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4월 1일

특집 | 중동 신세대와 디지털 매체, 아랍혁명 이끌었다 2011년 4월호

<편집자주>

민주주의를 향해 아랍의 시민들이 일어섰다. 시민혁명이 장기독재와 부패한 정권들을 뒤흔들고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정권교체가 이룩되었고 예멘, 시리아, 바레인 등지에서 시민들의 저항이 확산되는 가운데 리비아에서는 내전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리비아의 경우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국제사회가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적 행동에 나서고 있다. 최근 아랍을 휩쓸고 있는 시민혁명이 민주적인 정치체제의 등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저항의 역사는 중장기적으로 민주주의를 향한 중요한 이정표로 새겨질 것이다. 길게 보면 북한도 이러한 변화에서 비켜 서 있을 수는 없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최대 안보현안일 수 있는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를 비롯해 한반도 주변국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얼마나 빨리 그러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가이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북한의 민주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특집 | 북한에 민주주의 씨앗 심자

중동 신세대와 디지털 매체, 아랍혁명 이끌었다

김정명 /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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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온라인 캠페인을 주도하여 1월 25일 이집트에서의 첫 번째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켰던 구글사의 마케팅 임원 와일 고남(30, 가운데)이 지난 2월 8일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의 물결은 중동의 정치구조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1월 14일 튀니지 대통령 벤 알리가 사임하더니 2월 11일에는 이집트 대통령 무바라크가 물러났다. 혁명의 불씨는 3월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 예멘, 바레인, 리비아 등에서도 정치개혁을 둘러싸고 정부 세력과 반정부 세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중동지역에서는 어느 한 나라에서 정변이나 혁명이 발생할 경우 이웃 국가로 전파되는 현상이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그 전파 속도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빨랐고, 역사상 최초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주도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젊은 청년층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변되는 디지털 매체가 있었다.

오늘날 중동 국가들은 30세 이하 연령층이 전체 인구의 약 60%에 달할 만큼 청년층이 인구 분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이집트의 경우 25세 이하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52.3%에 달하며 튀니지는 42.2% 그리고 리비아는 47.4%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높은 실업률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부정부패한 장기 독재정권에 대해 불만이 높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이집트 실업률은 8.4%지만, 25세 미만 실업률은 28%에 달할 정도로 심각하다. 튀니지 또한 전체 실업률은 11%인 반면, 청년 실업은 30%를 육박한다.

중동, 30세 이하가 전체인구 60%에 달해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역사적으로 청년층에 해당하는 인구 집단이 클 경우 사회가 변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은 이 같은 인구 상황이 1990년대에 중동의 많은 젊은이들을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에 가담하도록 만든 요인이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독재정부의 감시가 서슬 퍼런 상황에서 원리주의 단체가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모스크야말로 반정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민주화 혁명을 성공시킨 신세대 청년층들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독재정부와 맞섰다. 그리고 그들이 항쟁의 수단으로 택한 무기는 다름 아닌 인터넷, 블로그, 핸드폰, 트위터, 페이스북 등과 같은 디지털 매체였다.

현재 중동 전체의 평균 인터넷 사용 인구는 28.3%에 달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집트는 21.2% 그리고 튀니지는 34%에 달한다. 한편 이집트의 경우 전체 인구 중 약 76.8%가 핸드폰을 소유하고 있으며 튀니지는 전체 인구 중 약 18%가 페이스북을 사용한다.

튀니지 ‘재스민 혁명’의 도화선은 작년 12월 17일 청과물 노점상을 하던 모하메드 부아지지라는 한 청년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온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자살하면서 촉발되었다.

그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튀니지의 네티즌들은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부아지지의 안타까운 죽음을 알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위키리크스가 벤 알리 정권의 부패와 관련된 소식을 전하자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국경없는기자회’에 의하면 튀니지는 언론자유지수가 조사대상 178개국 가운데 164위를 기록할 정도로 언론의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 정부 당국은 반정부 시위관련 뉴스가 확산되지 않도록 인터넷을 검열하고 차단했으며 관련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젊은 네티즌들은 정부 검열기관에 맞서 사이버 전쟁을 개시했다.

지난 1월 2일 ‘익명(Anonymous)’이라 불리는 온라인 시위 단체는 일명 ‘튀니지 작전(Operation Tunisia)’을 감행하여 정부의 주요 사이트들을 디도스(DDos) 공격으로 마비시키는 데 성공했다.

튀니지 블로거들은 온라인을 통해 정부의 검열을 우회하는 방법 등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온라인 시위 단체 나와트(Nawaat)는 튀니지 내에서 함부로 페이스북에 접속할 경우 검열당국에 의해 추적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보내며 시민들의 안전을 챙기기도 했다.

네티즌과 정부 검열당국 간의 밀고 당기는 숨바꼭질은 결국 네티즌들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반정부 메시지를 담은 웹페이지가 차단되면 두 번째 페이지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차단되면 또 다른 페이지가 만들어지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수적 열세에 직면한 검열 당국은 결국 제 풀에 지쳐 검열 자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 네티즌들의 영웅, 와일 고님

무바라크를 퇴진시키는 데 성공한 이집트의 민주화 과정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영웅으로 떠오른 한 인물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와일 고님이라는 30세의 이집트 청년이다. 그는 원래 아랍에미리트(UAE)에 있는 구글사에서 마케팅 임원으로 일하던 평범한 젊은이였다. 어느 날 그는 인터넷을 통해 한 참혹한 이집트 청년의 죽음 소식을 접했다.

2010년 6월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칼리드 사이드라는 한 청년이 경찰에 구속되었다가, 가혹 행위에 의해 숨을 거뒀다. 경찰은 그가 마약 중독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죽은 그의 얼굴은 완전히 짓이겨져 있었고 치아는 절반가량이 부서져 있었다. 와일 고님은 이집트 경찰에 의해 자행된 잔혹한 고문의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그를 추모하기 위한 페이지를 만들었다.

와일 고님이 만든 페이스북은 삽시간에 이집트의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그와 정보를 교환하는 팔로워는 무려 40만 명에 육박했다. 그의 용기 있는 작은 행동이 이집트 젊은이들을 하나로 결집시킨 구심체가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이웃 국가 튀니지에서 민주화 운동이 성공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와일 고님은 페이스북을 통해 “튀니지도 해냈는데 왜 이집트가 못하겠느냐?”며 독려하기 시작했다.

와일 고님은 이집트 경찰에 연행되어 12일 동안 구금되었다. 그가 경찰에서 풀려난 후 2월 7일 TV와 인터뷰를 가졌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치르고 승리를 목전에 둔 상태였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는 시위에 동참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이것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젊은이들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집트 젊은이 모두의 혁명이 되었고, 결국 이집트 전체의 혁명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디지털 매체가 위력을 발휘한 이유는 젊은 세대들이 TV, 신문, 잡지와 같은 전통적인 언론매체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서는 아직 언론매체들이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국민들은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제도권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같은 언론의 공백 상태를 메워준 것이 바로 디지털 매체였다.

디지털 매체, 중동 정치 지도 얼마나 바꿀까?

디지털 매체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속도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젊은이들은 시위장면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 전송했고 이는 <알자지라>와 같은 위성채널을 통해 중동 전역으로 생중계 되었다. 또한 그들이 인터넷에 올린 정보들은 국경을 초월하여 모든 아랍 젊은이들 사이에서 실시간으로 공유되었다.

또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정보 공유자들 간의 연대를 오프라인으로 끌어내 집단행동을 실천하도록 만드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워싱턴 대학교의 필립 하워드 교수는 “사람들은 타흐리르 광장에 가면 거기에 혼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며, 그것이 용기 있는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힘이 되었다.”라고 언급했다.

많은 사람들은 향후 디지털 매체가 중동의 정치 구조 변화에 얼마나 더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리고 현재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나라는 리비아다. 2월 15일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반정부 시위는 금방이라도 카다피를 권좌에서 이끌어낼 기세였으나 3월 20일 현재 오히려 전세가 역전되었다.

리비아의 상황이 튀니지나 이집트와 다르게 전개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디지털 인프라 환경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리비아는 인터넷 사용률이 5%에 불과하다. 따라서 디지털 매체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힘들다.

이 덕분에 카다피는 쉽게 여론과 지역감정을 조작함으로써 반정부 시위가 하나의 힘으로 결집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었다. 디지털 매체가 중동 민주화의 촉매제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의 물결은 중동의 정치구조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1월 14일 튀니지 대통령 벤 알리가 사임하더니 2월 11일에는 이집트 대통령 무바라크가 물러났다. 혁명의 불씨는 3월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 예멘, 바레인, 리비아 등에서도 정치개혁을 둘러싸고 정부 세력과 반정부 세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중동지역에서는 어느 한 나라에서 정변이나 혁명이 발생할 경우 이웃 국가로 전파되는 현상이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그 전파 속도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빨랐고, 역사상 최초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주도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젊은 청년층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변되는 디지털 매체가 있었다.

오늘날 중동 국가들은 30세 이하 연령층이 전체 인구의 약 60%에 달할 만큼 청년층이 인구 분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이집트의 경우 25세 이하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52.3%에 달하며 튀니지는 42.2% 그리고 리비아는 47.4%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높은 실업률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부정부패한 장기 독재정권에 대해 불만이 높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이집트 실업률은 8.4%지만, 25세 미만 실업률은 28%에 달할 정도로 심각하다. 튀니지 또한 전체 실업률은 11%인 반면, 청년 실업은 30%를 육박한다.

중동, 30세 이하가 전체인구 60%에 달해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역사적으로 청년층에 해당하는 인구 집단이 클 경우 사회가 변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은 이 같은 인구 상황이 1990년대에 중동의 많은 젊은이들을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에 가담하도록 만든 요인이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독재정부의 감시가 서슬 퍼런 상황에서 원리주의 단체가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모스크야말로 반정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민주화 혁명을 성공시킨 신세대 청년층들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독재정부와 맞섰다. 그리고 그들이 항쟁의 수단으로 택한 무기는 다름 아닌 인터넷, 블로그, 핸드폰, 트위터, 페이스북 등과 같은 디지털 매체였다.

현재 중동 전체의 평균 인터넷 사용 인구는 28.3%에 달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집트는 21.2% 그리고 튀니지는 34%에 달한다. 한편 이집트의 경우 전체 인구 중 약 76.8%가 핸드폰을 소유하고 있으며 튀니지는 전체 인구 중 약 18%가 페이스북을 사용한다.

튀니지 ‘재스민 혁명’의 도화선은 작년 12월 17일 청과물 노점상을 하던 모하메드 부아지지라는 한 청년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온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자살하면서 촉발되었다.

그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튀니지의 네티즌들은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부아지지의 안타까운 죽음을 알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위키리크스가 벤 알리 정권의 부패와 관련된 소식을 전하자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국경없는기자회’에 의하면 튀니지는 언론자유지수가 조사대상 178개국 가운데 164위를 기록할 정도로 언론의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 정부 당국은 반정부 시위관련 뉴스가 확산되지 않도록 인터넷을 검열하고 차단했으며 관련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젊은 네티즌들은 정부 검열기관에 맞서 사이버 전쟁을 개시했다.

지난 1월 2일 ‘익명(Anonymous)’이라 불리는 온라인 시위 단체는 일명 ‘튀니지 작전(Operation Tunisia)’을 감행하여 정부의 주요 사이트들을 디도스(DDos) 공격으로 마비시키는 데 성공했다.

튀니지 블로거들은 온라인을 통해 정부의 검열을 우회하는 방법 등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온라인 시위 단체 나와트(Nawaat)는 튀니지 내에서 함부로 페이스북에 접속할 경우 검열당국에 의해 추적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보내며 시민들의 안전을 챙기기도 했다.

네티즌과 정부 검열당국 간의 밀고 당기는 숨바꼭질은 결국 네티즌들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반정부 메시지를 담은 웹페이지가 차단되면 두 번째 페이지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차단되면 또 다른 페이지가 만들어지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수적 열세에 직면한 검열 당국은 결국 제 풀에 지쳐 검열 자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 네티즌들의 영웅, 와일 고님

무바라크를 퇴진시키는 데 성공한 이집트의 민주화 과정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영웅으로 떠오른 한 인물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와일 고님이라는 30세의 이집트 청년이다. 그는 원래 아랍에미리트(UAE)에 있는 구글사에서 마케팅 임원으로 일하던 평범한 젊은이였다. 어느 날 그는 인터넷을 통해 한 참혹한 이집트 청년의 죽음 소식을 접했다.

2010년 6월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칼리드 사이드라는 한 청년이 경찰에 구속되었다가, 가혹 행위에 의해 숨을 거뒀다. 경찰은 그가 마약 중독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죽은 그의 얼굴은 완전히 짓이겨져 있었고 치아는 절반가량이 부서져 있었다. 와일 고님은 이집트 경찰에 의해 자행된 잔혹한 고문의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그를 추모하기 위한 페이지를 만들었다.

와일 고님이 만든 페이스북은 삽시간에 이집트의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그와 정보를 교환하는 팔로워는 무려 40만 명에 육박했다. 그의 용기 있는 작은 행동이 이집트 젊은이들을 하나로 결집시킨 구심체가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이웃 국가 튀니지에서 민주화 운동이 성공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와일 고님은 페이스북을 통해 “튀니지도 해냈는데 왜 이집트가 못하겠느냐?”며 독려하기 시작했다.

와일 고님은 이집트 경찰에 연행되어 12일 동안 구금되었다. 그가 경찰에서 풀려난 후 2월 7일 TV와 인터뷰를 가졌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치르고 승리를 목전에 둔 상태였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는 시위에 동참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이것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젊은이들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집트 젊은이 모두의 혁명이 되었고, 결국 이집트 전체의 혁명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디지털 매체가 위력을 발휘한 이유는 젊은 세대들이 TV, 신문, 잡지와 같은 전통적인 언론매체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서는 아직 언론매체들이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국민들은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제도권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같은 언론의 공백 상태를 메워준 것이 바로 디지털 매체였다.

디지털 매체, 중동 정치 지도 얼마나 바꿀까?

디지털 매체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속도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젊은이들은 시위장면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 전송했고 이는 <알자지라>와 같은 위성채널을 통해 중동 전역으로 생중계 되었다. 또한 그들이 인터넷에 올린 정보들은 국경을 초월하여 모든 아랍 젊은이들 사이에서 실시간으로 공유되었다.

또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정보 공유자들 간의 연대를 오프라인으로 끌어내 집단행동을 실천하도록 만드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워싱턴 대학교의 필립 하워드 교수는 “사람들은 타흐리르 광장에 가면 거기에 혼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며, 그것이 용기 있는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힘이 되었다.”라고 언급했다.

많은 사람들은 향후 디지털 매체가 중동의 정치 구조 변화에 얼마나 더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리고 현재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나라는 리비아다. 2월 15일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반정부 시위는 금방이라도 카다피를 권좌에서 이끌어낼 기세였으나 3월 20일 현재 오히려 전세가 역전되었다.

리비아의 상황이 튀니지나 이집트와 다르게 전개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디지털 인프라 환경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리비아는 인터넷 사용률이 5%에 불과하다. 따라서 디지털 매체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힘들다.

이 덕분에 카다피는 쉽게 여론과 지역감정을 조작함으로써 반정부 시위가 하나의 힘으로 결집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었다. 디지털 매체가 중동 민주화의 촉매제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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