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으로! | 통영 욕지중학교 승승통일(勝勝統一)을 소망하며 2011년 7월호
현장 속으로! 3
통영 욕지중학교 승승통일(勝勝統一)을 소망하며
승승통일(勝勝統一)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생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승장구(乘勝長驅)’라는 말이 언뜻 떠올라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싸움에서 이긴 기세(氣勢)를 타고 계속 적(敵)을 몰아친다.’는 말이었다. 온당한 표현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고 안타까운 느낌도 들었다.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가 격심할 뿐만 아니라 체제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승리하였다는 점에서는 온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북한의 통일 문제를 어느 한 쪽이 이득을 얻으면 다른 한 쪽이 손실을 보는 제로섬(zero-sum) 게임으로 이해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던 것이다.
남북한의 통일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통일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승승통일’이어야 한다.
청소년들 잘못된 생각은 교육 탓
아시다시피 벨(Daniel Bell)은 ‘이데올로기의 종언(the End of Ideology)’의 시대를 선언하였다. 탈이데올로기 시대를 맞이한 지금의 북한 당국이 체제 유지보다는 오히려 정권 유지에 사활(死活)을 걸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북한에 대한 체제 우위를 내세우는 통일의 전략은 무의미하므로 서로에게 이득이 되고 종국적으로는 한민족 전체의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 통일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이 남북한의 통일이 대한민국에게는 커다란 손실이 될 뿐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어 안타까웠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분명 지금까지의 통일교육이 잘못된 것일 것이다. 그동안 학교에서의 통일교육이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피상적이었다는 점에서 일말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3일부터 4일까지 경남 통영의 남단, 욕지도에서는 통일준비 공론화 교육계사업의 일환으로 1박2일 동안의 특별한 통일 이야기가 진행됐다. 3일 오후에는 탈북인 강사 및 눈높이 강사의 강연이 있었고, 야간에는 탈북자 공연팀의 공연이 있었다. 야간 공연에는 욕지도의 초·중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 및 지역 주민도 자리를 함께 하였다.
낮에 있었던 탈북인 강사 및 눈높이 강사의 강연을 통해 학생들은 북한의 실상과 통일 한국의 비전을 확인하고서는 인식 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를 보였고, 야간에 진행되었던 탈북자 공연팀의 공연을 관람하는 동안 학생들은 정서적으로도 통일을 갈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행사를 마치고 학생들에게 소감을 적도록 지도한 결과, 학생들은 통일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한결 같이 통일을 소망하는 전향(轉向)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금까지 학생들의 생각을 읽지 못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짧은 시간에 변화할 수 있는 가소성(可塑性)이 놀라웠고, 그러한 변화의 원인이 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다시 한 번 놀라웠다.
지금까지의 학교에서의 통일교육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삼스럽게 교육과학기술부의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 창의적 체험학습이 강조되는 이유가 실감났던 것이다.
도서벽지인 관계로 행사 추진과 준비 과정에서 다소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통일교육을 담당하는 사회과 교사로서 뿌듯함을 느낄 수가 있었기에 학교 현장에서 통일교육을 실시함에 있어 통일준비 공론화 교육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탈북자 강연 및 탈북팀 공연을 각급 학교에서 적극 활용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탈북자 강연과 공연 적극 활용해보자
또한, 통일에 대한 청소년의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주체가 학교 현장의 교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고, 통일교육을 담당하는 학교 현장의 교사가 통일문제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통일의 기운이 한반도에 용틀임하기를 소망하며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를 역임했던 페니히 교수(Werner Pfennig)의 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통일비용을 이유로 통일을 지연시킬 것이 아니라 분단비용을 능가하는 평화이익, 통일이익을 만들어 내어야 하고, 통일비용과 평화비용을 감소시켜야 한다. 평화를 돈으로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평화의 대안이 전쟁이고 전쟁의 비용이 돈으로 사는 평화의 비용보다 더 크다면, 돈을 주고서라도 평화를 사는 것이 ‘평화의 기회비용’으로 보아서 효율적인 것이고 도덕적으로도 정당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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