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8월 1일 0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노는 방학?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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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8 | “노는 방학? 아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평양시내 어린이들이 용악산에서 식물관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름방학을 맞아 평양시내 어린이들이 용악산에서 식물관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모님과 함께 더위를 피해 몸과 마음을 산천경개에 맡기며 육신과 영혼의 힐링을 즐기는 아이들, 이름난 명승지를 방문하거나 해외로 여행을 떠나 색다른 배움을 갖는 아이들,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외롭고 불우한 이웃들에게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아이들 등등. 몇 년간 대한민국에 있으며 지켜본 방학의 단편들이다. 학기 동안 학교 수업과 학원 순회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아이들이 그나마 숨고르기를 하며 잠시나마 ‘만세’를 외칠 수 있는 시간인 듯하다.

 그럼 북쪽 땅 너머 우리 친구들은 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북한에서는 방학식 대신 ‘총회’를 통해 방학을 알린다. 방학 계획을 논하는 과정은 비슷하지만, 공부, 여행 등의 계획이 아니다. 방학동안 어떠한 공부를 하며 사회에 기여할 것인지,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등을 이야기한다. 그제서야 본격적인 방학이 시작된다.

여행은 꿈도 못 꿔 … 선전활동은 반드시

 한국 사정도 마찬가지겠지만 북한에서는 학교별 정확한 방학 일수가 정해져 있지 않다. 학교에 내려오는 교육강령, 조치, 과정안 등에는 방학 기일이 명시돼 있지 않다. 즉 학년도별 총 일수와 학기별 수업일수, 시험일수, 노동일수 등을 다 실시하고 나서야 남는 기간이 바로 방학이다. 보통 수업일수가 적고 노동일수가 없는 소학교의 여름방학은 7월 하순부터 8월 말까지 대략 35~40일 정도이고, 겨울방학은 12월 20일 경부터 다음해 2월 중순까지로 대략 50일 정도 된다. 한편 과목수가 많고 수업일수에 노동일수까지 있는 중학교들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여름방학은 과정안대로 할 경우 8월 10일 경부터 말까지로 대략 20일 가량 되고, 겨울방학은 대체로 한 달 정도로 학기 과정 안에 있는 수업을 빨리 진행하거나 대충 한 학교들은 보통 12월 20일이면 방학이 시작된다.

 이때 대충이란 일부 수업들을 시행한 것처럼 꾸며 방학을 앞당기는 일들이다. 여학생실습이나 남학생실습 과목, 최근 지역별 특성에 맞게 승인된 수업들, 간혹 사회주의 도덕, 음악, 체육, 수영수업 등의 과목에 이르기까지 해당 교사와 교무지도원이 얼렁뚱땅 시간표와 진도표, 출석표 등에 집행했다고 허위 기록을 하기도 한다. 이유인즉슨 북한에는 학생에게 주어진 노동일수라는 것이 있는데 이 기간을 초과하여 동원할 수 없다. 그런데 이미 농촌동원과 이래저래 사회적 동원이 시행되면 노동일수를 훌쩍 넘기게 된다. 또한 리·군 단위로 할당된 과제, 가령 장마철 수영장, 도로 복구, 가을철 지역 군사 방어시설 보수 등이 생긴다면 수업은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교사들이나 5~6학년 학생들이 동원되는 것으로 대체로 2~3일간 수업을 중단하고 시행한다.

 북한의 방학은 한국에 비하면 조금 짧은 시간일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 아이들은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낼까? 우선 방학일지라도 매주 학교에 나가야 하는데, 중학교는 더욱 그렇다. 수업만 없을 뿐이지, 매주 방학 중 과제를 검사하고 이탈자가 없는지를 점검한다. 비사회주의, 날라리풍, 패싸움을 근절하기 위해서다. 청년동맹인 4학년 이상의 학생들은 매주 생활총화를 해야 한다. 북한의 방학에서도 사회주의 특징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여행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방학동안 부모들을 따라 여행을 간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간혹 일부 아이들이 부모님의 출장길을 따라 친척이 있는 평양 등으로 가곤 하는데 기껏해야 학급당 1~3명 정도이다. 이것도 담임선생님, 청년동맹 비서, 학교장의 승인까지 받아야 가능하다. 여행을 다녀오면 선생님께 일정 부분 인사치레를 하는 것도 어느새 관례가 되었다.

 한국 학생들이 방학숙제를 하는 동안 북한 학생들에게는 경제활동 과제가 주어진다. 겨울방학의 경우 인분, 파동, 파철, 파늄, 파지, 파비닐 등 온갖 과제를 받는다. 여름방학에는 산나물이나 열매 같은 것을 가져오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방학 기간 꼭 해야 할 일이 바로 선전활동이다. 아무리 방학이라 해도 사회·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으면 시행해야 한다. 즉 방학 동안 선거나 김정일의 새로운 노작, 문헌이 발표된다면 전국적으로 대회를 실시하고, 핵 및 미사일 실험에 성공했다면 사회적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학생들이 가창대를 한다. 고학년의 경우 군중대회에도 참가해야 한다.

 한편 북한의 교사들에겐 연수가 없다. 교사들은 방학 동안 4~5일간 교재강습이나 분단·초급단체 지도원 회의에 참가한다. 그 외에는 며칠씩 휴가를 받고 식량을 구하러 가거나, 집에서 별도의 돈을 받고 과외 지도를 하는 교사도 종종 있다.

 북한의 경제사정은 오랫동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자연스레 부모를 돕기 위해 경제활동이나 가사 일 등을 한다. 간단하게는 방학기간에 부모를 따라 장삿길에 나서는 아이들도 있고, 경제활동을 위해 먼 곳으로 길을 떠난 부모를 대신해 집안과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아이들도 있으며, 산나물을 캐거나 산열매를 따서 직접 팔아야 하는 아이들, 장작감을 마련하기 위해 몇 십리 밖으로 나가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러한 방학을 보내는 가운데 방학은 학기 중보다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놀기만 하면 밥벌레와 다를 바 없어

 그래도 방학인데 집단 활동에서부터 경제활동 과제까지, 왜 이렇게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걸까? 바로 김정일의 ‘놀라는 방학이 아니다.’라는 전언 때문이다. 쉽게 말해 방학동안 아이들이 무작정 놀기만 하면 밥벌레랑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인간이고, 사회적 존재이기에 조직의 분공을 수행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단련해야 한다는 논리다. 북한 사람들은 좋게 말하면 조직적 면모, 나쁘게 말하자면 수동적인 모습이 어려서부터 이렇게 통제받는 과정들을 통해 익숙해져 있다.

 필자도 어릴 적 학교의 승인을 받지 않고 엄마를 따라 친척집에 놀러갔다가 단단히 혼난 적이 있다. 이후 방학 기간 매주 생활총화를 하는 것 외에도 방학이 끝나서도 선생님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받고, 자아비판을 하고, 친구들의 상호비판을 받으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남과 북의 방학 모습은 너무도 다른듯하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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