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1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北 | 300개의 비섯, 워터마크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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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37

300 개의 비석 워터마크를 찾아라

 

두 대의 버스가 출발하자, 씨네 라디오가 시작되었다. “Take on me” 팝송으로 시작하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으로 여정의 성격을 암시하는 인사말이 이어졌다. 우리 차의 DJ는 미술가 임민욱 선생님이, 뒷 차의 DJ는 사회학자 한성훈 교수님. 각 차의 이야기가 연동되며 차 안을 채워갔다. “38선이 뭐죠?”, “38선이 휴전선하고 같은 개념 아닌가요?”

즉석 질문들 사이로 노래 “임진강”도 흐르고, 할머니들의 구술 목소리도, 아빠와 딸의 경쾌한 목소리도 들렸다. “이런 말 들어봤어? DMZ?”, “OMG는 알아. Oh My God.”, “그럼 DMZ는?”, “Dog 마이 갓!” 음산한 백현진의 보컬. “길을 찾고, 길을 잃고, 길을 찾고 길 잃고…” 1994년 백현진, 장영규, 원일이 결성한 어어부밴드의 신곡을 들으며 계속해서 철원으로 달려갔다.

지난해 12월 18일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 수도국지 일대에서 작가 임민욱의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비(碑)300-워터마크를 찾아서>라는 제목을 갖는 이 작품은, 철원의 옛 수도국 자리에서 사라진 300명의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12월 18일 강원도 철원군 사요리 수도국지 일대에서 진행된 임민욱 작가의 '비(碑) 300-워터마크를 찾아서' 프로젝트에서 참가자들이 작품을 불빛에 비춰 찾아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18일 강원도 철원군 사요리 수도국지 일대에서 진행된 임민욱 작가의 ‘비(碑) 300-워터마크를 찾아서’ 프로젝트에서 참가자들이 작품을 불빛에 비춰 찾아보고 있다.

이곳에 300여 명이 총살 또는 저수조 속 생매장…

공간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이곳에서 “광복과 더불어 6  25전쟁을 겪으면서 친일 반공 인사들 300여 명이 총살 또는 저수조 속에 생매장 당했다.”고 쓰여 있다. 임민욱은 안내문을 읽고 당시의 정황이 궁금해졌고, 이 숫자가 지시하는 사라진 사람들의 기록을 사회학자 한성훈 교수와 함께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어떠한 형태로든 관련된 자료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공동체에서도 잊혀지고 이제는 사유지가 되어 영원히 은폐될 처지에 놓인 그들의 흔적과 이름을 상상함으로써 이 장소의 정체성과 역사적 트라우마를 드러내어 관람객들에게 대면하게 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 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청중이 함께 하는 생방송 라디오처럼, ‘씨네 라디오’의 임민욱, 한성훈 DJ는 다큐멘터리와 허구적 요소들을 넘나들며 우리를 철원의 현장으로 안내했다.

현장은 체감온도 -20℃를 기록하며 우리의 마음까지 꽁꽁 무장시킨 가운데, 수도국 내외에 얼음으로 조각되어 쓰러져 있는 인물상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각상들 사이사이에는 투명한 오브제, 일종의 작은 ‘기념비’들이 숨겨져 있었다. 방문자들은 마치 지뢰밭을 조심하여 걸어가듯 땅을 밟으며, 손전등을 비춰 숨겨진 기념비들을 찾아내야 했다.

이 오브제들은 발견돼야만 보존되어 기념비가 될 수 있다. 땅 속에서 뽑힌 오브제들은 찾아낸 사람과 함께 고유번호가 기록되고, 참여했던 사람들은 이후에 300명에 대한 기록들을 공유하게 된다.

임민욱 작가는 ‘워터마크 기념비’가 ‘디지털 워터마크’ 기법에서 착안해낸 것이라고 밝혔다. 지폐 위에는 불빛에 비춰 봐야만 모습이 드러나는 초상화가 그려진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워터마크다. 워터마크에는 저작권 정보와 같은 비밀정보를 삽입하여 관리한다. 그러나 철원 수도국지 내에 숨겨진 워터마크는 아직 어떠한 정보도 심을 수 없다. 사라진 300명의 정보와 기록이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오브제들은 기억을 요청하는, 현재로선 기념이 불가능한 기념비들이다.

그러나 이 300개의 워터마크를 관람객들이 조심스럽게 찾아내는 과정은 역사 속에서 잊혀진 이들을 기념하는 ‘애도’와 ‘추모’의 현장이었다. 씨네 라디오에서 들었던 ‘복청게’의 염불 소리가 내 발자욱마다 따라오는 듯 했다.

역사적 트라우마의 치유, 사라진 정체성의 대면과 화해는 이렇듯 문화적 상상력을 통해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임민욱을 통한 ‘애도’의 공간은, 오랜 기간 닫혔던 기억, 그래서 망각된 사람들을 다시 불러내는 현장이어서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숙연하고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역사적 트라우마와 대면하는 것은 내 안의 상처의 뿌리를 추적해내는 나의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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