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11월 1일

인간·전쟁·평화 | 내전을 바라보는 창 ‘자원의 저주’ 2012년 11월호

인간·전쟁·평화

내전을 바라보는 창 ‘자원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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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지역의 다이아몬드 채취 모습 ⓒ연합뉴스

경제학에는 천연자원 개발의 증가와 제조업의 쇠퇴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음을 나타내는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는 용어가 있다. 1959년 네덜란드가 북해 유전을 발견하고 석유수출을 증가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경제호황을 누렸으나, 결국 물가와 통화가치의 동반상승으로 인해 국내 제조업의 기반이 무너지고 장기적으로는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게 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왜 ‘인간·전쟁·평화’에 대한 대화에 경제학 용어인가? 전쟁과 평화를 이해하는 데 어떤 유용성이 있을까?

“이것이 아프리카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에서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가 내전을 더욱 복잡한 상황으로 몰고가는 것을 보고 “이것이 아프리카다.”라고 읊조리는 장면이 있다. 이와 같은 영화 속 현상은 아프리카만이 아니라 세계 주요 자원부유국에서 실제로 발생해왔다.

한 국가 내에서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이 심화될 때 천연자원의 풍부함은 불만세력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키고 반군활동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특히 천연자원 생산량의 확대는 토지전매에 대한 불충분한 보상, 환경파괴, 직장부족, 이주노동자의 증가라는 정치사회적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천연자원의 풍부함은 반군세력들에게 활동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즉 반군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재정을 마련해 줄 수도 있고 무기구입, 반군충원을 위한 재정의 잠재적 원천이 천연자원인 것이다.

천연자원과 내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일부 연구자들은 ‘네덜란드 병’의 개념을 이용하여 천연자원의 개발이 국가의 단순 경제만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체계의 악화를 초래하고 종국에는 내전으로 이어지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분석틀은 ‘석유의 저주’ 혹은 ‘다이아몬드의 저주’라는 말로 대변되었던 나이지리아와 시에라리온 등에서의 내전의 발생과 지속을 설명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자원의 저주’라는 분석틀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하고자 노력해 왔다.

예를 들어, 국가들이 어느 정도 충분한 양의 석유를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에 내전이 발생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내전은 얼마나 오래 걸리는가? 그렇지만 자원의 저주라는 분석틀이 보다 더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석유를 생산하고 있는 국가는 그 국가가 석유를 생산하지 않았다면 내전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고려하지 않으면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1990년대 초반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의 분리독립 운동은 풍부한 지하자원 중의 하나인 석유의 개발 때문에 국가체계가 약화되어 발생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카라바흐 지역 주민의 3/4이 아르메니안으로서의 인종적 정체성을 자기고 있다. 그래서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전부터도 이 지역을 아르메니아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주민들을 선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산악지형과 소련군의 철수는 이 지역에서의 힘의 공백을 야기하여 내전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즉 ‘석유를 생산하지 않았었다면 나고르노 카라바흐 사태를 야기하지 않을 정도의 사회적 능력을 갖춘 새로운 아제르바이잔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예’라는 대답을 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가 1940년대 후반 독립운동을 하고 있을 때 인도네시아의 국가체계는 취약한 구조였다. 이미 인도네시아는 석유생산으로 막대한 부를 얻고 있었지만, 국가체계의 취약성은 장기간 동안의 네덜란드와의 독립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일상적 소비와 편리함 속에 감춰진 삶과 죽음
인도네시아가 풍부한 양의 석유를 생산하는 국가가 아니었다면 네덜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인도네시아에 대한 재지배를 하려고 하지 않았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당시 인도네시아의 국가체계의 취약성은 석유생산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네덜란드 통치기간 동안 관료체계를 발전시켜 할 인센티브가 없었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즉, 석유생산에 의해 내전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국가체계의 취약성과 독립에의 요구가 내전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 천연자원의 풍부함과 내전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자원의 풍부함이 내전의 직접적인 영향인지 혹은 장기적 시간을 두고 나타나는 간접적 관계인지 앞으로 밝혀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인과관계를 조명하는 데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대부분의 연구들은 이러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경제정책의 변화, 정치적 사회적 변화, 정치지도자의 마인드셋의 변화, 천연자원으로 발생하는 이익의 공정한 배분, 천연자원 부문의 사유화, 천연자원의 가격안정화를 위한 국제협력 등을 제시하고 있다. 각각의 과제가 어려운 것이지만 내전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시급하고 중요한 것들임에 틀림없다.

자원의 저주와 내전이라는 이야기는 한반도에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주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삶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하고, 먹고, 마시고, 치장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내전 지역에서 내일이 없는 오늘 하루만을 살아가는 이들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 가끔씩이라도 우리가 소비하는 자원들이 우리에게는 편리함을 주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삶과 죽음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창틀을 바꿔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송영훈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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