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11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몸은 따뜻한데 마음이 춥다 2012년 11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41

몸은 따뜻한데 마음이 춥다

남과 북의 생활수준 차이를 제일 실감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북에서 살 땐 가을 단풍만 보아도 다가오는 겨울이 두려웠다. “올 겨울은 또 어떻게 보내나? 김장은 어떻게 하고, 땔나무와 석탄은 어디서 장만하나?”하는 걱정에 한숨만 나왔었다. 하지만 지금의 남쪽 생활은 지상낙원이 따로 없는 생활이다. 창밖에 아무리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불어도 따뜻한 아파트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아까운 장작을 하나 둘 세어 가며 떨리는 손으로 아궁이에 넣던 지난날은 이제 옛말이 되어 버렸다.

전기는 국가 것, 들키지만 않으면 돼!
중앙난방이 되어있는 방마다 바닥에 온수가 돌아 어디나 따뜻하다. 그런데도 아내는 고급 전기매트를 또 사왔다. 집이 춥지 않은데도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잔등을 따뜻하게 지져대고 싶은 생각에 샀다고 한다. 그러는 아내에게 나는 ‘옛날 생각을 벌써 다 잊은 게 아닌가’ 하고 가볍게 나무랐다. 왕복 40km도 넘는 먼 곳에 걸어가 손수레에 나무를 해오다 지쳐 쓰러지던 일, 몰래 잘 사는 집 울타리를 넘어가 연탄을 훔치던 일이 어제 일 같은데 말이다. 강추위나 무더위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할 때마다 나라에서 전기낭비를 없애기 위해 국민들의 협조를 호소하는데 우리도 따라주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전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는 탈북자들이 잘 알고 있다. 북에서 살 때 전기 때문에 겪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전압이 낮아 집집마다 가정용 변압기를 놓고 써야 했고, 마치 경쟁이나 하듯 서로 더 용량이 큰 변압기를 구입했다. 변압기는 용량이 클수록 값이 비싸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얼마나 좋은 변압기를 쓰는 가에 따라 그 집의 경제력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변압기를 놓을 형편이 못되는 집은 전구에 뻘건 실 줄만 보이는 정도에서 살았다. 차라리 촛불이 더 밝았다.

사용하지 못하게 된 전기히터나 전기밥솥을 몰래 쓰는 사람이 많아 수시로 ‘전기검열대’가 도둑고양이처럼 동네를 돌아다녔다. 땔나무나 석탄은 많은 돈이 들지만 전기는 국가 것이므로 들키지만 않으면 몰래 쓴 것만큼 이득이었다. 집집에 측정계기를 달아놓기도 했지만 주변에 있는 공장의 전기를 훔쳐 썼다. 때로는 측정계기 바늘이 돌아가지 못하게 눈금판 유리위에 강한 자석을 붙여놓기도 하는데 그러다 발각되면 경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생활에서 전기는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이 됐다. 가정용 변압기도 필요 없다. 전기밥솥, 히터,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텔레비전, 냉풍기, 온풍기, 공기청정기 등 별의별 가전제품들을 다 갖추고 살자니 우리 가족이 쓰는 전기만 해도 많은 양이다. 그래도 전기요금은 수입에 비해 얼마 되지 않는다. 요즘 강추위가 몰려와 전기를 많이 썼는데도 이달 요금이 6만5천원 밖에 안 나왔다. 나와 아내가 벌어들이는 한 달 수입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에 불과하다.

사실 전기보다 가스를 쓰면 돈은 훨씬 적게 들지만 전기를 쓰는 것이 편리한 점이 많다. 그래서 전자레인지를 자주 쓴다. 요리를 할 때 가스를 쓰는데, 한 달 가스요금은 4천원 안팎이다. 북에선 ‘사람이 이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아궁이가 이밥을 먹는다’는 말이 돌 정도로 땔감이 비싼데 고급연료인 가스 값이 이렇게 싸다니…

‘고급연료인 가스 값이 이렇게 싸다니…”
남쪽에서 겨울을 겪어 보니 밖에서 추위 속에 보내는 시간이 별로 없다.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직장에 나가도 난방이 잘 되어 있다. 건설장만 제외하면 학교, 병원, 극장, 도서관 등 어디나 가스와 전기로 난방이 잘 돼 있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

또 길에 나서도 교통이 발달하여 조금만 걸으면 지하철이나 버스가 있어 오래 기다리는 일도 없고 차내 난방이 잘 되어 있다. 자가용 승용차에도 냉온풍 장치가 되어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집에 가보아도 사철 더운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처음엔 실감 나지 않았다.

남쪽 날씨가 북에 비하면 훨씬 따뜻한 편이지만 쉽게 감기에 걸리는 것도 이런 환경 때문인 것 같다. 북방의 눈바람 속에서도 좀처럼 걸리지 않던 감기인데 지금은 조금만 날씨가 차가워져도 걸리고 주사까지 맞는다. 좋은 생활환경이 몸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고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진 것 같다.

남쪽에 와선 김장 걱정도 하지 않는다. 굳이 김장을 담그지 않아도 사먹으면 된다. 북한보다 겨울도 짧아 김장을 많이 할 필요도 없다. 북한이야 워낙 부식물이 부족하다보니 김장만 못하면 긴 겨울 동안 손가락만 빨아야 하지만 여기는 다르다.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를 사먹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선 김치가 쌀과 맞잡이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김장이 반(半)식량’이라는 말을 한다. 김장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가을이면 ‘남새(채소) 전투’가 치열하다.

남한에 살고 보니 자연에는 겨울이 있어도 생활에는 겨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남쪽 하늘 아래 누리는 이 행복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다. 하지만 한편으론 얼어붙은 저 북녘 땅에도 언제면 햇솜 마냥 따스한 축복의 눈이 내리게 될 지 너무나 안타깝다.

도명학 /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