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북한주민 우선 대북정책 수단은? 2011년 2월호
특집 | 북한 근본적 변화 유도…어떻게?
북한주민 우선 대북정책 수단은?
최용환 / 경기개발연구원 통일동북안연구센터 연구위원
최근 통일부는 2011년 업무보고에서 3대 정책 추진 목표로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유도, ▲바른 남북관계 정립, ▲통일에 대비한 준비 등을 제시하였다.
이와 더불어 정책 추진전략으로 △원칙 있는 대북정책 일관성 지속 견지, △주민 우선 접근, △상호주의 강화, △국론결집 노력 확대 등을 제안하였다.
변화 계기는 외부정보 유입
이러한 통일부의 정책을 둘러싸고 북한 당국과 주민을 분리 대응하려는 접근법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북한이 변화하여야 하고,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주장해 온 것이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통일부의 업무보고 내용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주민 우선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것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이 전략적으로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통일부의 정책은 북한이라는 상대방과의 상호작용 속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통일부가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 유도’라는 목표를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게 우선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을 외부에 밝히면, 북한이라는 상대방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까?
아마 북한 당국은 이러한 남한의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비책을 세우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불필요하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주)인디에프의 북한 직원들이 분주히 의류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y>게 우리의 의도를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상대방의 대비태세를 공고하게 만들고, 그 결과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유도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닌가?
통일부 업무보고 내용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는 두 번째 이유는 정책의 방향과 내용이 다소 불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 ‘바른 남북관계’ 등과 같은 가치판단이 내재된 표현이 그것이다.
또한 ‘주민 우선 접근’의 대상이 되는 ‘주민’이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 물론 그간의 정황을 살펴보면 짐작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국가의 정책에 사용되는 표현으로서는 모호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정책과 공작 구분되어야
그렇다면 이러한 통일부의 정책은 완전히 잘못된 것인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이 전략적 실수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으나, 북한이라는 일탈적 체제를 고려할 때 방향 자체가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과거 정부의 햇볕정책이라는 것 역시 북한의 변화를 기대한 정책이었다. 포용정책과 현 정부의 정책에 차이가 있다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방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방법은 있는가?
이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몇 가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바람직한 변화’란 무엇을 말하는가?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는 보다 다원주의적이고 경제적으로는 보다 시장친화적이며 사회적으로는 보다 대외개방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를 의미할 것이다.
둘째, 북한 당국은 아마도 이러한 변화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극복하고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아마 매우 논쟁적일 것이다.
하지만 변화의 관점에서 북한 체제를 살펴본다면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외부 정보의 유입이라는 측면을 생각할 수 있다. 경제난 이전 북한 주민들은 통행증 없이 여행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배급제의 붕괴로 인하여 식량을 구하기 위한 사람들의 이동이 허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이제 합법·비합법적으로 운용되는 ‘장마당’을 통해 외부 정보가 유통되고 있다. 특히 북한의 물자시장은 중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외부 정보의 중요한 유입 통로는 북·중교역이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셋째, 주민 우선 접근의 대상이 되는 ‘주민’은 과연 누구인가? 이러한 논의는 대북 인도적 지원 물자(특히 쌀 등 곡물)가 북한 군인들에게 우선 배분되는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등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국과 주민 분리라는 주장이 나온 듯하다.
하지만 북한의 변화가 아래로부터의 충격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과거 사회주의권 붕괴의 경험을 살펴보면, 정부 내 개혁파가 입지를 얻어 나름의 개혁정책을 추진하다가 변화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변화는 아래에서부터 시작되기보다는 위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물론 북한이 반드시 이러한 경로를 따를지는 알 수 없지만, 당국과 주민의 분리라는 원칙을 맹신하기보다는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정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인위적인 노력을 통하여 특정 사회(혹은 체제)를 변화시키겠다는 것은 대단히 공격적인 행위로서 국가 간의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방안이다.
따라서 정책과 공작을 구분할 필요성이 있다. 정책은 윤리, 명분, 논리의 영역에 존재하며, 공작은 결과, 효과, 성과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대외적으로 발표되고 공식적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윤리와 명분, 그리고 논리에 기초하여야 하며 국가는 이러한 정책에 일차적 초점을 맞추되, ‘공작’은 정책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배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북한에서 유통되는 외부정보의 주요한 유입 경로가 중국이며, 북한 체제의 변화를 일차적으로 추동하는 세력은 결국 중간 간부들 중에서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대상으로 노골적인 ‘공작’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자주 방문하는 중국의 동북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이 한국이라는 사회가 ‘살만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면 어떨까? 이것은 한국에 들어와 있는 조선족들에 대한 우리의 정책과 연관된 문제이다.
혹은 중국의 동북 지역에 한국의 대기업이 들어가서 수만명의 중국인을 고용하고, 번듯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면 이러한 소식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지는 않을까? 한국 사회의 포용력이 매우 높아서 주변국 국민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이러한 소식이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어떨까?
전단지를 날리고, 라디오를 송출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으나 한국 사회가 보다 선진적이고 포용적이라는 사실 자체보다 강력한 방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한국 사회의 선진화 과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과연 북한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북한이탈주민들을 이등국민 취급하지는 않았는가? 고작 2만명을 제대로 포용하지 못하면서 2천만 북한 주민과의 통일이 가능하겠는가?
한국사회 포용력 전달, 가장 강력한 수단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을 변화시켜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는 더 중요하다. 통일은 과거로 돌아가는 과제라기보다는 미래의 어떤 상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남북이 함께하는 미래의 공통가치를 만드는 것이 통일이라면, 이는 회고적이기보다는 미래지향적이며, 경직되기보다는 융통성 있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한민국이 그리고 미래의 통일 한국이 ‘살만한 나라’라는 확신이 증가할 때 통일의 가능성도 더 높아질 것이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