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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 스토리 | “군사훈련이요? 기딴 데 갈 시간 있으면 낮잠 자겠소” 2011년 4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2

“군사훈련이요? 기딴 데 갈 시간 있으면 낮잠 자겠소”

 

올해 2월 28일부터 3월 11일까지 서해에서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을 비롯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되자 북한은 전국에 비상령을 내리고 일제히 전투동원 태세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남북평화를 무시하고 한반도에서의 전쟁참화를 몰고 오는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남쪽이 질 것이며 임의의 시각에 서울 불바다도 각오하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이쯤 되면 북한내부는 벌 집 쑤신 듯 살벌해진다. 인민군은 신발도 벗지 못하고 갱도 안에서 총을 끌어안은 채 쪽잠을 자야하며 민방위대 격인 교도대, 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도 모든 경제활동과 학업을 중단하고 해당 전투진지를 차지한다. 당장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한·미연합훈련은 매해 진행되긴 하나 총포탄이 휴전선을 넘나드는 적은 없었다. 지금에 와서 북한 군인들은 명령이니까 복종은 하지만 전쟁에 임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

필자도 인민군에 복무하며 겪어봤지만 사실 평시보다 이 시기가 더 편했다. 입대 첫 해에는 많이 긴장했었는데, 그것도 매해 연중행사처럼 벌어지니 오히려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이때는 고된 훈련이 중단되고 갱도에 들어가 명령대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따금 근무 때문에 밖에 나가는데 그럴 때면 탄창에 총알을 채우고 나간다. 총알이 있는 무기를 메고는 공연히 어깨를 으쓱하던 기억이 난다. 평시에는 근무를 서도 빈탄창만 끼웠으니 말이다.

제대해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45세까지 의무적으로 교도대에 입대하고 생활하는데 이런 비상시국 때 진지에 나오면 훈련은 없이 그냥 자리지킴만 한다.

전투동원태세에 들어가면 더 편하다?

당시 필자가 속한 교도대대의 전투진지는 동해 바닷가였는데, 기슭에 길게 참호를 파놓고 잇닿은 산기슭에 자리한 갱도에 들어가 할 일 없이 빈둥거렸다. 이따금 참호에 나와 무너진 부분의 모래를 퍼 올리기도 했지만 그건 소일 같아 힘들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정부에서 너무 떠드는 바람에 내용을 모르는 여자들은 마치 남편을 다시 못 볼 수도 있는 전장에나 내보내는 것처럼 특별히 먹을 것을 많이 준비해 배낭에 넣어 주었다. 때문에 대원들의 배낭에는 풍성한 먹을거리와 함께 규정상 금지품인 소주도 몇 병씩은 들어 있었다. 군용물통에 물이 아닌 소주를 넣어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숙소격인 갱도에 들어앉자마자 하는 짓이 다름 아닌 카드놀이다. 돈내기는 절대 안 되고 배낭에 감춰둔 소주내기였는데 현역군인들인 군관(장교)들도 같이 앉아 노는 판이다. 처음엔 이긴 사람이 한 잔씩 마셨는데 취할 무렵에는 지는 놈이 마신다.

그렇게 새벽까지 술 마시다가 자곤 했다. 한 겨울에 난방도 없는 찬 갱도에서 견디는 것은 술기운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며칠 지나 술이 떨어지면 그 다음 지는 사람이 민가에 나가 술 구해오기를 한다. 카드놀이 결과는 ‘법’과 같아 무조건 지켰다.

남쪽에서 훈련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허송세월하다가 귀가한다. 남쪽에서 훈련을 좀 더 오래 했으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 맹랑하기에 현재도 그때 같은지 너무 궁금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궁금증을 풀 기회가 왔다. 연평도 포격이 있은 직후에 진행된 한·미연합훈련 때 혜산 국경연선에 나온 조카 녀석과 통화할 기회가 있었다. 이러저러한 집안 안부도 서로 주고받다가 불쑥 물었다.

“지금 나라 안 정세는 어때?”, “무슨 정세요?”, “서해에서 한·미훈련 하는데 이럴 땐 모두 비상소집 아니야? 근데 교도대원인 네가 이렇게 국경에나 드나들어 괜찮냐는 거지.”, “아이구, 삼촌은 무슨 고망년 때 소릴, 지금이 어느 땐데 그런 소릴 하오?”, “그건 무슨 뜻으로 하는 소리야?”, “훈련소집이야 했지만 하라는 대로 참가하는 사람 지금 없소. 다 나처럼 구실대고 제 볼 장 보는 거지 뭐.”

“그럼 안 잡아 가?”, “그게 뭐 한 둘이라야 잡아가지, 참가하는 놈보다 빠지는 놈이 더 많으니 삼촌 있을 때보다 지금 더해요. 군사훈련은 무슨, 참가해봤자 그저 모여 앉으면 신세타령밖에 없시오. 목구멍에 당장 처넣을 게 없어 벌벌 하는데 기딴 데 갈 시간 있으면 낮잠 자겠소. 뭐 있지도 않는 북침타령은 괜히, 삼촌도 알면서”, “야, 이놈아 그래도 나라야 지켜야지 안 그래?”

나는 무슨 말이 나오려나, 일부러 그렇게 물었다.
“삼촌이 남조선 가더니 유머가 늘었네. 북조선은 지금 ‘반역자’인 삼촌이 지키고 있잖소?”, “뭐라? 내가 북조선을 지켜?”, “기러문요. 이렇게 잊지 않고 돈을 보내주니 우리 가족이 먹고 사는 거잖소. 아, 사람이 살아 있어야 나라도 지켜지는 것 아니요?”

“그게 뭐 한 둘이라야 잡아가지”
그 순간 웃음이 났지만 힘도 났다. 예나 지금이나 한 본새로 나가는 북한을 두고 내가 괜히 마음을 졸인 것 같다. 그러나 이젠 우리 때와는 달리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

조카 말마따나 지금이 어느 때라고 대결인가? 이게 북한주민 생각이다. 이제는 지겨울 때도 된 것이다. 사실 조카 말을 들어서라기보다 이제 북한 사람들의 머릿속엔 남조선이란 존재가 적이 아닌 핏줄, 우상으로 점점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통일의 향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변화 없는 고목에는 향기가 없다. 그러나 그 고목 밑에서 새로운 자양분을 받아 돋아 오르는 새싹엔 분명 향기가 있다. 그 신선함과 질긴 생명력이 자라 북한이라는 고목을 푸르게 덮어 버릴 그날을 환희의 마음으로 그려본다.

이지명 / 계간<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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