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 미국, 대북제재 고삐 죈다 2011년 7월호
집중분석
미국, 대북제재 고삐 죈다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대북제재조정관(오른쪽)과 대북제재팀이 지난해 8월 2일 서울 용산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팀원인 대니얼 글레이즈 재무부 부차관보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06년 6월초 이른바 BDA(방코델타아시아) 사태로 불리는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로 인해 6자회담이 장기 공전되고 북한의 반발이 최정점을 향해 가고 있던 때다.
이 즈음 아주 ‘의미 있는’ 발언이 전해졌다. 미 국무부에서 사실상 대외정책을 실무적으로 책임지는 리처드 아미티지 부장관이 <교도통신>과의 회견에서 대(對)이란 정책에 대해 설명하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북한과도 대화를 하지 않으면 미국이 어리석게 비칠 지 모른다.”고 말했다.
바로 직전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이란에 대해 ‘포괄적 협상안’을 제시했었다. 이란이 핵개발을 중단하면 국제적인 지원과 경수로 건설 및 장기적인 연료공급 등을 제공한다는 게 골자로 알려졌다.
아미티지 부장관은 회견에서 “이란과는 대화하면서 북한과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미국이 뒤집어쓸 우려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이 북한에 대가를 포함한 포괄적 패키지를 제안했더라면 사태가 개선됐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발언은 부시 행정부 내 온건협상파의 위기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됐다. 잘 알려진대로 부시 행정부는 2006년 하반기부터 네오콘이 주도하던 강경책에서 벗어나 협상파들이 국면을 장악하게 된다.
미국, 이란식 포괄제재 북한 적용 모색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대목은 국제적 비확산체제 강화를 도모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과 이란 문제가 항상 같은 맥락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이란식 협상방안’이 북한에 접목되는 순간이었다.
최근에도 북한에 이란식 방안을 접목시키는 일이 추진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민주당 오바마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 이번에는 이란에게 가해졌던 포괄적 제재를 북한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상원과 하원에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다. 상원에 제출된 법안은 ‘이란, 북한, 시리아 제재통합법안(Iran, North Korea, Syria sanctions Consolidation Act of 2011)’을 말한다. 이번 법안은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를 지낸 존 카일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의 로버트 메넨데스, 무소속의 조지프 리버먼 의원 등 13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우선 금융기관 제재다. 우선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북한의 금융기관과 거래한 외국 금융기관들의 미국 내 영업을 중단시킬 수 있다.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북한 은행과 거래하는 금융기관에 대해 미국과의 거래와 북한과의 거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의미가 있다.
다음으로 광물거래 제재다. 북한에서 채굴되거나 추출된 광물을 구입하는 외국인을 미국의 제재대상에 포함시킨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무기 수출 등 자금줄이 차단되고 있는 북한의 경우, 최근 중국에 대한 광물 수출 등을 크게 늘리고 있는데 이를 막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북한의 중국에 대한 광물 수출은 지난 2002년 5천만 달러 규모였지만 지난해에는 8억6천만 달러로 규모가 크게 늘었다는 게 정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북한 최대 수출품 광물 거래도 제재
그 외로 이 법안은 북한에 군사적 용도의 물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의 미국 내 자산 동결조치와 미국의 금융체제 접근 금지도 포함하고 있다. 북한에 입항한 선박의 경우 180일 이내에 미국 항구에는 올 수 없고 이들 선박에는 선박보험이나 재보험도 제공할 수 없다는 규정 등도 있다.
이와 함께 행정부에 대해 북한 고위 인사들의 명단을 작성하도록 하고 이들의 미국 입국비자 발급을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미국 대통령이 이들 금지 인사들에게 비자를 발급할 경우 최소한 7일 전에 의회에 알려줄 것도 요구하고 있다. 법안은 또 이란과 북한, 시리아 등 3개국에서 인권유린에 관련된 인사들에 대한 제재 근거도 담고 있다.
미 의회 소식통들의 전언을 종합해보면 미국은 현재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한과 시리아도 한 묶음으로 압박하자는 기류가 강하다. 워싱턴 현지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조만간 이 법안은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미 하원에서도 외교위원장인 일리애나 로스-레티넨 의원과 공화당 간사인 하워드 버먼 의원 공동발의로 이란 제재강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상원에서 대북제재 강화를 포함한 ‘제재통합법안’이 통과될 경우 상·하원 법안조정위원회를 통해 북한 제재법안 내용이 하원 법안에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사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북한에 대해 이른바 ‘맞춤형 제재’를 추진하려 했었다. 지난해 8월초 방한했던 로버트 아인혼 미 대북제재조정관은 당시로서는 미국의 새로운 제재조치의 특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내용인즉 북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집대성해서 북한을 효율적으로 압박하겠다는 것이었다.
재래식 무기거래나 사치품과 관련해서는 기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1718호와 1874호에 규제조항이 있고, 이미 시행되고 있다. 위폐와 마약 밀수 등 기타 불법활동 등을 규제하는 미국 국내법도 이미 존재한다. 이 상황에서 미국의 신(新) 제재조치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북한 관련 제재조치를 일목요연하게 묶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대량살상무기(WMD)및 미사일 활동에 관련된 북한의 개인과 단체 23개를 제재대상으로 지정한 미 대통령 행정명령 13382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조치는 바로 북한을 겨냥하기보다는 WMD 확산방지에 저촉되는 북한의 활동이 포착되면 그에 따라 규제하는 것이다.
이란과 달리 법률이 아닌 행정명령을 택했다는 것도 특징이었다. 당시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의 관할권 내에 있는 미국 개인이나 기업이 아닌 역외 제3국에 적용하려면 의회가 제정하는 특별법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보면 ‘제재통합법안’은 대북제재를 법률로 규제한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한 단계 강도 높은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대북제재는 효과가 있을까.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한국전쟁 이후 60여 년 동안 지속돼 온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마다, 그리고 처한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은 약간씩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의 교역활동을 제한하고 외화획득 규모를 감소시켜 대외거래에 필요한 경화 결제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제재조치의 결과로 북한이 얼마나 압박을 받았으며, 그 결과 북한체제에 어떤 위협요소로 작용했는가에 있다. 잘 알고 있듯 북한은 자력갱생을 이념으로 한 자급자족 시스템이 강한 나라다.
사회주의권의 도미노식 붕괴와 개혁개방정책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고집스럽게 자신들만의 폐쇄적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난의 심화와 극심한 식량난 속에 북한 경제의 자생력이 위축되고 있지만, 외부와의 교역을 포함한 개방성은 크게 증가하지 않고 있다.
특히 유엔을 중심으로 한 대북제재 조치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06년 하반기 이후 상황을 보면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크게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중국 변수가 대북제재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임을 실감하는 것이다.
장기간에 걸친 미국의 양자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의 미국 의존도는 사실 극미한 상황이다. 이것이 이른바 이란식 제재를 북한에 적용하는 데 결정적인 한계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사태 이후 중국이 보여주는 태도를 감안하면, 과연 미국의 새로운 시도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시되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의 해결에는 적극 나서고 있지만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북한 체제를 옥죄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에는 부정적임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중국, 제재에 부정적 … 북한, 벼랑끝 전술?
미국이 중국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다각적인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중국의 전략적 판단 기조를 변화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아무리 미국의 법률로 새롭게 규정하고 중국을 압박하려 하겠지만, 중국이 ‘우회적으로’ 피해나갈 공간은 상당히 넓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게다가 북한은 미국이 새로운 대북 강경조치를 추진할 경우 3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다시 ‘벼랑끝 전술’을 구사할 개연성이 커 보인다. 이 경우 3차 핵실험은 과거 플루토늄 방식이 아닌 우라늄 방식의 핵무기 개발과 직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의 위험성은 은닉의 수월성과 가공할 위험성 등을 감안할 때 미국으로서는 실제적인 안보위협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북한이 미국을 향해 ‘파국이냐, 협상이냐’라는 벼랑끝 카드를 다시 꺼내들 때 오바마 행정부가 과연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가 새로운 대북제재통합법안의 운명은 물론 북·미 관계, 나아가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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