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게 들려주는 남북한 이슈 | 한국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2011년 6월호
청소년에게 들려주는 남북한 이슈 2
한국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지난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우리나라 현대사 가운데 가장 처참한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다. 그럼에도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 냉전기간 동안은 소련과 중국의 자료공개가 제한된 상황에서 다양한 가설들이 제기되었다.
북한이 소위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일으킨 남침이라는 전통적 시각과 남북 쌍방의 책임 또는 남침 유도라는 수정주의적 시각이 함께 존재해 왔다. 전자는 소련의 사주에 의한 북한의 남침이라는 것이고, 후자는 미국과 남한이 남침을 유도하였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탈냉전으로 구소련의 외교문서가 공개됨으로써 한국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한반도공산화 의지가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밝혀졌다. 남북한은 1950년 한국전쟁 이전에도 무력을 통해 산발적으로 상대방을 위협하였다.
북진통일론을 주장하는 이승만과 한반도 공산화를 꾀하던 김일성은 군사적인 긴장을 통해 정치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남북한은 공식적으로 전쟁의 원인을 상대방의 침략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김일성이 계획하고 일으킨 남침전쟁
이런 가운데 한국전쟁이 김일성의 의지에 따라 발발한 것이라는 점이 최종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김일성의 끈질긴 요청에 따라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마오쩌둥이 지원을 약속했고, 결국 남침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남한과 미국의 기록, 구소련의 비밀문서 공개를 통해 객관적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냉전기간 중에도 이미 흐루시초프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고백한 것과 일치한다. 이러한 객관적 사실에 따라 한국전쟁 참전국이자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조차 1996년 7월 한국전쟁을 남한의 북침에서 북한의 남침으로 역사교과서를 수정한 바 있다.
최종적으로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이라는 사실은 증명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때 단순히 김일성 한 사람의 야욕뿐만이 아니라 동서냉전의 태동기라는 국제정치적 전환점에서 김일성의 야욕과 국제정세의 흐름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를 들어 아무리 김일성이 남침을 하려고 했어도 남한과 미국이 이를 저지할 수 있는 확고한 의지와 준비를 갖추고 있었더라면 전쟁은 일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은 애치슨라인을 통해 남한을 방위선에서 제외하였고, 전쟁 발발 며칠 전까지도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남침가능성을 낮게 평가하였다. 즉 북한은 소련의 위성국가로서 독자적인 전쟁 수행 능력이 없다고 평가한 것이었다.
국내외 여러 요인이 전쟁 비극 잉태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공개된 한국전쟁 관련 비밀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전쟁개시와 지원을 재가받기 위해 50여 차례나 집요하게 요청한 사실이 밝혀졌다. 스탈린은 미국과의 갈등을 우려하였지만, 결국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정책방향과 의지는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을 것이다. 즉 스탈린의 결정에는 ‘미국이 남한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어느 정도 존재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결국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야욕, 소련의 팽창주의, 한·미관계의 약화 또는 그러한 외부의 평가, 한국의 군사적 대비 미비 등에 의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반도의 지정학적 여건으로 보아 우리가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주변국의 협조는 필요하지만, 통일은 어디까지나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해 주고 있다. 따라서 제2의 한국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적 환경변화와 우리 스스로의 군사적 대비 및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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