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6월 1일

특집|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 인권문제로 통합 접근 필요 2011년 6월호

특집 | 북한 인권 개선, 포괄적으로 접근하자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 인권문제로 통합 접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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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차 마지막 날인 지난해 11월 5일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마치고 버스에 탑승한 남측 가족을 향해 북측 상봉단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한 간에는 해결해야 할 인도적 사안들이 적지 않다. 국군포로, (전시 및 전후) 납북자, 이산가족 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문제들은 전후 납북자(한국전쟁 후 북한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납치테러리즘에 의해 강제로 끌고 간 자들로 2011년 5월 말 현재 517명이 아직 귀환하지 못하고 있다.)를 제외하면 모두 한국전쟁이 낳은 것들이다.

하지만 60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근원적인 해법을 찾지 못해 분단의 비극적인 고통으로 남아 있다.

그 이유는 문제 발생의 원인 제공자는 북한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대부분 부인과 발뺌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은 국군포로·납북자는 한 명도 없고, 조국의 품에 안긴 ‘해방전사’와 ‘의거 입북자’만이 있을 뿐이라고 강변한다.

또 남한은 이산가족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하는데 반해, 북한은 기본적으로 이 문제를 정치·군사 문제와 연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양측의 입장 차가 워낙 커서 접점을 찾기 어려운 게 인도적 사안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정전협정 체결을 전후하여 남북한(혹은 유엔사와 북한군)은 군사정전위원회와 ‘실향사민귀향협조위원회’를 통해 미송환 국군포로문제와 실향사민문제를 거론하고 해결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 때 북한은 총 8,300여 명의 국군포로만 송환했을 뿐 귀향을 원하는 실향민(이산가족과 전시 납북자 포함)은 단 한 명도 보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전체 국군포로는 5만~8만명, 전시 납북자는 9만~1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대응과 처리자세는 시늉만 낸 것에 지나지 않았고 실질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막무가내식 태도는 더 이상의 추가적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후에도 한국은 1960년대 초까지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몇 차례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지만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되지는 못하였다.

이산가족 1세대 전원 상봉에 3백~4백년 소요?

1971년 8월 12일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특별성명 발표를 통해 북한적십자회에 정식으로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북한의 호응으로 남북한은 같은 해 9월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개최하여 인도적 차원에서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 40년 간 남북한은 이산가족문제를 두고 씨름했지만 해결의 실적은 극히 미미하다. 1985년 9월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이 서울-평양을 오고간 적이 한 번 있고,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18차례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상봉의 혜택을 본 1세대 실향민은 이산가족찾기 신청을 한 총 12만8천명 중 2,500명 남짓하다. 지금까지의 해결구도를 계속 유지하면, 생존 1세대 이산가족 8만여 명이 모두 상봉하는데 3백~4백년이 훨씬 넘게 걸린다는 얘기가 된다.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1세대 이산가족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해법을 최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군포로·납북자문제 역시 결코 간단치 않은 사안이다. 그럼에도 지난 10년 동안 우리 측의 요구에 못 이겨 북한은 전시 및 전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의 생사확인에 합의한 바 있다.

예컨대 2006년 2월 23일 제7차 남북적십자회담합의서 제4항에서 “쌍방은 이산가족 문제에 전쟁 시기 및 그 이후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생사 확인 문제를 포함시켜 협의·해결해 나가기로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제18차 남북장관급회담(2006년 4월 21~24일, 평양) 공동보도문과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2007년 2월 27일~3월 2일, 평양) 공동보도문,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2007년 4월 10~13일) 합의서, 제1차 남북총리회담(2007년 11월 14~16일, 서울) 합의서 등에서 재확인된 바 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무성의, 특히 합의서 채택과 이행·실천의 분리전술과 지연전술로 인해 아직까지 구체적인 실천이 따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단지 이산가족 상봉의 틀 안에서 한 두명의 국군포로·납북자를 ‘끼워 넣기’ 식으로 남측 가족과의 재회를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18차에 걸친 이산가족 상봉의 결과, 국군포로 17명과 전후 납북자 16명이 남쪽 가족과 상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단, 전시 납북자의 경우 정확히 집계되지 않고 있다). 물론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지만 국군포로·납북자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실망과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햇볕정책 추진기간 중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거의 매년 쌀 40만~50만t과 비료 30만t을 제공했다. 그러나 우리 측에 돌아온 인도적 성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직까지 전면적인 생사확인이나 서신왕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게 그런 사실을 말해준다.

반면 북한은 엄청난 식량과 지원을 받아가면서도 이산가족문제 등에 대해 시혜를 베푸는 양 고자세로 일관했고 이 문제를 통일전선전술에 활용하려는 태도를 드러냈다.

과거 국군포로 17명 – 전후납북자 16명 상봉

다른 한편 한 번 상봉을 하고 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 많은 다른 사람들이 상봉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상봉 경험이 있는 실향민들은 북쪽 가족을 그리는 마음과 향수병에 정신적 고통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향후 정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이런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상의 점을 고려할 때 종전의 이산가족문제 해법은 고비용-저효율의 해결방식이며 인도적 고통을 해소하는 데는 대단히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문제에 대한 기존의 인도적 접근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권문제이기 때문이다. 기본적 인권 중에서도 모든 사람(특히 실향민)이 누리는 거주이전의 자유와 귀향의 권리, 통신의 자유는 물론 가족 성원이 향유하는 이른바 가족권(family rights), 특히 가족의 생사와 안부를 물을 권리, 서신·전화 등을 통해 계속 연락할 권리, 재회하고 교통할 권리, 성묘할 권리 등을 북한 당국이 정치적 이유로 ‘중대하게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문제인 동시에 인도적 사안이라는 관점에서 국제기구와 남북대화를 적절히 활용하는 노력이 긴요하다고 하겠다.

첫째,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한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기 전까지는 민간 차원의 생사확인, 서신왕래 및 상봉을 지속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다소나마 완화하는 차원에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경비 지원을 해야 한다.

다른 한편 국제무대에서는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문제를 인권문제로 제기해야 한다. 이와 관련, 북한은 1981년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 혹은 국제인권B규약이라고도 한다.)에 가입했는바, 이 규약을 이행할 국제법상의 의무를 진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유엔 총회 결의 채택 시 유관국들과 협조하여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문제가 북한인권문제의 한 범주로서 동 결의에 포함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그 밖에도 유엔인권고등판무관,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 유엔국내실향민인권특별보고관 등과 긴밀히 협조하여 북한의 태도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계인권선언, 자유권규약, 유엔 헌장과 유엔 총회 결의 외에도 유엔인권위원회(현 유엔인권이사회의 전신)가 1998년 4월 채택한 「국내적 실향에 관한 지도원칙」(Guiding Principles on Internal Displacement)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둘째, 남북대화가 열릴 경우 제한적인 상봉보다는 먼저 ‘전면적인 생사 및 주소확인’을 실시토록 해야 한다. 1세대 실향민들로서는 북쪽 가족들의 생사 여부와 사망자의 경우 사망 일자를 아는 것이 절실하다. 제사라도 제 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도적 차원에서 가장 시급하기 때문이다.

생사 및 주소 확인 후 서신왕래를 추진해야 한다. 상봉(화상상봉 포함)은 기존의 틀을 유지하되 그 규모를 대폭 늘려야 한다. 또 가능한 한 동숙(同宿)을 허용함으로써 개인상봉 시간을 확대해야 한다. 이와 관련,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봉보다 전면적 생사·주소확인부터

셋째, 기 상봉자에 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 이들의 경우 서신왕래를 허용하거나 시범적인 고향방문사업 추진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남북 강원도와 남북 경기도 지역의 실향민부터 고향방문을 시작하고, 이를 점차 확대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넷째, 앞으로는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문제를 모두 인권문제의 틀 속에서 함께 다루어야 한다. 즉, ‘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인도적 지원도 인도적 문제인 동시에 식량권·생존권·건강권·의료권·피복권을 개선하기 위한 인권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일정 규모(예컨대 3만t 이하의 옥수수 지원) 이하의 인도적 지원은 아무 조건 없이 추진하되, 그 이상의 인도적 지원은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문제의 해결 수준과 연계하여 실시해야 한다.

제성호 /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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