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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 | 인도적 지원, 당리당략 도구로 전략해선 안 돼! 2012년 11월호

IPA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캠페인

인도적 지원, 당리당략 도구로 전략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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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북한주민과 함께 미래를 그리다”는 주제로 이 지면을 통해 총 22회에 걸쳐 국내외 대북 지원 단체와 기구들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원사업의 영역 측면에서는 보건의료, 농업, 축산, 생활환경, 긴급구호, 학술 및 인적 교류 분야 등 다양한 사업의 영역을 다루었다.

아울러 행위 주체의 측면에서는 한국의 NGO와 지방자치단체, 미국과 유럽의 NGO 및 학술기관, WHO와 같은 유엔기구, 그리고 유럽연합과 스위스 개발청과 같은 공여국들의 교류협력 사업들을 살펴보았다. 이제 2회에 걸쳐 그간의 내용들을 다시금 정리하고, 아울러 전체적인 대북지원 또는 교류협력의 간단한 역사와 함께 큰 틀에서 인도적 대북지원이 갖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올해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새로운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와 함께 이제 지난 시기의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새롭게 한 단계 발전된 형태의 남북교류협력사업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향후 남북협력사업이 재개될 때 이른바 ‘대북 퍼주기’ 논란으로 대표되는 대북지원에 대한 소모적인 찬반 논란을 뛰어넘어, 바람직한 남북교류협력의 유형과 방법에 대해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양한 국내외 행위 주체들이 추진해온 대북 인도지원 및 교류협력 사업들에 대한 고찰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대북인도지원 및 교류협력사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단순 물자지원에서 다년도 개발협력으로 발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은 농업 및 경제 정책의 실패, 탈냉전과 동구권의 붕괴, 그리고 반복되는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고난의 행군’ 시기로 대표되는 심각한 기근현상에 직면한다. 이후 북한의 산업구조는 지난 30년간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1995년 심각한 자연 재해로 인해 악화된 북한의 식량 상황은 거의 20여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 정부와 NGO의 대북지원이 시작되었다. 1994년 국내 NGO인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와 월드비전이 북한에 의료기자재를 지원하였고, 이어 1995년 굿네이버스가 북한 신의주 소학교에 빵을, 그리고 종교계 역시 옥수수 500t을 북한에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북 인도지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1995년 9월 이후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북한의 수해발생과 국제사회에 대한 지원호소를 계기로 1995년 9월부터 대북 인도적 지원이 사회적 의제로 설정되어 실제적인 지원운동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1998년까지 비교적 이념논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종교계를 중심으로 대북 인도지원이 추진되었고, 이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및 겨레사랑북측동포돕기운동과 같은 연대기구 성격이 중심이 되어 대북지원 운동이 범국민운동으로서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1999년 2월부터는 그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지원하던 창구단일화 방침이 철회되고, 민간차원 대북지원 창구다원화 조치가 이루어짐에 따라 보다 활발한 대북인도지원이 추진된다. 아울러 1999년 10월부터는 민간의 지원사업에 대해 남북협력기금이 지원되는 등 한층 진일보된 형태의 시스템이 갖추어진다.

이후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2010년 초까지 다소 부침은 있었지만 전반적인 남북관계 개선과 교류협력 활성화 등에 힘입어 질적·양적으로 크게 성장하였다. 사업 초기 단순 물자지원에서 다년도의 개발 협력사업으로 확대 발전하였고, 교류협력 분야 역시 농업, 축산, 보건의료, 교육 및 생활환경 개선, 그리고 긴급구호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었다.

1995년 7월과 8월, 심각한 수해를 겪은 북한은 같은 해 8월 23일 북한의 유엔대표부를 통해 1998년 유엔인도지원조정국(UNOCHA)으로 명칭이 바뀐 당시 유엔인도지원국(UNDHA)에 긴급구호 요청을 하였다. 아울러 세계보건기구(WHO)에는 의료진의 파견을, 그리고 유엔아동기금(UNICEF)에는 5만달러 상당의 콩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에 유엔인도지원국은 ‘유엔재해평가 및 긴급조정팀(UNDAC)’을 북한의 수해 지역에 급파하여 피해 상황에 대한 조사활동을 벌였다. 현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유엔인도지원국은 관련 유엔기구들과 공동으로 국제사회에 대북인도지원을 위한 모금을 호소하였다.

당시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인도지원 활동에 크게 주목하였고, 유엔기구와 각국 정부의 원조기구, 그리고 미국, 일본, 유럽에 소재하고 있던 다양한 국제 NGO들이 대북 지원활동에 동참하게 된다. 2개월 후인 1995년 10월, 세계식량계획(WFP)이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제일 먼저 평양사무소를 개소한 것을 시작으로 많은 기구들이 사무소를 설치하고 지원 사업을 시작하였다.

북한 상주사무소, 효과적 모니터링 가능케 해
이후 유엔기구, 유럽과 미국의 NGO,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국제적십자사연맹(IFRC), 그리고 양자기구인 해외 정부기구를 중심으로 활발한 대북 인도지원 활동이 시작된다. 일부는 북한 내 상주사무소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추진하고, 일부 특히 미국 NGO의 경우 상주사무소를 두지는 않았지만 유엔기구들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지원사업을 추진하였다.

물론 유엔기구들을 비롯해 상주기구들을 두고 있는 기관들의 북한 내 활동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북한 내 상주사무소의 설치를 허용 받은 경우에도 실제 상주 인원의 숫자는 최소한으로 제한되었고, 북한 내의 이동과 통신에 심한 통제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북한 상주사무소의 설치는 효과적인 모니터링 활동을 통해 불필요한 ‘퍼주기’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현재까지도 한국 정부 및 NGO 등은 이러한 모니터링 방식과 기준을 모델로 연구하고 있다.

인도적 지원은 인도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정치적 중립성·형평성·독립성을 기반으로 조건 없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아울러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인권 이전에 인간다운 삶의 영위라는 생존권적 차원에서의 인권의 중요성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간 추진된 남한과 국제사회의 인도적 대북지원과 교류협력이 지금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와 어떠한 성과가 있었는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한과 국제사회가 추진한 다양한 분야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첫째,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상황의 개선을 가져왔다. 특히 어린이, 임산부, 노인 등과 같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이들의 영양상태 개선과 함께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인도지원 초기 북한에 대한 단순 물자지원에서 농업, 보건의료, 교육 및 역량강화 분야에 대한 지원활동을 거쳐 보다 발전된 형태의 개발구호협력의 단계로 도약한 인도 지원활동은 ‘고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종합적인 형태의 개발구호 사업의 면모를 갖추면서 북한의 실질적인 자립 생활 기반과 환경 조성에 일조하였다.

아울러 인도적 차원의 인적·물적 교류는 국제사회는 물론 남북 간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는 산파 역할을 하였다. 특히 남한사회의 대북 인도지원이 활발히 이루어진 지난 2008년까지 남북 간의 인적·물적 교류협력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러한 교류의 확대는 남한과 국제사회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나 북한주민들의 남한에 대한 적대감이 완화되었음은 물론 남측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통일로 가는 길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인내를 갖고 단계별로 북한 변화 이끌어야
그러나 남측의 입장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성과는 남북 간 상호신뢰의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과거 남과 북은 치열했던 전쟁 이후, 서로 다른 체제에서 끝없는 체재경쟁을 벌여왔다. 최근까지도 남북관계는 불신과 갈등, 반목과 대립, 단절과 재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정치적 긴장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전개되었던 대북인도지원, 특히 민간차원의 인도지원은 남과 북의 대화와 신뢰의 ‘끈’이 단절되는 것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신뢰의 회복은 한반도에서의 화해와 협력의 기틀을 다지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남북 간의 정치·군사적 긴장관계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도적 지원이 정치적 논리나 당리당략의 수단이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다시금 국내 대북인도지원이 재개될 때 이러한 원칙을 기반으로 보다 나은 방식의 인도적 대북지원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또한 중장기 개발 계획의 수립을 바탕으로 단기적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내를 갖고 단계별로 북한의 변화를 견인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황재성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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