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신뢰에 기초한 건강한 남북관계 만들어야 2012년 11월호
<편집자주>
오는 12월 19일 실시될 제 18대 대통령 선거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은 경제민주화와 지속가능한 복지 등 대내적으로 많은 난제를 앞두고 치러지며 국민들의 관심도 이러한 문제들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간의 세력전이가 일어나고 있는 동아시아 안보환경과 풀리지 않고 있는 북한문제 등을 감안하면 통일외교안보 정책도 대내정책 이상으로 중요하다. 특히 한반도 통일의 결정적 변수가 될 북한의 정세를 포함한 미 일 중 러 등 주변국의 권력교체가 이루어 지고있는데다 최근 역내 국가들 간 영토갈등마저 격화되고 있어 동북아 안보환경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통일을 촉진할 수 있는 통일외교안보 정책의 중요서ㅇ은 그 어느때보다 커지고있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제 18대 대선 후보 3인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을 살펴보았다.
특집 | 박근혜 후보
신뢰에 기초한 건강한 남북관계 만들어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지난 7월 18일 강원도 철원군 생창리 백골OP에서 DMZ 생태평화공원 조성사업과 관련한 브리핑을 받은 후 윤완선 사단장(왼쪽)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북정책은 어느 지도자든 최우선적인 국정과제로 삼아야 할 만큼 중대한 과제이다.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을 넘어서 냉전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적대적인 긴장국면에 처해 있다는 것은 새삼 지적할 필요조차 없다. 차기 정권이 분단의 평화적 관리와 남북관계 개선에 우선적인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정직하고 기본에 충실한 대북정책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권력을 이어받은 김정은 제1위원장 하의 북한이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 불확실하다. 금년 4월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통해 개정된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 북한이 핵무장화 노력을 지속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동북아 정세 또한 미·중 간의 패권경쟁 가속화, 일·중, 한·일 간의 역사 및 영토갈등으로 어수선하고 긴장이 역력해지고 있다. 북·중 관계는 경협을 매개로 더욱 밀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으로는 이와 같은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패러다임이 바뀔 필요가 있다. 발상의 전환도 요구된다. 위기적 상황을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자세 또한 요청된다. 그러나 그러한 전환이 참신하고, 파격적인 덕목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기본에 충실하고, 정직하게 나가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강력한 덕목이 아닐까싶다.
박근혜 후보 대북정책의 키워드는 ‘신뢰’이다. 어찌 보면 너무 진부한 말 같기도 하고, 상투적인 개념 같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남북관계는 바로 이 당연한 표현이 의미하는 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남북 간에 대화도 있었고, 교류도 있었으며, 협력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오래 가지 못했고, 적대적인 긴장 상태가 반복되었던 것이 남북관계의 역사이다.
남북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경험했고,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분쟁을 벌인 기억이 있다. 물론 이 모든 충돌의 원인은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에 있다. 이것이 동서독과 한반도의 큰 차이점이다. 신뢰가 쌓이기 매우 어려운 원초적인 조건에 처해 있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에서 대화가 시작됐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는 정상회담을 비롯해서 폭넓은 교류·협력과 대북 지원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신뢰가 쌓였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남북 간에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쌓아나가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박 후보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표방하는 이유이다. 신뢰프로세스는 남북이 서로 합의했던 약속의 이행부터 시작해서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과거 남북 사이에는 ‘7·4공동성명’에서부터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 등 많은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합의가 이뤄지는 그 때 잠깐 역사적인 성과물로만 남아있을 뿐 남북 사이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근거로 기능하지 못했다.
과거 합의 기본정신 존중 … 현실 맞게 이행해야
합의와 약속을 지키는 것은 개인 간의 관계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남북관계는 일반적인 국가 간의 관계와는 달리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한 관계’이다. 그러나 신뢰가 부재한 지금의 상태에서는 공동으로 이뤄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신뢰 쌓기의 첫 걸음이다. 과거 정부가 북한과 합의한 내용도 그 기본정신을 존중하여 최대한 준수하자는 것이 박 후보의 생각이다. 다만 구체적인 합의 내용의 경우에는 그것을 이행하는 데 따르는 국내적인 문제를 고려해서 현실에 맞게 이행해야 한다.
한국의 국내정치와 이른바 ‘남남갈등’이라는 현실은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을 제약하는 요인이 돼 왔다. 그 근저에는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이 부정되고, 왜곡되었던 것도 원인으로 작용해왔다. 이제는 그러한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전임 정부도 대한민국 정부이다. 전임 정부가 행한 대북정책의 기조와 방향을 계승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이 일관성과 계속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계승은 발전적인 계승이어야 하며, 문제가 있는 세부적인 모든 정책을 다 계승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정책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 사이에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북한도 비핵화에 관한 노력에 착수하고, 우리는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이 동시행동의 원칙에 입각해서 주고받는 식으로 이뤄질 필요는 없다. 즉 상호주의식으로 접근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상호주의는 아무리 느슨하고 유연하게 적용한다고 해도 이를 둘러싸고 남북 간에 끊임없는 논란만 부추길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핵문제 등 우리에 대한 안보적 위협을 계속해서 가하는 데 이를 도외시하고 인도주의 명분하에 무조건적 지원을 제공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북한도 국제사회와 함께 북핵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리는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과 생존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리를 다 하자는 것이다. 이 국면은 서로 간의 신뢰를 모색하는 단계로서 굳이 상호주의를 적용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화와 교류·협력은 신뢰를 확인하면서, 신뢰를 쌓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남북 사이에 신뢰가 어느 정도 쌓였다고 판단되면 대규모의 다양한 경제지원 프로젝트가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이미 남북 사이에서 제기됐던 많은 사업 구상들이 포함될 수 있다.
북한이 스스로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노력을 지원하고 협력하는 사업 구상도 포함된다. 북한판 ‘마샬 플랜’으로도 불릴 수 있을 정도의 이와 같은 구상이 실현된다면 그 자체로서 한반도의 평화는 상당한 수준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 복합적으로 접근
그러나 박 후보의 대북정책은 이런 과정을 조급하게 추진하자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토대해서 협력이 가능하고 필요한 분야와 이슈를 통해 남북 간의 신뢰를 점진적으로 쌓아나가자는 것이다. 국민들에게도 뭔가 획기적이고 거창한 남북 간의 사업을 제시하여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는 것보다 한 걸음씩 관계개선을 하되,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식으로는 대북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이 박 후보의 신념이다. 점진적이지만, 확실하게 남북관계 개선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남북 간의 신뢰형성 과정은 대화, 교류,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남북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남북 사이의 협력은 국제사회와의 협력과 연계되어야 효과를 극대화시킬 뿐만 아니라, 한반도 문제 해결이 동북아 국가들 간의 갈등과 분쟁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실제로 과거부터 진행되고 있는 두만강개발계획이나,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지투개발계획, 러시아 푸틴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동시베리아개발계획 등은 남북한이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이런 사업 외에도 동북아 국가들이 공동으로 대처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다뤄나갈 수 있는 기후변화, 에너지, 환경, 쓰나미, 핵안전 등의 이슈도 남북한이 공동으로 참여함으로써 한반도가 동북아 공동이익 증진에 앞장설 수 있도록 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박 후보는 한반도 문제가 동북아 문제와 함께 복합적으로 접근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최근 불거진 동북아에서의 역사 및 영토갈등의 파고 속에서 반드시 견지해야 할 부분이 되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신뢰형성과 이를 통한 분단의 평화적 관리, 그리고 동북아 국가들과의 협력 제고가 이뤄지면 그 자체로서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될 것이다.
남북관계가 처한 불확실성과 적대성, 격랑에 처한 동북아 정세 등을 감안할 때 우리가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는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루지도 못할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여 국민과 국제사회에 선전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북정책이 왜곡되는 계기가 될 뿐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상황이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의 역량과 위상이 과거와는 다르게 신장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반도에서의 신뢰와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가능할 뿐 아니라,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의지와 노력, 신념을 십분 발휘하게 하는 것은 유능하고 안정감 있는 리더십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후보는 그러한 리더십에 부합하는 정치인이다.
류길재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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