어 앞머리가 홀딱 {까진} 대머리 소자가 나타난 것이다. <박정요 : 어른도 길을 잃는다>
⊙ 저희 반에 행실이 얌전하지 못한, 소위 말하는 ‘발랑’ {까진} 여자애가 있어요. <권지예 : 유혹>
북측 용례
⊙ 비록 볼은 {까졌으나} 눈매만은 어찌도 정기찬지 그를 어떠한 체형으로써라도 굴복시킬 수 없으리라는 믿음을 느끼게 한다. <박태민 : 4번수>
김완서 /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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