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 스토리 | 그가 러닝셔츠를 아랫도리에 걸친 이유? 2011년 6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4
그가 러닝셔츠를 아랫도리에 걸친 이유?
북한에는 어느 마을이나 20~30세대 기준으로 인민반이 조직되어 있다. 인민반에는 반장 외에 위생반장, 세대주반장이 있는데 소속은 동사무소다. 위생반장은 인민반 전반 환경관리를 맡고 세대주 반장은 남자로서 인민반에 소속된 가구의 가장들을 총괄한다. 모두 반장아래 있는 보조 반장들이다.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조직화된 북한체제에서 인민반은 가장 낮은 하부말단 조직이다. 그러기에 반장이라 해도 따로 월급이 나오는 것은 없고 그냥 가두조직으로 동사무소의 지시를 받는다.
주로 가정주부를 대상으로 각종 사회동원을 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평양에서만은 인민반장이 노동자 기준으로 가장 낮은 월급을 받는다. 국가수뇌부의 신변안전을 기하는데 인민반 역할이 상당한 몫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민반 생활의 주요 요소 중에서도 빠뜨릴 수 없는 숙박검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숙박검열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보안서의 계획에 의해 진행하는데, 이건 마치 옛날 암행어사 출두처럼 예고 없이 불시에 진행한다. ‘불순이색분자’들이 미리 꼬리를 사리기 때문이라는데, 결국 이 과정에서 곤욕을 치르는 것은 주민들이다.
자정이 지난 아닌 밤중에 불쑥 나타나는 검열로 인해 숨겨야 할 인간 속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말이다. 남한 같으면 당장에 큰일 날 인권침해라고 고소당할지도 모르지만 북한에서는 정상적인 생활이다.
“숙박검열 왔소”
북한에서는 집을 떠나 외지에 가면 으레 남의 집이나 친척집을 찾아간다. 물론 읍 거리 같은 큰 주민지대엔 여관방이 있다. 그러나 겨울이면 난방이 보장되지 않고 국영기업이라 값이 너무 싸 사람이 많이 몰려도 이익이 없어 별로 운영하지 않는다. 단지 조직적인 지시에 의해서만 방을 치우고 단체손님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 외지에서 밤을 지내자면 부득불 개인 주택에 찾아갈 수밖에 없다. 이럴 땐 아무리 친척이나 형제, 부모집이라도 인민반장을 찾아 숙박부에 등록을 하고 자야 한다. 북한 정부에서 인민반을 통해 이런 질서를 세운 것은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쉽게 추적할 수 있고, 그에 따른 통제를 세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쑥 장사를 가거나 여행증명서 없이 타곳에 간 사람들은 숙박등록을 하지 않고 무단으로 자곤 한다. 여행증명서 없이는 숙박등록을 할 수도 없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잡아내기 위해 다 자는 깊은 밤에 난데없이 숙박검열을 진행하는데, 어떤 범죄 사건이 일어났거나 비상경계령 같은 것이 내리면 이런 숙박검열은 임의의 순간에 매일 진행하기도 한다.
숙박검열은 항상 인민반장을 앞세우고 담당 보안원이 진행한다. 보안원 상호 간 담당지역을 바꿔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밖에서 “숙박검열 왔소.” 하고 소리치면 몇 초 안으로 이내 문을 열어야지, 조금이라도 늦으면 의심하고 심한 수색과 추궁이 따른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서둘러 문을 열게 된다.
들어 와서는 식구들을 하나하나 세어 본다. 대체로 보안원은 남자여서 장난기 많은 녀석들은 번연히 집안 식구라는 걸 알면서도 얼굴 보자고 애먹이며 확인이랍시고 이불을 들춰 본다.
살짝도 아니고 괜히 트집 잡으며 확 벗기기도 하고 나가서는 킥킥거리며 웃는다. 남한 같으면 다음날로 경찰 옷을 벗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그 모든 것이 공무고, 신성한 사회질서 유지확립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어물쩍 덮어버리기에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필자가 북에 있을 때 아내가 인민반장이었는데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새벽 세시쯤 되었을까? 담당 보안원과 함께 숙박검열을 나갔던 아내가 돌아왔다. 자정 무렵 아내를 내보내고 선잠을 자던 나는 얼른 일어나 반겼다. 그런데 들어 올 때부터 비죽비죽 웃으며 신을 벗고 올라오던 아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만 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 그냥 입을 하 벌린 채 웃고 있는 아내만 쳐다보았다. 아내는 실성한 사람처럼 그냥 웃어대며 나를 쳐다보는데 눈가에 눈물까지 가랑가랑했다. 웃음이 웃음을 부른다고 나도 덩달아 허허 웃다가 그만 멋쩍어 눈을 찔끔 흘겼다.
웃을 만도 했다. 갓 신혼생활을 시작한 길 건너 새서방네 집 문을 “숙박검열 왔소.” 하며 보안원과 둘이 열었을 때, 미처 잠을 깨지 못한 새서방이 발가벗고 자다가 황급히 일어나며 옷을 걸친다는 것이 그만 위에 입는 러닝셔츠를 바지처럼 거꾸로 입고 섰단다. 그러니까 그 모양이 어땠을까? 웃음 절반 말 절반 두 손 다 휘저으며 방바닥을 구르며 웃는 아내를 보고 나도 웃음이 터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추운 날 베란다에 숨었다 동상 걸리기도
새색시가 너무 빨리 방문을 열어준 것이 그만 귀중한 남편을 민망하게 하였으니 본인은 얼마나 무안했을까? 남의 남자 무안함을 두고 웃어대는 아내를 보며 나 역시 탓하기 전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자꾸만 그 신랑이 아랫도리에 러닝셔츠를 걸치고 어쩡쩡 서 있는 모습이 떠올라 도무지 참지 못하겠다. 그래서 허파에 바람찬 듯 덩달아 웃다가 윗방에서 자던 애들까지 삐쭉삐쭉 얼굴을 내밀어서야 겨우 웃음을 멈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지만 북한 실정에서는 비일비재로 일어나는 일이다. 정월 소한 날 숙박검열을 피해 속옷 바람으로 베란다에 숨어 있다가, 연한 부위에 동상이 와 고생한 사람들도 많다. 무단 숙박에 걸리면, 군마다 설치된 교양소에 잡혀 들어가 며칠 몇 달씩 고생하기에 될 수만 있으면 걸려들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렇지만 운수가 나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무단숙박 첫날부터 걸려들어 일도 못보고 곤욕만 치르는, 이런 일이 사실은 극심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것을 남한에 와서 살아보고야 알았다.
그저 증명서니 뭐니 하며 제나라 땅도 마음대로 못 가게 하는 북한에도 하루빨리 자유스러운 바람이 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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