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이산가족 문제, 근본적 정책전환 필요하다 2015년 10월호
시론
이산가족 문제, 근본적 정책전환 필요하다
자칫 무력충돌의 위기까지 치달았던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은 확성기 방송 중단과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담은 극적인 회담 성과로 마무리 되었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인도적 과제다. 그러나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단지 가족들의 애타는 바람을 실현하는 인도적인 명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관계 개선 및 평화통일 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서 가족과 지역(고향), 민족동질성 회복이라는 장기적인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져 갈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통일에 다가서는 ‘사람의 통합’ 과정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처럼 이산가족 상봉과 교류는 명실상부한 남북 간의 최우선적인 정책과제라는 점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러나 과연 현실은 어떠한가? 전쟁과 냉전의 소용돌이 역사에 의해서 서로 헤어져 산 지 이제 70여 년이 되어가는 가족들이 생사여부는 물론 서신교환이라도 하려는 ‘자연권적’ 욕구는 여러 가지 정치적 제약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상봉을 이룩한 숫자도 전체 신청자 규모에 비하면 너무나 미미하다. 현재의 이산가족 신청자 6만7천여 명의 평균 기대수명으로 보아 20년 내 거의 사망하고 신청자의 82%, 즉 70세 이상의 고령층은 10년 내에 대부분 사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방문단 상호교환에 합의함으로써 활성화되었으며 당국 차원의 상봉규모는 연평균 1,800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에는 남북관계 경색으로 당국과 민간 차원의 상봉이 모두 감소했다. 특히 당국 차원의 상봉은 2009~2010년 2차례에 걸쳐서 1,770여 명만 성사되었고 2008년과 2011년에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민간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 비용도 점차 증가되어 이산가족 상봉자의 금전적 부담이 크게 증가되는 추세다.

지난 9월 9일 서울 중구 소파로 대한적십자사 남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추진센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1차 후보자 추첨에서 선정되지 못한 조갑순(82) 할머니가 눈물을 닦으며 센터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극소수 대상으로 한 1회성 상봉행사에 비판적 시각 제기
이러한 상황 아래 이산가족 상봉 대기자나 가족들의 기대나 관심도 크게 저하되는 실정이다.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한 실증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1년 당시 정부의 이산가족 정책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는지를 물어본 결과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이 63.4%로 ‘만족한다’는 의견 22.8%보다 3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정책 불만과 더불어 일부 국민들 사이에 극소수 신청 이산가족만을 대상으로 하는 1회성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측 방문단의 정치적 언행에 대한 반감이 형성되고 북한의 시혜적 태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답답하게 막힌 것은 남북관계 경색이라는 구조적 요인도 있지만 북한 당국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북한은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 과제나 통일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보상수단으로 인식한다. 즉 대북 쌀·비료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및 교류 사업과의 연계, 금강산 면회소 시설과 설비비용 요구, 대북 전력지원과 이산가족 문제 연계 등 북한은 끊임없이 이산가족 상봉 및 교류행사의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적 보상요구뿐만 아니라 5·24조치 해제 등 정치적 보상까지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외에도 북한의 행정체계가 이산가족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인구를 조회, 탐색하고 이들을 어느 정도 ‘사전교육’까지 시켜 회담장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행정능력과 자원이 미비하다는 것이다.
이제 인구학적인 변화와 국민들의 정책 불만, 관심저하 현상을 직시하면서 이산가족 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와 새로운 정책목표 및 추진체계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이산가족 상봉행사 위주의 정책수단 및 접근방식의 한계도 짚어보아야 한다. 단기적 행사성 상봉 위주의 정책은 정책효과도 떨어지고 국민들의 정책 불만도 높다. 이제부터 1회성 행사 위주의 이산가족 상봉에 매달리는 일면적인 정책보다 다면적이고 포괄적인 이산가족 정책을 수립하여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정책프레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이산가족 5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체성과 교류의지가 강한 ‘적극집단’은 31.4%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산가족 상봉의 정책 핵심목표 집단을 재선정 해야 한다. 앞서 지적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고려할 때 직접적인 1회성 상봉행사 성사 여부에 매달리기보다 전면적인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과 화상상봉을 우선적인 정책과제로 설정하고 추후 직접상봉, 고향방문, 영구귀향 등 단계적 추진방안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생존 이산가족 대부분은 직접 상봉(20.3%)보다 생사확인(49.6%)을 우선적으로 원하고 있다.
이산가족, 직접상봉보다 생사확인 우선적으로 원해
가능하다면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서 당국 차원의 서신교환 제도화를 추진해 볼 수 있다. 즉 대면 상봉 없이도 자유롭게 이산가족 간 우편물을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모색하는 것이다. 서신교환은 직접교류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많은 신청자들의 욕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북한 측의 정치적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 서독 정부는 서독 주민들로 하여금 우편을 통한 교류뿐 아니라 인적왕래를 통한 물품 직접전달, 면세점 등을 통한 동독 주민에 대한 지원을 허용한 바 있다.
현재 예산 부족의 이유로 16.7%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는 영상편지 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해 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이를 위한 예산지원과 민간자원 봉사 참여 등을 통해 재정문제를 극복하는 방법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2007년 화상상봉 중단 이전 남북에 설치된 20여 개의 화상상봉장의 재활용 가능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여 불용시설은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한편, 장비 통신망 등을 재정비하고 화상상봉의 재개를 위한 협상 노력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원웅 / 가톨릭관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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