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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게 들려주는 남북한 이슈 | 전쟁에서 휴전까지 전개과정은? 2011년 7월호

청소년에게 들려주는 남북한 이슈 3

전쟁에서 휴전까지 전개과정은?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전쟁이다. 남침을 감행한 북한군은 오전 9시경 개성 방어선을 깨고 당일 오전에는 동두천, 오후에는 포천을 함락시켰다. 26일 오후에 의정부를, 27일 정오에는 이미 서울 도봉구의 창동 방어선을 넘었다.

창동 방어선이 뚫린 국군은 성북구 돈암동에 있는 미아리고개에 방어선을 구축하였으나 적의 전차에 의해 붕괴되었다. 결국 개전 3일 만인 28일에 서울은 함락되고 말았다. 이때 한국정부는 대전에서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피하였고, 이 과정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한강대교를 폭파하였다.

북한의 남침 → 유엔군 참전 → 중공군 참전 → 정전회담

그리고 한국정부는 7월 14일, 한국군의 지휘권을 미군에게 넘겨주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정부는 미국에게 파병을 요청하였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여 이 문제를 논의하였다.

6월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에 대해 한국에서의 즉각 철수를 권고하였고, 회원국들에게 군사공격을 격퇴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을 비롯한 16개 회원국이 유엔군을 조직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그동안 대전까지 내려온 북한군은 공격 진로를 세 방면으로 나누어 호남, 경북 왜관(낙동강), 영천, 포항 등지로 진격하였다. 한국군은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의 지휘 하에 편입, 낙동강을 마지막 방어선으로 삼고 반격을 시도하였다. 유엔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고, 9월 28일 서울을 되찾았다.

이어 후퇴하는 북한군을 공격하면서 38도선을 돌파하여 10월 10일에는 원산을, 10월 19일에는 평양을 점령하였다. 그 기세를 몰아 10월 26일 서북지역은 청천강 북부와 압록강 초산에 이르렀고, 중부지역은 장진호까지, 동부는 압록강의 혜산진까지 진격하였다. 그리고 11월에는 두만강 일대까지 진격하였다.

유엔군과 한국군의 북진이 시작되자 10월 8일 중국은 참전을 결정하고, 19일 압록강을 건너 들어왔다.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유엔군과 한국군은 12월 4일 평양에서 철수하고, 12월 9일부터는 원산에서 퇴각하였다.

12월 14일부터 24일 사이에 동부 전선의 한국군 12만명과 피난민 10만명이 흥남부두에서 해상으로 철수했다. 1951년 1월 4일에는 서울을 다시 내주었고, 1월 7일에는 수원이 함락되었다. 인민군은 계속 남진했다. 유엔군과 한국군은 병력과 장비를 정비하여 반격 태세를 갖추고 원산 등 북측지역에 폭격을 가했다. 그리고 3월 2일 다시 한강을 건너 14일 서울을 되찾았다.

평화협정 미체결 …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이후 전쟁은 38도선 부근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계속되었다. 한국전쟁 중 2년 동안 이렇다 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중국의 개입으로 전선이 고착화되자 미국은 현상유지 차원에서 휴전을 서둘렀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을 반대했지만 미국은 한국을 배제한 채 북한, 중국과의 휴전협상을 개시하였다.

1951년 7월에 정전회담이 개시된 후에도 세계전쟁 사상 최초로 제한전쟁이 계속되었다. 즉 휴전을 협상하면서도 확전이 배제된 상황에서의 전쟁은 2년이나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협정에 반대하면서 수감된 포로 중 반공포로들을 대규모로 석방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전 수락의 전제조건으로 중국군의 철수, 북한의 무장해제, 유엔 감시하 총선거를 요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협상은 계속되어 군사분계선 문제는 1952년 1월 27일에 타결되었으며, 1952년 5월에 이르러선 포로교환 문제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의제에 합의하였다.

그런데 1953년 3월 소련 스탈린의 사망으로 휴전회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스탈린의 사망 이후 소련은 전쟁의 종결을 북한에 요구하였다. 이에 북한이 소련을 통해 유엔군에 정전을 제의하는 방식을 거치고 이를 유엔군 측이 승인, 1953년 7월 27일에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개전 3년 1개월 만에 한국전쟁은 정전으로 매듭지어졌고 현재까지 그 효력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을 종결짓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평화협정이 아니라 정전협정이라는 점에서 아직도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이무철(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Tip 제한전쟁

제한전쟁이라는 용어는 전면전쟁이라는 용어와 대별되는 개념이다. 1951년 5월, 한국전쟁의 특징에 대한 미국 상원의 군사·외교위원회의 질문에 대해서 마샬 장군이 “나는 이것을 제한전쟁이라고 특징지으며, 언제까지나 한정된 상태이기를 원한다.”라고 말한 데서 생겨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핵무기의 출현에 의해서, 전면전쟁은 인류의 멸망을 초래하게 될 것이 명백해져, 이 같은 무제한전쟁(전면전쟁)을 억지하기 위한 대비 개념으로서 지역·수단·목적 등을 제한하는, 제한전쟁이라는 새로운 전쟁개념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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