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4월 1일

포커스 | 아랍시민혁명과 독재자의 딜레마 2011년 4월호

포커스

아랍시민혁명과 독재자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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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3일 리비아 벵가지에서 나토 공습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민주화를 요구하는 아랍시민혁명은 중동지역에 들불처럼 번졌다. 튀니지에서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 아라비아 반도에 속한 바레인과 예멘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까지 민주화 시위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이른바 중동전문가들조차 내다보지 못하던 중동민주화의 소용돌이다. 급기야 지난 3월 14일엔 사우디아라비아가 바레인 왕국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사태까지 불렀다. 리비아는 내전상태다. 나토의 공습이 이뤄지면서 전쟁은 국제전 양상으로 번졌다.

중동의 독재자들은 “죽어야 권좌에서 물러난다.”는 소릴 들어왔지만 이즈음 그야말로 가시방석에 앉아있다. 민주화의 외침은 21세기의 중동 정치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튀니지와 이집트를 비롯한 독재정권들이 잇달아 무너지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독재왕정들도 민주화 조치를 약속하며 국민들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죽어야 권좌에서 물러난다”

중동정치를 이해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인 ‘왕의 딜레마’(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들어주면 요구가 끝이 없고, 억누르면 정치적 긴장이 생겨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움)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우리가 흔히 ‘중동’(Middle East)이라 부르는 지역은 동서로는 아프리카 모로코에서부터 아라비아반도를 거쳐 이란까지, 남북으로는 아프리카 수단에서부터 이집트를 거쳐 터키까지 아우른다. 지역에 속하는 국가는 모두 23개국에 거의 4억 인구를 아우른다.

문제는 이 지역에 독재국가들이 몰려 있다는 점이다. 미국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는 해마다 <세계 자유보고서>를 펴낸다. 이 보고서는 1부터 7까지 등급으로 매겨 1~2.5 사이는 F(Free, 자유국가), 3~5.5는 PF(Partly Free, 부분적 자유국가), 5.5~7은 NF(Not Free, 비자유 국가)다.

2010년판에 따르면, F는 89개국으로 유엔 가입국 192개국 가운데 절반에 못 미친다. NF인 47개국 속엔 중동 독재국가들이 모두 포함된다. 중동지역 지도를 들여다보면 터키, 레바논, 이스라엘이 그나마 민주주의의 규범을 지키는 나라에 속한다.

중동지역 대부분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독재자 1인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무늬만 민주주의’인 독재국가들(시리아, 이집트, 리비아 등)이거나 기껏해야 왕과 권력을 나누는 입헌군주국(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등)들이다.

그런 중동국가 명단(집권자 이름, 지금까지의 통치기간)을 정리해보자면, 올해 시민혁명을 겪은 이집트(호스니 무바라크, 30년)와 튀니지(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21년), 전폭기까지 동원해 학살바람을 일으킨 리비아(무아마르 카다피, 42년), 그리고 예멘(알리 압둘라 살레, 32년), 알제리(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12년), 시리아(바샤르 알 아사드, 11년) 등이다. 시리아는 ‘아랍의 비스마르크’라는 별명을 지닌 하페즈 알 아사드(바샤르의 아버지)가 1963년부터 37년 동안 철권을 휘두른 뒤 죽으면서 아들에게 권좌를 넘겼으니, 2대에 걸쳐 48년 독재를 펼치는 중이다.

리비아, 2011년 지구촌의 첫 전쟁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타르, 오만, 모로코 등 중동 왕국들은 왕이 죽어야 권력자가 바뀐다. 입헌군주국인 쿠웨이트와 요르단을 빼고는 의회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답답한 나라들이다.

수니파인 하마드 알 칼리파 국왕이 12년째 다스리는 바레인은 석유수입 덕에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지닌 다수 시아파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지난 3월 14일 사우디 군병력 1천명과 아랍에미리트(UAE) 경찰 500명이 바레인 시위를 누르려고 파병된 데엔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를 아랍 독재왕정들이 힘을 합쳐 누르겠다는 계산이다. 미(美) 제5함대가 주둔하는 바레인 왕정이 무너진다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다른 왕정국가들도 불안해지고 미국은 물론 한국의 안정적인 석유수급에도 차질이 생겨난다.

이 글을 쓰는 3월말 시점에서 리비아는 불바다나 다름없다. 1969년 군사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뒤 42년 동안 철권을 휘둘러온 무아마르 카다피(1942년생)가 위기를 맞이했다.

친카다피-반카다피 세력이 맞서는 과정에서 죽은 사람은 1천명을 훌쩍 넘어섰다. 여러 전쟁연구자들이 규정하는 전쟁개념이 ‘1년에 1천명 이상의 전사자를 내는 유혈투쟁’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리비아는 2011년에 지구촌에서 벌어진 첫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흔히 전쟁은 국제전과 내전으로 나뉜다. 1990년대 초 옛 소련이 작은 공화국들로 나누어지고 냉전체제가 무너진 뒤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 미국-이라크 전쟁(2003년)을 빼고, 나머지 대부분의 전쟁은 내전양상을 보여 왔다.

리비아의 경우는 국제전과 내전의 성격이 뒤섞인 특이한 경우다. 국내적으로는 친카다피-반카다피 세력이 교전을 벌이고, 국제적으로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3월 17일)에 따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이 리비아의 친카다피 무장세력을 상대로 공습을 벌였다.

카다피에 대한 평가는 2003년 전의 카다피와 그 뒤의 카다피로 나뉜다. 2003년 이전의 카다피는 전세계 반미-반서구 전선의 지도자로서 쿠바의 카스트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을 죽이자, 카다피는 꼬리를 내렸다.

그는 △그동안 그토록 거부해오던 팬암기 추락사고(1988년) 책임을 인정하고 사망승객과 승무원 2백70명의 유가족에게 27억 달러 보상금 지급을 약속했으며, △은밀히 추진해오던 핵무기 개발계획을 포기한다고 선언했고, △미국의 조지 부시가 벌이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력하면서 이슬람 저항세력에 관한 정보를 건네주었다.

악몽의 시나리오?
카다피를 받쳐준 힘은 리비아 석유였다(전세계 석유매장량의 3.3% 보유).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카다피로부터 안정적 석유공급을 약속 받았다.

반미 목소리를 죽이고 고분고분해진 카다피에 대한 보상은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2006년)로 나타났다(미국과 리비아는 1982년 반미 리비아인들의 미국대사관 난입사건 뒤부터 외교관계가 끊어졌고 카다피 관저가 폭격을 당하기도 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른 나토 공습은 독재자 카다피의 폭압에 저항하는 리비아 사람들이 더 이상 죽고 다치는 일이 없도록 이른바 ‘인도주의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의 성격을 지녔다. 그렇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중동 팔레스타인에서는 인권탄압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붙잡혀 감옥에 갇히고 있다.

인도주의는 모든 인류에 보편적으로 적용돼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된다. 미국은 왜 예멘과 바레인의 독재정권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반정부 민주화세력을 위해 적극 개입하지 않을까? 미국으로선 그 나라가 독재인가 민주인가보다는 친미냐 반미냐의 잣대가 더 중요하다.

또한 인도주의적 개입이라 할 때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인가’를 따져 물어볼 필요가 생겨난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카다피 체제 전복에 가장 앞장서는 것은 프랑스의 국가적 문제(리비아 석유수급 불안)와 사르코지의 개인적 속셈(리비아 적극개입으로 지지율을 높여 2012년 재선을 노리려는 전략)이 얽혀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그 나름의 셈법(중동의 높은 반미정서, 미 중동석유 이권보호, 이스라엘 안보 챙기기, 천문학적인 이라크-아프간 전쟁비용 고려)으로 리비아 상황을 재고 있다.

중동지역의 민주화 불길을 보는 지구촌 사람들의 마음은 간단치 않다. 민주화는 누가 뭐래도 환영할만한 변화이지만, 중동의 불길이 석유시장의 불안정으로 이어져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다. 중동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두바이 유가는 1배럴 당 110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의 경우 중동석유의존도가 85% 안팎이다. 민주화도 이루고 유가도 안정될 수 있다면 이상적이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리비아의 카다피 같은 독재정권이 버티면서 사람들만 희생시키고, 그런 혼란 속에 석유 메이저와 국제투기자본이 농간을 부려 유가는 유가대로 치솟는다면? 그것은 악몽의 시나리오다.

김재명 / 성공회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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