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한반도는 안전한가 | 대재앙 속에서 생존방법 실험하는 일본 사람들 2011년 4월호
일본 대지진, 한반도는 안전한가
대재앙 속에서 생존방법 실험하는 일본 사람들
이찬우 / 도쿄국제대학교 대학원 강사
3월 11일 텔레비전에선 동북지방의 태평양 연안지역 마을로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쳐들어오는 것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수마트라 지진 때 보았던 그 해일보다 더 강력한 쓰나미가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이와테현 미야코시 같은 곳은 1896년에 쓰나미로 2만명 이상이 희생당하고 1933년에도 3천명 이상이 희생당한 경험을 한 바 있어 높이 10m ,길이 2.5km나 되는 쓰나미 방조제를 만든 바 있고, 그래서 1960년 칠레 지진으로 쓰나미가 닥쳤을 때 피해를 입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번의 쓰나미는 방조제 10m 높이를 훌쩍 넘어 온 마을의 집들을 휩쓸어버렸다. 모든 라이프라인(전력, 수도, 가스, 통신)이 끊기면서 피난소로 긴급 대피한 이재민들은 최소 3~4일을 연락두절 속에서 친지의 안부도 확인하지 못한 채 살아야 했다.
마을 공동체, 이념 아닌 실체 각인
센다이시(仙台市)는 동북지방의 중심도시인데, 지진으로 가스와 석유공급이 중단되고 동북대학 건물이 못쓰게 되었으며 철도가 끊기는 등 도시 인프라에 큰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치바 석유화학단지의 폭발화재,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능 누출과 폭발이 있었고 또한 강한 여진이 10여 일 계속되었다.
그사이 도시가스 공급 중단, 철도운행 중단, 비상 정전 등 도시 생활을 마비시키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도쿄시민들도 컵라면, 주먹밥, 비스킷, 식빵, 바나나 같은 비상용 식품과 우유, 분유, 기저귀 같은 유아용품, 그리고 건전지, 휴지 등 일상용품들을 평소의 2~3배로 구입하기 시작했다. 분명 국가적 비상사태요, 국난임에 틀림없었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합계 2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이 재앙의 10일 동안 일본열도의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을 하고 살아왔는지 하루하루가 긴장국면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뚜렷하게 드러나는 특징들이 있다. 첫째로 일본국민들의 재앙에 대한 대응방식이 차분하고 공익우선이라는 점이다. 미야기현 이시마키 적십자병원이 단전, 침수, 단수로 고립된 상황에서도 병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원장과 간호사들이 24시간 체제로 헌신하고 피난 온 이재민들이 서로 돕는 모습은 마을 공동체라는 것이 이념이 아니라 실체라는 점을 각인시켜 주었다.
야마가타시 종합스포츠센터 피난소에 쓰나미와 원전사고를 피해 후쿠시마현 소우마시에서 피난 온 농부 다나카 쇼이치 씨(67)는 집의 1층까지 물이 들어차서 처음엔 아들과 함께 근처 초등학교로 간신히 피신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사고가 터지면서 “어린애를 피폭시킬 수는 없다.”는 아들내외에게 “나는 이미 나이가 많다. 방사능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너희는 빨리 가라.”며 야마가타로 피난시키고 자신은 계속 행방불명자 찾기와 복구작업을 하며 고향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원전사고가 심각해지면서 대피명령이 내려 야마가타로 피난을 왔다고 한다.(<아사히> 야마가타 지방판 2011년 3월 19일자)
피난소 안에서도 단열매트에 모포를 포갠 약 반 평 정도가 한 사람의 공간이고 빈틈없이 놓아져 있어서,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옆에 계신 분 쪽으로 들어가면 안 돼.” 하고 주의를 듣는다. 재해지역 밖의 주민들은 대체로 정부 재해대책 관련기관의 말을 믿는 편이다.
교통편이 마비되고 전력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침착하고 소란을 내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뿐인데요, 뭘. 센다이 사람들은 아주 어렵지 않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묵묵히 기다리는 태도 이외에 다른 행동이란 사재기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는 수준의 물품구입 정도다.
일본정치, 강하고 민주적인 리더십 실험 중
도쿄에 사는 필자 자신이 보아도 감탄스럽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유출 문제가 나날이 그 심각성이 더해가도 전반적으로는 정부의 발표를 믿고 있다. 일말의 염려가 있지만 달리 해야 할 방도가 없다.
사고를 막기 위해 피폭을 각오하고 있는 원전 현장의 작업원에 비하면 원전 30km 밖의 방사능량이 인체에 위험이 없다는 말을 ‘지금은’ 믿어야 한단다. 다만 도쿄에서 유아를 키우는 집은 서쪽에 친척이 있는 경우 친척집으로 피신을 많이 갔다고 한다.
한편 이러한 인내가 오래 지속되면 몸과 정신적으로 커다란 병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고통을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은 내재적으론 커다란 심적 고통을 수반한다.”고 한다. 적절한 분출이 허용되는 공동체성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 일본국민들은 그 공동체성의 진전을 실험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둘째로 정부와 도쿄전력 등의 대응에서 설정된 비상국면을 초월한 사태가 발생한 경우에 이에 대한 매뉴얼이 없어 불안이 증폭된다는 점이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이 리더십이다.
민영화된 전력회사인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연기나 나는 것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데도 수상관저에 1시간 동안 보고를 하지 않았고, 보고한 후에도 별 이상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초기 3km 이내의 피난명령을 요청했다고 한다.
해수를 투입하는 것에 대해선 원자로를 재사용할 수 없다고 버텼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체 능력으로 막을 수 없게 되니 정부의 지시에 맡기고 정부가 지시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극한의 위기상황에서 도쿄전력의 경영진은 무능함을 보였다. 이미 가동 40년이 된 원전의 폐쇄를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제기하였지만 거들떠보지 않고, 원전폭발의 상황에서도 다시 가동시킬 가능성을 우선에 두는 전력회사 경영진의 사고방식은 전력공급 자체를 최대의 공익으로 주장하는 사익추구의 논리에 다름 아니었다.
정부도 도쿄전력의 초동 상황보고를 믿고 미국의 방사능 대책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 초기상황 제압에 실패하고 심각한 원전사고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책임이 있다.
결국 정부-도쿄전력 통합대책본부가 꾸려지고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이 국민 앞에서 일일이 설명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부의 비상대처 리더십이 국민에게 평가받게 되었다. 방만한 국영기업 경영의 효율화를 위해 민영화를 했지만, 막상 원전폭발과 방사능 유출처럼 공익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 어떠한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경영매뉴얼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대재앙 발생 전까지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관료조직으로부터 소외를 받아왔던 민주당 정권이 비상사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현재 일본의 정치는 재난을 맞아 비로소 강하고 민주적인 리더십을 실험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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