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8월 1일 0

발언대 | 정전 60주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NLL 2013년 8월호

발언대 | 정전 60주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NLL

서해 연평도 인근 NLL해상으로 긴급출동하고 있는 해군 고속정과 RIB(고속단정)  Ⓒ연합뉴스

서해 연평도 인근 NLL해상으로 긴급출동하고 있는 해군 고속정과 RIB(고속단정)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서 NLL(북방한계선) 포기발언을 했다는 사실의 진위에 대하여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게다가 노 대통령이 제안한 NLL 인근으로 북한과 등거리 등면적의 남북한 평화수역(공동어로구역)은 실질적으로 NLL을 포기했다고 보아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러한 논쟁의 근저에는 NLL을 지켜야 한다는 국민들 대다수의 여론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NLL의 효력은 휴전회담과 동시에 발효되었으며, 북한도 1953년부터 NLL을 인정하였을 뿐더러 북한이 가장 중요시하는 1991년에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NLL을 인정하였다. 즉 합의서 제11조에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라고 명시함으로써 북한당국도 NLL이 한국영해임을 인정한 것이다.

1950년 북한의 남한 침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1951년부터 휴전회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한국전쟁은 멈추었다. 휴전협정 당시 군사분계선을 확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협정당시 쌍방이 대치하고 있는 현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확정하는 것이었다. 즉 쌍방이 각자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지역을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여 상대방으로부터 인정을 받음으로써 현재의 휴전협정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유엔군 사령부가 NLL을 확정하여 북한 측에 통보하였을 때 북한 측은 오히려 이를 반겼고 그 후 수 십년동안 이에 대한 이의제기가 없었다. 그 이유는 한국과 유엔군 측이 점령하고 있었던 서해상의 많은 섬들을 북한 측에 싸우지도 않고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엔군 측은 NLL의 기준을 38선으로 설정하였다. 즉, 38선 이북에서 한국과 유엔군 측이 점령하고 있었던 섬들을 방어하기가 곤란하다는 이유로 북한 측에게 넘겨준 것이다.

휴전협정 당시 북한 측은 서해상의 모든 도서들이 한국의 유격부대와 유엔군 측에 점령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도 없이 38선 이북의 도서들을 돌려받은 것에 크게 만족하였다. 실제 휴전 당시 북한군은 서해 해상에서 전투를 치를 해군함정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군이 백령도까지를 NLL로 삼은 것은 북한이 침략하기 전 여기가 38도 이남이었기 때문이었다.

NLL은 한국의 자발적인 유격부대원들과 한국군이 피로써 지켜낸 한국의 영해다. 선조가 지켜낸 이 바다를 어떻게 포기 운운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NLL은 군사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서울이 북한의 장사정포 등의 사정거리에 위치한 불리한 여건이라면, 평양은 NLL과 백령도로부터 150km 이내의 사정거리다. 북한과 그 추종세력들이 한국으로 하여금 왜 NLL을 포기하게 만들려는지 그 이유도 명백하다.

신진 / 충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평화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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